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회생 포기합니다" 50대 가장 김씨는 결국 파산했다

머니투데이 이미호 기자, 안채원 기자 2020.04.2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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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회생법원 찾는 사람들](종합)

편집자주 코로나19발(發) 경기침체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중소기업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소비위축으로 사업이 안되고 일자리가 위태로워지면서 채무 상환을 하지 못해 법원 문을 두드리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개인 및 법인의 회생·파산 신청 현황과 의미를 분석하고,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돈 없어 회생도 포기했다"…'코로나 불황'에 파산 행렬
"개인회생 포기합니다" 50대 가장 김씨는 결국 파산했다


"먹고 살 돈도 없는데 회생이라니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세가 정점에 달했던 지난달 18일. 식자재 도소매업자인 김모씨는 법원으로부터 개인회생 폐지 결정문을 송달받았다. 김씨 스스로 "회생을 포기하겠다"며 낸 개인회생 취하 청구가 법원에서 인용된 것이다.



◇코로나19에 꺾인 개인회생…회생 취하 청구 인용

50대 가장인 김씨가 서울회생법원의 문을 두드린 건 지난 2017년 11월이었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빚을 갚지 못하다가 개인회생 절차를 알게 됐고 이듬해 4월10일 법원으로부터 개시 결정을 받았다. 김씨의 월 평균 수입은 150만원 정도로, 이 중 생계비를 제외한 75만원을 채권자들에게 분배해 60개월간 갚는 조건이었다.



이후 김씨는 26개월간 성실하게 빚을 갚아왔지만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다. 하루에 단 한 건의 매출을 올리지 못하면서, 지난달 2일 결국 폐업신고를 했다. 코로나 사태로 시작된 극심한 경기침체가 개인의 '패자부활 의지'마저 꺾은 셈이다.

◇올해 파산신청 역대 최고 252건(1월~3월)

'코로나 불황'에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중소기업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면서 파산 승인을 받기 위해 법원을 찾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


26일 대법원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 1월부터 3월까지 전국 법원 파산부에 들어온 법인 파산신청 건수는 252건(누계)으로 해당기간 역대 최고다. 회생 신청에서 탈락하거나 아예 회생 신청을 포기하고 파산 신청을 바로 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1~3월 누적 기준으로 법인 파산신청 건수는 2016년 143건, 2017년 163건, 2018년 180건, 2019년 200건으로 최근 5년간 꾸준히 늘었고, 올해는 전년 동기 대비 26%(52건) 급증했다. 지난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 확진자 발생 이후 소비 부진이 계속되면서, 견디다 못해 사업을 접는 경우가 늘고 있는 셈이다.

월별로도 지난 1월 파산 신청건수는 71건인데 비해 2월 80건, 3월에 101건으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3월에는 지난해 같은 기간(66건)보다 53%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파산이 경기침체에 뒤따른 후행적 성격을 띠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파산행렬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회생법원 관계자는 "코로나 타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한 것 같다"고 했다.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연간 법인파산 신청 건수는 2018년 806건, 2019년 931건에 이어 올해는 이런 추세라면 1000건을 훌쩍 넘길 전망이다. 개인 파산 신청도 올들어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 1월 3252건에서 2월 3715건, 3월 4275건을 기록했다.

◇회생 신청 건수는 감소 추세…"이미 회생 어려워"

회생 신청은 오히려 줄었다. 회생합의사건(법인회생) 신청 건수는 1~3월 누적 기준으로 지난 2018년 223건에서 지난해 217건, 올해는 201건이다. 개인회생 신청 건수도 같은 기간 기준으로 지난해 2만3637건에서 올해 2만2248만건으로 감소했다.

장래에 계속 또는 반복해 수입을 얻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신청할 수 있는 회생과 달리, 파산은 채권자의 동의와 채무 일부 면책을 전제로 사업을 접거나 본인의 재산이나 권리를 모두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최후의 수단이 될 수 밖에 없다. 누구라도 회생의 길을 걷고 싶겠지만 채무재조정을 통한 채무상환 능력을 입증해야 가능하다.

기업 자문·회생을 전문으로 하는 조윤상 변호사(법무법인 시헌)는 "회생 신청이 줄고 파산 신청이 늘고 있는 것은 회생을 이용할 생각조차 못하고 바로 파산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라며 "실제로 최근 파산 사건들을 인터뷰 해보면 이미 늦어 회생이 어려운 사례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회생 절차 승인을 받아 채무를 갚아가던 사람들 가운데 변제금 납입을 유예해달라는 요청도 빗발치고 있다. 코로나19로 경기 불황이 깊어지면 계획했던 채무상환을 이행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한 직장인은 법원 게시판에 "지난해 7월 개인회생 인가 결정으로 매월 변제금을 갚고 있는데 올 2월부터 회사 재정이 악화됐다"면서 "유급휴가로 월급의 70%인 200만원만 받는데 변제금이 매달 167만원이다. 여기에 월세만 50만원"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민원인은 "코로나19로 뜻하지 않게 회사가 휴업하면서 단기 실직됐다"며 "최소 1년 이상 성실하게 납부한 개인회생자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법원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도 채무 상환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결국 파산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법조계 관계자는 "채권자들이 동의하지 않아 파산 승인 조차 못받는 사람들도 있다"면서 "코로나19로 인한 경기불황이 본격화될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미호 기자, 안채원 기자

"193억 적자 후 잡은 中투자 유치…코로나19가 덮쳤다"
머니투데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A씨./사진=안채원 기자머니투데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A씨./사진=안채원 기자
"193억 적자 후 겨우 찾아온 기회였던 중국 투자가 코로나19 때문에 올스톱 됐어요. 저에게 남은 선택지는 회생 절차뿐이었습니다."



시스템반도체 관련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대표이사 A씨가 서울회생법원을 찾은 건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이던 지난달 23일. 그의 손엔 '법인 회생 신청서'가 들려있었다. 24년간 회사를 이끌면서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지난 24일 찾은 경기도 소재 사무실엔 각종 협회와 단체에서 받은 상패들이 줄지어 있었다. 화려했던 전성기를 보여주는 듯 했다.

1996년 인터넷 소프트웨어 개발업으로 시작한 회사는 IMF 사태에서도 꿋꿋이 견뎌 창업 5년 만에 연 매출 250억 원 달성을 이뤄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인터넷 소프트웨어만으로는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해 시스템 반도체 분야로 뛰어들었다.

직원들이 힘을 합쳐 노력한 결과 A씨 회사는 51개의 국내 특허와 30개의 해외 특허를 보유한 알짜 기업으로 성장했다. 위기는 갑작스레 찾아왔다. 연구 개발에 모든 자금을 끌어들여 투자한 게 문제가 됐다. 2017년 장기 연구 개발을 마치고 난 뒤 여유 자금은 전혀 남지 않은 상태에서 매출 마저 급격히 줄었다. 결국 그해 193억원 적자를 냈다. 개발비 감가상각을 하고 난 뒤 회사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A씨는 포기하지 않고 해외 시장을 공략해 중국 측 투자 제안을 받아냈다. 중국 측 투자금으로 기사회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때 '코로나 19'가 들이닥쳤다. 중국 장저우 국가산업단지에 합작법인을 설립하고자 했던 계획이 코로나19 확산으로 틀어지게 된 것이다. 국가산업단지 준공 자체가 미뤄지면서다. 합작법인 설립을 통한 중국 측 투자 진행도 모두 멈춰버렸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법인 회생을 신청했다. 마지막 희망이라도 잡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회생법원은 지난 16일 회생 개시 결정을 내렸다. A씨는 "회생 신청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 데까지만 두 달이 걸렸다"고 회상했다. 그는 "회사를 지키기 위해 해왔던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회생을 결심했다"면서 "무엇보다 직원들에게 퇴직금도 줄 수 없는 상황에서 회사를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 회생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회생 절차를 경험해본 중소기업 대표의 입장에서 회생 제도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A씨는 "절차가 예전보다 많이 개선되고 편리해진 것 같다"면서도 "아직은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의 현실을 잘 반영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회생 기업들에 대한 정부 측 지원을 보다 신속하게 이뤄졌으면 한다는 바람도 피력했다.

정부는 회생 절차를 밟는 기업에게 고용 유지 비용 등을 주지만, 이는 회생 개시 결정 후 두세 달이 지나서야 받을 수 있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선 법원에서 발급받은 보고서 등 관련 서류들을 내야 하는데 이 보고서가 회생 개시 결정 한참 뒤에 나오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힘들게 버텨야 하는 중소기업 입장에선 '지옥같은' 시간이다. A씨는 "어차피 지원해 줄 금액이라면 신속하게 지원해서 기업이 처한 어려움을 바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파산이 아닌 회생을 택한 기업의 오너라면 어떻게든 회사를 다시 살려보겠단 의지가 있다고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A씨는 자신만이 아닐 거라고 했다. 코로나 19 사태가 많은 기업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사실 이미 몇 년 전부터 중소기업이 체감하는 경영 악화는 심각한 수준이었고, 코로나 19 확산으로 이제 더는 견딜 수 없게 됐다"면서 "법원에 회생이나 파산을 신청하는 기업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안채원 기자

"회생·파산 전문 변호사 찾습니다" '불황' 대비하는 서초동
삽화=이지혜 디자인 기자삽화=이지혜 디자인 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로 인한 경제침체가 현실화되면서 로펌 시장도 이에 맞는 대응 전략을 세우는 등 변화가 일고 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로펌이 활용하는 구인·구직 게시판에는 '회생 사건 업무 경험이 있는 변호사를 구한다'는 글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서초동에 회생·파산 전문 변호사 '모시기' 바람이 부는 것이다. 이러한 로펌의 움직임은 회생·파산 관련 사건 수의 증가 추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윤상 변호사(법무법인 시헌)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회생 사건만 6개를 맡아 4건을 성공시켰고 2개는 진행 중"이라며 "회생·파산에 대한 법률 상담이 들어오는 건수도 평소엔 한 달에 한 건이었다면, 요즘은 일주일에 한두 건씩 꾸준히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주요 로펌 역시 회생·파산 분야 강화에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국내 1위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3월 법원 파산부 경력이 있는 심활섭 변호사(사법연수원 27기)와 정석종 변호사(28기)를 새롭게 영입했다. 도산팀 내의 전문 인력을 확충하기 위한 방안이다.

법무법인 광장은 팀 개편을 통해 전문성 강화를 도모했다. 기존 도산기업회생팀을 워크아웃팀과 기업파산팀, 회생 3개팀으로 세분화했다. 회생팀은 기관투자자 등 채권자를 대리하는 팀, 중견기업 이상의 채무자를 대리하는 팀으로 또다시 나뉜다. 또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을 중소상공인들을 위한 특별팀도 신설했다.

아예 코로나19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린 곳도 있다. 법무법인 바른은 지난 14일 '코로나19 대응전담팀'을 구성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경영 악화, 매출 감소 등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기업의 현 상황에 대한 전문적인 자문은 물론 코로나19 이후의 경영 리스크를 대비할 종합적 대응책을 제공하겠다는 의도에서다.

실제로 코로나19 여파로 일부 기업들은 이미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여성 잡화 브랜드 '앤클라인(ANNE KLEIN)'을 판매하던 성창인터패션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고, 종합숙박 예약 사이트 '호텔앤조이'를 운영하는 메이트아이는 이미 회생절차를 밟고있다. 버닝썬 사건에 연루된 '승리 라멘'으로 알려진 아오리라멘도 노 재팬 불매운동에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결국 파산신청에 들어갔다.

백광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최근 코로나19 때문에 갑의 지위에 있는 기업이 하청업체에 이미 위탁한 거래를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등 사건이 많아지고 있다"며 "공정거래 분야뿐만 아니라 기업 상황이 어려워짐에 따라 도산, 인수합병 분야까지 폭넓게 법률 이슈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안채원 기자, 이미호 기자

"회생 꿈 접지 마세요"…회생법원 사용설명서
"개인회생 포기합니다" 50대 가장 김씨는 결국 파산했다
박모씨(43·여)는 서울 강서구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영세사업자다.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식당 매출이 지난 3월 '코로나19 사태'로 급감했고, 박씨는 사실상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 정부가 임대료 지원에 나섰지만 턱없이 부족할 뿐더러 식자재값과 인건비를 충당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 몰린 박씨는 인터넷으로 개인회생 절차를 알아봤지만 용어도 어려운데다 변호사를 만나본 적도 없어 막막하기만 했다. 낙담하고 있던 박씨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된 것은 서울회생법원에서 운영하는 '뉴 스타트(New Start) 상담센터'였다.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 1층에 개설된 뉴스타트 상담센터에 가면 파산관재인(변호사)과 회생위원, 신용회복위원회 직원 등 전문가들에게 회생·파산과 관련한 무료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박씨처럼 재정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변호사 수임료 또한 부담이 되기 마련이다.

뉴스타트 상담센터에서는 개인회생·파산제도에 대한 일반 안내와 상담뿐만 아니라 신청서 작성요령과 첨부서류 발급 방법을 안내받고, 무료신청지원제도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평소 법률서비스를 접하기 어려운 채무자가 신청 단계에서 전문 변호사와 직접 대면해 설명을 듣고, 이를 통해 자신이 어떤 제도를 선택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다.

다만 코로나19 여파로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면서 상담센터가 잠정 운영 중단 상태라는 점은 아쉬운 점이다. 신규 확진자가 크게 줄면서 오는 5월 6일부터 재개된다.

뉴스타트 상담센터는 2017년 3월 2일 서울회생법원이 출범하면서 함께 들어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별도 법원을 만들어 도산사건에 대해 전문적이고 신속한 심리를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됐고, 2017년 3월 서울중앙지법의 파산부 인력을 이어받아 전국 유일의 '독립 법원'으로 탄생했다. 전국 회생·파산 신청 건수의 약 18.2%(지난해 기준)가 서울에 몰려 있다.

이밖에 의정부, 춘천, 인천, 수원, 청주, 대전, 대구, 전주, 울산, 창원, 광주, 부산, 제주 등 13개 지방법원 파산부 등에서 회생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김영석 서울회생법원 공보판사는 "단기적으로는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채무자가 향후 국민경제의 일원으로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사법부가 지원한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올 하반기 진행할 예정인 '서울회생법원 상담 부스'를 이용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상담 부스에서는 개인 회생·파산제도 관련 사례 설명과 무료 상담을 동시에 진행한다. 서울회생법원은 지난해 9월 행정안전부, 중소벤처기업부와 함께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실패 박람회'를 개최하고 해당 서비스를 지원한 바 있다.

이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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