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박닌성 휴대폰공장 전경/사진제공=삼성전자
지난달 초 삼성그룹이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에 긴급요청을 타전했다. 코로나19(COVID-19) 사태로 외국인 입국을 제한한 베트남 정부를 설득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가 베트남 정부의 봉쇄 조치로 베트남 현지 생산라인의 개조작업을 담당할 기술진을 보내지 못해 발을 굴렀다.
삼성이 베트남 최대 외국인 투자자이자 베트남 수출의 25%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코로나19라는 세계적 대재난 앞에서 베트남 정부의 후순위 고려사항으로 밀렸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공조해 일부 인력을 보내면서 급한 불을 껐지만 베트남 사례는 코로나19에 따른 각국의 이해관계가 얼마나 자국 중심으로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부른 신(新)고립주의 확산 속에서 기업 '리쇼어링'(기업의 모국 복귀, Re-Shoring)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이유다. ‘세계의 공장’ 중국이 셧다운(가동 중단)에 들어가는 등 제조업 글로벌 공급망(GVC) 붕괴 위기를 목격한 세계 각국은 유턴 지원을 앞다퉈 강화하고 있다.
특히 2017년에는 유턴기업의 신규 창출 일자리가 미국 제조업 신규 고용(14만9269명)의 55%를 차지했다. 이 중에선 애플이 2만2200개, GM(제너럴모터스)이 1만3000개, 보잉이 7700개 등으로 U턴 대기업이 만든 일자리가 적잖았다.
가장 큰 유인책은 법인세 감면 정책이었다. 오바마 정부는 법인세를 38%에서 28%로 낮추고 유턴기업의 공장 이전 비용을 20% 보조해줬다. 트럼프 행정부는 여기서 나아가 법인세율을 최고 21%까지 내리고 과감한 세제 지원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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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FP
제조업 강국 독일 역시 자국의 높은 인건비를 상쇄하기 위해 스마트 팩토리와 연구개발(R&D) 보조금으로 자국 기업의 유턴을 유도하고 있다. 법인세율 완화(26.4%→15.8%)와 규제 하나를 추가하면 하나를 없애는 정책도 추진했다.
최근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인해 각국 정부들은 리쇼어링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고 있다. 지난 10일 래리 커들로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중국에서 돌아오는 기업의 각종 비용을 100% 지원하는 것은 매우 좋은 정책"이라며 "더 많은 기업이 유턴할 수 있도록 일정 시한을 정해 필요한 정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도 지난 7일 중국을 떠나려는 자국 기업의 이전을 돕기 위해 총 2435억엔(약 2조7170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특히 자국 복귀를 원하는 부품·소재 분야 대기업에 생산 공장 이전 비용의 절반을 지원하겠다는 유턴 지원책을 내놨다.
까다로운 조건에 대기업 외면...용두사미 된 유턴법
성과가 미진하자 시행 5년 만인 2018년 ‘유턴기업 종합지원대책’을 내놓았다. 보조금과 세제감면 등 대기업에 대한 추가 인센티브가 핵심이다. 중소·중견기업이 받는 다채로운 세제·인력·금융 혜택에 비하면 범위와 강도 모두 제한적이다. ‘2년 이상 해외사업장을 운영한 뒤, 해외사업장을 청산·양도하거나 생산량을 25% 이상 축소하고 국내에 복귀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도 걸림돌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지난 7일 "해외로 나간 한국 기업의 5.6%만 돌아와도 일자리 13만개가 생긴다"고 밝혔다. 업종별 일자리 창출 효과를 보면 자동차 4만3000명, 전기·전자 3만2000명, 전기장비 1만명, 1차금속 1만명, 화학 6000명 등으로 추산된다.
생산라인에 직접 투입되는 노동력이 많은 산업일수록 '리쇼어링'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더 크다. 이 일자리 창출은 고스란히 경제효과로 이어진다. 국내생산액 40조원, 부가가치유발액은 13조1000억원에 달한다. SK하이닉스나 현대모비스 같은 굴지의 기업이 새로 생기는 셈이다.
덩치 큰 대기업의 유턴이 낳는 고용·투자 효과는 분명하다. 현대모비스 사례처럼 중소 부품·협력사의 동반 유턴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해외 사업을 정리하고 한국 복귀를 결심하긴 쉽지 않다. 기업들의 해외투자는 국내 규제 회피와 현지시장 확보, 낮은 인건비 활용 등 나름의 경영전략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혜택’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대기업이 국내로 복귀할 유인은 적은 셈이다.
중국에서 설움을 당하고 있는 배터리 3사(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가 국내로 복귀한다면 그 경제적 효과는 천문학적일 것으로 추산된다. 당장 중국내 모든 생산기지의 문을 닫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방식이 아니어도 된다. 앞으로 있을 추가 투자를 국내로 끌어올 수만 있어도 리쇼어링 정책은 성공적이다.
피부와 와 닿는 인센티브...'대기업=적폐' 프레임 걷어야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지금은 대·중소기업을 따질 시점이 아니다”라며 “기업들이 정부가 친기업으로 돌아섰다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규제, 인허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다. 전대미문의 위기 앞에선 ‘대기업=적폐’ 프레임을 걷어내야 한다는 얘기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기업들의 글로벌 공장 가동이 중단되며 해외 진출 대기업의 유턴을 유도하기에 좋은 조건이 갖춰졌다"며 "여기에 더해 세제 개선과 노동 개혁 등 과감한 사회적 합의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해외 전문가들도 리쇼어링이 최근 코로나바이러스에 수그러든 경제를 되살리는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나다 샌더스 노스이스트대 다모어-맥킴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번 팬데믹으로 인해 미국으로 더 많은 제조업을 복귀시키고 사람들을 다시 일하게 할 것"이라며 "기업들은 한 바구니 안에 있는 계란에만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