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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ETN 괴리율 트리거는 20억 '슈퍼개미'였다

머니투데이 조준영 기자 2020.04.2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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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이 사상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한 21일 서울 중구 명동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딜러가 WTI 선물 차트를 바라보고 있다. 2020.4.21/뉴스1(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이 사상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한 21일 서울 중구 명동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딜러가 WTI 선물 차트를 바라보고 있다. 2020.4.21/뉴스1




최근 시가총액 수천 억 원이 증발한 레버리지 원유선물ETN(상장지수채권)은 WTI(서부텍사스유) 폭락과 더불어 지나치게 높은 괴리율로 인해 큰 하락 폭을 보이고 있다.

원유선물 지표가치와 시장에서 거래되는 ETN 시장가격을 맞춰야 할 증권사, 즉 LP(유동성공급자)의 보유물량이 바닥이 나면서다. 이에 정상가격보다 10배 넘는 가격 '뻥튀기'가 이뤄졌고 최근 가격이 조정되면서 시가총액 수천 억 원이 줄어들게 됐다.

그 시작은 지난달 9일 유가가 20% 넘게 폭락하기 직전 주에 20억원 규모의 신한 레버리지ETN을 사들인 한 '슈퍼개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500만주가 녹았다


신한금융투자 전경 / 사진제공=신한금융투자 제공신한금융투자 전경 / 사진제공=신한금융투자 제공
슈퍼개미의 출현을 시작으로 LP 보유물량이 10%대로 떨어지자 신한금융투자는 500만주 추가상장을 준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업계는 다소 특이한 투자자가 나타났다는 정도로 이해했다. 공교롭게도 이때가 유가폭락의 시작이었다.

지난달 9일 WTI가 전거래일 대비 24.58%나 주저앉으며 40달러가 붕괴됐다. 이때부터 유가반등을 기대한 개인투자자들의 유입이 폭증했고 9일 하루 만에 신한금투의 보유물량이 바닥났다. 아직 500만주 추가상장 관련 절차가 진행 중이던 때다.

거래소에 따르면 추가상장에 필요한 기간은 약 5영업일이다. 첫 단추가 잘못 꿰지자 LP들의 추가상장은 이미 앞서가는 투자자들의 뒤꽁무니를 따라가는 모양새가 됐다. 이 같은 미스매칭이 반복되면서 LP들의 물량은 그야말로 나오는 즉시 녹아내렸다. 이틀 뒤인 11일 500만주가 상장됐지만 장 초반 투자자들은 이 물량을 모두 잡아먹었다. 신한금투는 16·20·27일에 각각 2000만주, 4000만주, 1300만주를 추가 상장했지만 상장 즉시 모든 물량이 소진됐다.



◇삼성으로 번진 불나방…도장깨기에 '픽픽' 쓰러져


(울산=뉴스1) 윤일지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원유 수요 급감으로 국제유가가 폭락한 가운데 국내 정유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22일 오후 울산시 남구 SK에너지 원유 저장탱크의 '부유식 지붕'이 탱크 상단까지 올라와 있다. 부유식 지붕은 탱크 내 원유 저장량에 맞게 위아래 자동으로 움직이게 된다. 2020.4.22/뉴스1(울산=뉴스1) 윤일지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원유 수요 급감으로 국제유가가 폭락한 가운데 국내 정유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22일 오후 울산시 남구 SK에너지 원유 저장탱크의 '부유식 지붕'이 탱크 상단까지 올라와 있다. 부유식 지붕은 탱크 내 원유 저장량에 맞게 위아래 자동으로 움직이게 된다. 2020.4.22/뉴스1
신한금투 물량으로는 가격조정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자 원유 불나방들은 삼성레버리지ETN으로 전선을 옮겼다. 지난달 16일 삼성증권도 4000만주를 상장했지만 4일만에 바닥이 났고 24일 추가로 발행한 4000만주도 3일만에 전량 소진됐다.

반면 상대적으로 거래량이 적은 미래에셋과 NH투자증권의 레버리지ETN은 타격이 덜했다. 하지만 신한과 삼성의 보유물량이 모두 바닥이 난 지난달 30일부터는 이들에게도 매수세가 옮아붙자 급속도로 물량이 줄어들었다.

LP물량이 바닥이 났다는 뜻은 온전히 투자자들의 수급만으로 가격이 결정된다는 의미다. 원유선물의 가격변동과 상관없이 높은 가격이 형성되자 괴리율은 최대 2000%까지 치솟았다. 문제는 이를 바로잡아 줄 수단이 없다는 데 있었다.



◇"예상할 수 없었다"


거래소 전경 / 사진제공=뉴스1거래소 전경 / 사진제공=뉴스1
증권사들은 당혹스럽다. 이번 같은 급격한 유가 하락과 투자자들의 유례 없는 매수세를 예상할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평소 수십 만주 정도 거래되던 고요한 시장이 하루에만 수천만~수억주가 거래되는 등 단기간에 규모가 급증하면서 LP들의 정확한 수요예측도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설명이다.


레버리지ETN을 운용하는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저희도 많이 답답하다. 괴리율이 올라가니 투자 주의를 수차례 당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증권사가 괴리율을 왜 줄이지 못했냐고 하지만 이렇게 밀고 들어오면 감당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시장 안정화 조치가 너무 늦은게 아니냐는 지적에 거래소도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괴리율이 처음 높아질 때 바로 거래정지를 하기에는 현행 규정상 근거가 명확하지 않았다"며 "결과적으로 타이밍이 늦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때 그런 결정을 내리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많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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