걸그룹, 코로나 사태 속 도드라진 약진 이유는?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ize 기자 2020.04.2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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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원, (여자)아이들, 에이핑크, 오마이걸 맹활약

에이핑크, 사진제공=플레이엠엔터테인먼트 에이핑크, 사진제공=플레이엠엔터테인먼트



2020년 걸그룹의 약진이 심상치 않다. 시작은 아이즈원이었다. 지난 2월 17일 발매된 아이즈원의 첫 번째 정규 앨범 'BLOOM*IZ'는 발매 첫 날에만 약 18만 4000장을 팔아치우는 화력으로 화제를 모았다. 기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매일 1만장에서 8만여장까지 지속적으로 팔려나간 앨범은 최종 35만 6,313장이라는 초동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는 전작 'HEART*IZ'로 기록했던 13만 2000여장의 거의 두 배이자, 기존 걸그룹 최다 초동 판매량 15만 4,028장(트와이스의 'Feel Special'(2019))을 20만여 장이나 훌쩍 뛰어넘는 놀라운 수치였다.

바통을 이어받은 건 (여자)아이들이었다. 지난 연말을 뜨겁게 달군 ‘LION’에 이어 ‘나를 믿는다(I trust)’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앞세운 이들 역시 출발이 좋았다.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전 세계 58개 지역 아이튠즈 톱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며 걸그룹 신기록을 세웠고, 타이틀 곡 ‘Oh my god’ 뮤직비디오는 24시간 만에 1,700만뷰, 일주일에 5,100만뷰를 넘기며 역대급 조회수를 올렸다. (4월 28일 기준 현재 7805만회) 앨범 판매량도 상승세를 탔다. 'I trust'는 초동 11만 2000장으로 전작 [I made](2만 3백 여장)보다 다섯 배 이상 높은 판매고를 올리며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공중파 음악 방송 1위를 차지한 것도 이번 활동이 처음이었다.

오마이걸, 사진제공=WM엔터테인먼트 오마이걸, 사진제공=WM엔터테인먼트


희소식은 멈추지 않았다. 4월의 주인공은 에이핑크와 오마이걸이었다. 각각 데뷔 10년 차와 6년 차인, 아이돌 기준으로는‘중견급’이 된 이들의 활약은 후배들의 귀감이 될 수 있기에 더욱 소중했다. 1년 3개월 만에 완전체로 컴백한 에이핑크의신곡 ‘덤더럼'(Dumhdurum)’은 발매와 동시에 멜론, 지니, 벅스, 소리바다 등 대표적인 음원사이트 1위를 휩쓸었다. 이는 2015년 7월 발매된 정규 2집 'Pink MEMORY'의 타이틀곡 'Remember' 이후 4년 9개월 만에 거둔 쾌거였다. 오마이걸의 경우는 조금 더 극적이었다. 데뷔 후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린 것으로 유명한 이들은 지난 27일 미니 7집 'NONSTOP'을 발표했다. 발매와 동시에 멜론 차트 5위로 진입한 타이틀곡 ‘살짝 설렜어’는 한 시간 단위로 상승세를 이어가며 곧 2위(오후 8시), 1위(오후 9시)로 순위를 바꿨다. 마침 온라인 쇼케이스를 진행중이던 오마이걸 멤버들은 실시간으로 전해진 차트 1위 소식을 듣고 서로 부둥켜 안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올 상반기 유독 도드라진 이러한 현상은 얼핏 익숙한 걸그룹신의 세대교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여자)아이들과 아이즈원은 데뷔 1, 2년차를 갓 넘긴 신인들이고, 오마이걸 역시 3세대 그룹 가운데 꾸준한 노력으로 뒤늦게 빛을 보고 있는그룹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초점이 맞춰져야 할 곳은 걸 그룹 세대교체나 그룹 단위의 화제성이 아닌 바로지금, 걸 그룹신을 이토록 급격히 변화시키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에 관한 논의다.



사진제공=오프더레코드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오프더레코드엔터테인먼트
지난 세대에 만들어진 변화의 흐름은 비교적 단순했다. 흔히 활동에 정점을 찍은 기존 인기 그룹들의 커리어가 서서히 내리막을 타고나 재계약 문제 등으로 활동이 어려워진 틈을 타 새로운 걸 그룹이 부상했다. 대동소이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컨셉트가 흡사했고, 그에 따르는 인기 양상도 마찬가지였다. 게으른 기획 탓이 컸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걸 그룹은 마니아보다는 대중을 사로잡아야 하며 따라서 히트곡이 중요하다는 업계 불문율은 결코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걸 그룹들이 만들고 있는 열기는 조금 다르다. 당장 앞서 언급한 상반기 화제의 그룹들 면면만 봐도 그렇다. 1년차에서 10년차까지 고른 연차는 물론 타깃층에서 성과까지 모든 성공요인이 다르게 분석된다. 높은 인지도를 앞세워 노련미와 중독성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에이핑크와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신으로 웬만한 보이그룹 부럽지 않은 튼튼한 팬덤이 조성된 아이즈원 사이에는 사실상 그 어떤 연관성도 없다.

일반적으로는 의미를 찾기 어려운 이러한 무연관성은 그러나 그 대상이 케이팝 걸그룹이기에 유의미해진다. 아이즈원, (여자)아이들, 에이핑크, 오마이걸 네 팀이 올 상반기 거둔 성과의 공통점은 걸 그룹을 둘러싼 각종 편견을 깬 위에 세운 결과들이라는 점이다.


걸그룹은 연차가 쌓일수록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걸그룹은 충성도 높은 팬덤을 만들 수 없다는, 야망을 앞세운 걸그룹은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오랜 고정관념들은 상반기 눈부신 활약을 보여준 이들 앞에 차례로 무너졌다. 쉽게 이유를 짐작하기는 아직 조심스럽지만 케이팝 산업 안에서 부쩍 비중을 높이고 있는 해외팬 유입 증가와 여성 팬덤의 확장, 그리고 느리게나마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케이팝 업계 안팎의 인식 변화가 낳은 미래지향적인 변화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제 변화가 시작되었다. 한 번 바뀐 물살은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이다.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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