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수급 붕괴된 원유 ETN…'슈퍼개미' 20억 베팅이 시작이었다

머니투데이 조준영 기자 2020.04.29 05:10
의견 남기기

글자크기

(종합)



최근 시가총액 수천 억 원이 증발한 레버리지 원유선물ETN(상장지수채권)은 WTI(서부텍사스유) 폭락과 더불어 지나치게 높은 괴리율로 인해 큰 하락 폭을 보이고 있다.

원유선물 지표가치와 시장에서 거래되는 ETN 시장가격을 맞춰야 할 증권사, 즉 LP(유동성공급자)의 보유물량이 바닥이 나면서다. 이에 정상가격보다 10배 넘는 가격 '뻥튀기'가 이뤄졌고 최근 가격이 조정되면서 시가총액 수천 억 원이 줄어들게 됐다.

그 시작은 지난달 9일 유가가 20% 넘게 폭락하기 직전 주에 20억원 규모의 신한 레버리지ETN을 사들인 한 '슈퍼개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이 사상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한 21일 서울 중구 명동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딜러가 WTI 선물 차트를 바라보고 있다. 2020.4.21/뉴스1(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이 사상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한 21일 서울 중구 명동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딜러가 WTI 선물 차트를 바라보고 있다. 2020.4.21/뉴스1




◇500만주가 녹았다




슈퍼개미의 출현을 시작으로 LP 보유물량이 10%대로 떨어지자 신한금융투자는 500만주 추가상장을 준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업계는 다소 특이한 투자자가 나타났다는 정도로 이해했다. 공교롭게도 이때가 유가폭락의 시작이었다.

지난달 9일 WTI가 전거래일 대비 24.58%나 주저앉으며 40달러가 붕괴됐다. 이때부터 유가반등을 기대한 개인투자자들의 유입이 폭증했고 9일 하루 만에 신한금투의 보유물량이 바닥났다. 아직 500만주 추가상장 관련 절차가 진행 중이던 때다.

거래소에 따르면 추가상장에 필요한 기간은 약 5영업일이다. 첫 단추가 잘못 꿰지자 LP들의 추가상장은 이미 앞서가는 투자자들의 뒤꽁무니를 따라가는 모양새가 됐다. 이 같은 미스매칭이 반복되면서 LP들의 물량은 그야말로 나오는 즉시 녹아내렸다. 이틀 뒤인 11일 500만주가 상장됐지만 장 초반 투자자들은 이 물량을 모두 잡아먹었다. 신한금투는 16·20·27일에 각각 2000만주, 4000만주, 1300만주를 추가 상장했지만 상장 즉시 모든 물량이 소진됐다.

수급 붕괴된 원유 ETN…'슈퍼개미' 20억 베팅이 시작이었다


◇삼성으로 번진 불나방…도장깨기에 '픽픽' 쓰러져


신한금투 물량으로는 가격조정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자 원유 불나방들은 삼성레버리지ETN으로 전선을 옮겼다. 지난달 16일 삼성증권도 4000만주를 상장했지만 4일만에 바닥이 났고 24일 추가로 발행한 4000만주도 3일만에 전량 소진됐다.

반면 상대적으로 거래량이 적은 미래에셋과 NH투자증권의 레버리지ETN은 타격이 덜했다. 하지만 신한과 삼성의 보유물량이 모두 바닥이 난 지난달 30일부터는 이들에게도 매수세가 옮아붙자 급속도로 물량이 줄어들었다.

LP물량이 바닥이 났다는 뜻은 온전히 투자자들의 수급만으로 가격이 결정된다는 의미다. 원유선물의 가격변동과 상관없이 높은 가격이 형성되자 괴리율은 최대 2000%까지 치솟았다. 문제는 이를 바로잡아 줄 수단이 없다는 데 있었다.

수급 붕괴된 원유 ETN…'슈퍼개미' 20억 베팅이 시작이었다


◇"예상할 수 없었다"


증권사들은 당혹스럽다. 이번 같은 급격한 유가 하락과 투자자들의 유례 없는 매수세를 예상할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평소 수십 만주 정도 거래되던 고요한 시장이 하루에만 수천만~수억주가 거래되는 등 단기간에 규모가 급증하면서 LP들의 정확한 수요예측도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설명이다.

레버리지ETN을 운용하는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저희도 많이 답답하다. 괴리율이 올라가니 투자 주의를 수차례 당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증권사가 괴리율을 왜 줄이지 못했냐고 하지만 이렇게 밀고 들어오면 감당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시장 안정화 조치가 너무 늦은게 아니냐는 지적에 거래소도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괴리율이 처음 높아질 때 바로 거래정지를 하기에는 현행 규정상 근거가 명확하지 않았다"며 "결과적으로 타이밍이 늦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때 그런 결정을 내리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많았다"고 밝혔다.

수급 붕괴된 원유 ETN…'슈퍼개미' 20억 베팅이 시작이었다


◇'갑작스런 통보'…개미지옥 원유ETN 또 추종지수 변경




기초지수 산출기관 S&P(스탠다드앤푸어스)가 28일 오전 WTI(서부텍사스유) 6월물을 담고 있는 기초지수의 구성 종목을 한국 시간 29일 새벽 3시 30분에 7월물로 전량 롤오버(월물 교체)한다고 밝혔다. 지난 4월 초에 기존 5월물을 6월물로 롤오버 한 데 이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또 한 번 롤오버를 단행했다.

이에 S&P 지수를 추종하는 국내 대다수 ETF(상장지수펀드)·ETN(상장지수채권)의 선물 월물도 함께 변경된다. 특히 국내 투자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신한 인버스 2X WTI원유 선물 ETN(H)', '삼성 인버스 2X WTI원유 선물 ETN' 등의 지표가치(IV)가 내일부터 7월물의 변동폭에 따라 결정되면서 투자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이번 S&P 결정은 최근 국제유가 등락폭이 커지면서 변동성이 크게 확대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1일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가격을 찍은 뒤 반등했던 국제유가는 다시 폭락세로 돌아섰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수요 증발 속에 원유 저장고 부족 문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다.

27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WTI 6월물은 전날보다 배럴당 4.16달러(24.6%) 떨어진 12.7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의 실물 인도가 이뤄지는 미국 오클라호마주 쿠싱(Cushing) 지역의 원유저장고도 사실상 가득 차면서 원유수요 감소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했다.

(울산=뉴스1) 윤일지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원유 수요 급감으로 국제유가가 폭락한 가운데 국내 정유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22일 오후 울산시 남구 SK에너지 원유 저장탱크의 '부유식 지붕'이 탱크 상단까지 올라와 있다. 부유식 지붕은 탱크 내 원유 저장량에 맞게 위아래 자동으로 움직이게 된다. 2020.4.22/뉴스1  (울산=뉴스1) 윤일지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원유 수요 급감으로 국제유가가 폭락한 가운데 국내 정유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22일 오후 울산시 남구 SK에너지 원유 저장탱크의 '부유식 지붕'이 탱크 상단까지 올라와 있다. 부유식 지붕은 탱크 내 원유 저장량에 맞게 위아래 자동으로 움직이게 된다. 2020.4.22/뉴스1
현재 바다 위에 수많은 유조선들도 원유를 가득 실은 채 떠돌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현재 해상 유조선에 적재된 원유는 지난달 1일보다 76% 늘어난 약 1억5300만 배럴에 달한다.

최근 산유국들이 합의한 감산량이 실제 수요감소량 추정치에 못 미친다는 것도 유가를 끌어내리는 주요한 이유다. 지난 12일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OPEC(석유수출국기구)와 러시아 등 10개 비OPEC 산유국들의 모임인 OPEC+가 5월부터 6월까지 두 달간 하루 970만 배럴의 원유를 감산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는 코로나19(COVID-19) 사태로 전세계 석유수요 감소량 추정치인 하루 약 2000만 배럴에 크게 미치지 못한 수준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재 6월물 가격이 크게 떨어져 지표가치가 '0'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롤오버 시점을 앞당기는 것 같다"며 "보통 롤오버 기간은 5일에 걸쳐 순차적으로 이뤄지는데 하루 만에 롤오버를 한다는 것을 보면 (월물 변경이) 시급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추종하는 월물이 7월물로 바뀌면서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최근 급상승한 인버스 투자자들이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저희도 오늘 오전에 갑작스럽게 통보를 받았다"며 "원래 다음 달에 7월물 롤오버를 해야 하는데 (S&P 측에) 다음 달은 롤오버를 생략하는 것인지, 8월물로 바뀌는 것인지 질의를 해놓은 상태"라고 덧붙였다.
나의 의견 남기기 등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