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반도체의 아버지, 33년 신화 쓰기까지…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김수현 기자 2020.04.25 15:25
글자크기
모리스 창 TSMC 창업주 겸 전 회장/사진=AFP모리스 창 TSMC 창업주 겸 전 회장/사진=AFP


56세 창업과 74세 1차 은퇴, 위기상황 속 78세 경영복귀, 87세 완전은퇴.

33년 역사(1987년 설립)의 전 세계 1등 반도체 파운드리 회사 대만 TSMC의 경영역사는 대만 반도체의 아버지로 불리는 모리스 창 창업주 겸 전 회장과 늘 함께했다. 창 전 회장은 미래를 내다본 혜안으로 TSMC에 자신의 황혼기와 노년기를 쏟아부었다.

심지어 은퇴하고서도 회사가 어려울 때 바로 복귀해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는 탁월한 경영 감각을 보였다.



모리스 창이 떠났고 코로나19에 더할 나이 불투명한 경영환경이지만 올해 상반기에도 TSMC에는 예상밖 성과가 있다. 오랜 기간 인텔과 동업해왔던 애플이 내년 중 자체 개발 칩을 탑재한 맥 컴퓨터를 시장에 내놓을 준비를 하면서 이 칩을 TSMC의 5나노미터 공정을 통해 생산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외길 인생…대만의 강점·약점 제대로 파악해 TSMC 창업
창 전 회장이 회사를 설립한 것은 1987년. 그가 56세 때로 부인도 창 전 회장의 창업을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돌아보면 그때가 그의 인생 최대 도약기였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공습을 피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그는 1949년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고, MIT로 옮겨 기계공학 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유명 반도체 기업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20년간 근무하며 스탠퍼드대학원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도 따냈다.

창 전 회장은 TI에서는 물론, 이후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이적한 제너럴인스트루먼트(GI)에서 연구개발(R&D)를 본격 육성하려는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때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이 반도체 회사를 육성할 적임자를 찾고 있던 대만 정부다. 1985년 모두의 만류를 뒤로 한 채 대만으로 온 창 전 회장은 오랜 기간의 업계 경험을 바탕으로 ‘순수 파운드리’ 사업이라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내놨다.


소규모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들은 IBM이나 TI, 도시바 등 대기업에 제작을 의뢰했는데 이때 디자인 이전을 강요 당하는 등 힘든 거래의 연속이었다. 또 미국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에 비해 반도체 디자인이나 마케팅이 약했던 대만이었기에 종합 반도체 사업으로 정면 승부를 하는 것은 승산이 없었다.

TSMC는 1987년 2월 자본금 2억2000만달러(2710억4000만원)로 설립됐는데 정부가 절반, 외국 투자자가 절반의 자금을 댔다. TSMC는 1990년대 민영화가 됐지만 대만 정부는 국가개발기금 등을 통해 지금도 지분 6%를 보유중이다.



대만 반도체의 아버지, 33년 신화 쓰기까지…
창 전 회장의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브로드컴, 마벨, 엔비디아 등이 안심하고 TSMC에 주문 제작을 의뢰해 왔고 이들은 오랜 기간 윈윈 관계를 유지하며 TSMC와 함께 컸다. 지난해 기준 TSMC는 애플, 퀄컴 등을 포함해 499개 고객사로부터 1만761개의 서로 다른 제품을 생산해 매출액 1조699억8545만대만달러(43조8052억원)을 기록했다.


◇노익장의 역발상…복귀와 동시에 외친 ‘투자’ 적중
현업을 떠날 법한 나이에 회사를 창업한 창 전 회장은 정말로 물러날 것 같은 나이에는 위기의 회사를 위해 경영에 복귀했다. 고령을 이유로 2005년 한 차례 은퇴했지만 3년 뒤 금융위기 탓에 TSMC 매출이 급락하자 2009년 다시 현업에 복귀한 것. 그의 나이 78세였다.



그의 복귀 일성은 모든 것이 위축된 시기의 ‘해고직원 복귀와 투자 확대’였다. 창 전 회장은 당초 15억달러(1조8480억원)로 줄였던 연간 투자 규모를 2개월 만에 19억달러로 늘렸다. 이듬해 1월에는 TSMC 사상 최대 규모인 48억달러 상당 투자계획을 내놨다.

조기 회복을 예상한 그의 경영감각은 적중했다. 2010년 TSMC 매출액은 전년 대비 41.9% 늘어난 4195억대만달러(17조1659억원)를 기록했다.

TSMC는 2009년부터 매년 약 100억달러를 들여 첨단 시설을 늘렸고 연구 개발 비중도 당시 매출의 8%로 높였다. 지난해에도 이 비중을 유지하며 914억1900만 대만달러(3조7408억원)를 연구개발에 썼다.



창 전 회장은 2017년의 공언대로 2018년 모든 직책을 내려 두고 ‘정말로’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의 나이 87세였다. 포브스는 TSMC에 대해 ‘잡스가 떠난 애플’에 비유했다. 창 전 회장이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한 것은 마크 리우(류더인) 현 회장(투자, 인사 담당)과 C.C.웨이 현 최고경영자(경영전반, 고객 담당) 등 두 사람이다.

(왼쪽부터) 마크 리우 회장과 CC웨이 대표/사진=로이터(왼쪽부터) 마크 리우 회장과 CC웨이 대표/사진=로이터
TSMC 앞에는 현재 숙제가 산적해 있다. 두 사람이 취임한 후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한 데다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 추이는 둔화되고 최근에는 코로나19가 전세계 경기를 침체로 몰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 전 회장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대규모 투자는 지속한다.



TSMC는 올해 장기 성장을 염두에 두고 150억~160억달러(18조4800억원~19조7100억원)의 자본 지출(시설투자)를 할 예정이다. TSMC는 이미 5나노 공정 양산에 들어갔고, 2021년에는 3나노 공정 시험생산으로 기술을 확장할 계획이다.

한편 애플은 내년 중 자체 개발 칩을 탑재한 맥 컴퓨터를 시장에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애플은 이 칩을 대만 파운드리업체인 TSMC의 5나노미터 공정을 통해 생산할 계획이다. 애플은 그간 최신 인텔칩의 공급 지연으로 신모델을 제때 출시하지 못한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블룸버그통신은 “애플은 최근 맥 컴퓨터 판매량 감소의 원인으로 인텔을 지목해왔다”며 맥 컴퓨터와 모바일 칩에 동일한 개발 주기를 적용할 계획일 것이라고 전했다. 블룸버그의 공급망 분석에 따르면 애플은 인텔 연간 매출의 약 5%를 차지한다. TSMC엔 또다른 기회가 열린 것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