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삼성이 베트남서…" 연어 기업 경제학

머니투데이 세종=민동훈 기자, 권혜민 기자, 김훈남 기자, 심재현 기자, 김수현 기자 2020.04.25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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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 '메이드 인 코리아'] 1류 국가에서 만드는 1류 상품의 경쟁력

편집자주 포스트 코로나(Post Covid-19) 시대 달라진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정책은 ‘제조업 리쇼어링’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주요 무역·투자 상대국의 국경봉쇄가 잇따르면서 우리 기업이 고전하고 있다. 소비시장과 저임금 인력을 찾아 해외로 나간 기업들의 취약점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제조업 생태계는 대기업과 그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짜인다. 대기업을 돌아오게 하는 과감한 정책전환과 사회적 문화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삼성전자의 박닌성 휴대폰공장 전경/사진제공=삼성전자삼성전자의 박닌성 휴대폰공장 전경/사진제공=삼성전자


#"엔지니어를 못 보내면 공장이 멈춥니다."

지난달 초 삼성그룹이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에 긴급요청을 타전했다. 코로나19(COVID-19) 사태로 외국인 입국을 제한한 베트남 정부를 설득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가 베트남 정부의 봉쇄 조치로 베트남 현지 생산라인의 개조작업을 담당할 기술진을 보내지 못해 발을 굴렀다.

삼성이 베트남 최대 외국인 투자자이자 베트남 수출의 25%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코로나19라는 세계적 대재난 앞에서 베트남 정부의 후순위 고려사항으로 밀렸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공조해 일부 인력을 보내면서 급한 불을 껐지만 베트남 사례는 코로나19에 따른 각국의 이해관계가 얼마나 자국 중심으로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신고립주의 대두...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
"천하의 삼성이 베트남서…" 연어 기업 경제학
국경 봉쇄는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새로운 표준)이다.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시행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앞에서 더 이상 공허한 '세계화' 논리는 없다. 철저히 자국 이익을 위한 집중과 선택이 있을 뿐이다. 자국 산업을 지키고 자국 국민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데 전세계 국가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코로나19가 부른 신(新)고립주의 확산 속에서 기업 '리쇼어링'(기업의 모국 복귀, Re-Shoring)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이유다. ‘세계의 공장’ 중국이 셧다운(가동 중단)에 들어가는 등 제조업 글로벌 공급망(GVC) 붕괴 위기를 목격한 세계 각국은 유턴 지원을 앞다퉈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리쇼어링 전문 비영리기구인 '리쇼어링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2010년 오바마 정부가 '리메이킹 아메리카(Remaking America)'를 외치며 리쇼어링에 불을 지핀 이후 9년간 총 3327개 기업이 미국으로 돌아왔다. 연평균 369개다. 미국에 다시 공장을 연 기업들이 9년간 새로 만든 일자리 수는 34만7236개에 이른다.

특히 2017년에는 유턴기업의 신규 창출 일자리가 미국 제조업 신규 고용(14만9269명)의 55%를 차지했다. 이 중에선 애플이 2만2200개, GM(제너럴모터스)이 1만3000개, 보잉이 7700개 등으로 U턴 대기업이 만든 일자리가 적잖았다.

가장 큰 유인책은 법인세 감면 정책이었다. 오바마 정부는 법인세를 38%에서 28%로 낮추고 유턴기업의 공장 이전 비용을 20% 보조해줬다. 트럼프 행정부는 여기서 나아가 법인세율을 최고 21%까지 내리고 과감한 세제 지원책을 펼쳤다.


/사진=AFP/사진=AFP
일본도 리쇼어링에 사활을 걸고 있다. 법인세 인하는 기본이고 도쿄·오사카 등 대도시로 돌아오는 기업에는 규제 혜택과 연구개발비까지 지원한다.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완성차업체와 캐논 같은 전자업체가 일본으로 공장을 옮겼다.

제조업 강국 독일 역시 자국의 높은 인건비를 상쇄하기 위해 스마트 팩토리와 연구개발(R&D) 보조금으로 자국 기업의 유턴을 유도하고 있다. 법인세율 완화(26.4%→15.8%)와 규제 하나를 추가하면 하나를 없애는 정책도 추진했다.



최근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인해 각국 정부들은 리쇼어링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고 있다. 지난 10일 래리 커들로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중국에서 돌아오는 기업의 각종 비용을 100% 지원하는 것은 매우 좋은 정책"이라며 "더 많은 기업이 유턴할 수 있도록 일정 시한을 정해 필요한 정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도 지난 7일 중국을 떠나려는 자국 기업의 이전을 돕기 위해 총 2435억엔(약 2조7170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특히 자국 복귀를 원하는 부품·소재 분야 대기업에 생산 공장 이전 비용의 절반을 지원하겠다는 유턴 지원책을 내놨다.

까다로운 조건에 대기업 외면...용두사미 된 유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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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시 2013년 12월 '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유턴법)'을 시행하며 유턴을 장려했다. 그러나 수치로 본 결과는 처참하다. 2014년부터 올해 3월까지 9년여동안 리쇼어링 기업은 72곳에 그친다. 이마저 계획 번복이나 폐업 등을 감안하면 68개사에 불과하다.



성과가 미진하자 시행 5년 만인 2018년 ‘유턴기업 종합지원대책’을 내놓았다. 보조금과 세제감면 등 대기업에 대한 추가 인센티브가 핵심이다. 중소·중견기업이 받는 다채로운 세제·인력·금융 혜택에 비하면 범위와 강도 모두 제한적이다. ‘2년 이상 해외사업장을 운영한 뒤, 해외사업장을 청산·양도하거나 생산량을 25% 이상 축소하고 국내에 복귀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도 걸림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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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국내 조선·해운 등 주력산업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벌어진 '고용 대란'은 앞으로 더 걱정이라고 지적한다. 시장에서는 한국 경제가 '제조업 위기→실업자 증가→가계소득 감소→내수 부진→제조업 위기 악화'의 악순환에 빠졌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오려면 일자리 만들기가 시급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지난 7일 "해외로 나간 한국 기업의 5.6%만 돌아와도 일자리 13만개가 생긴다"고 밝혔다. 업종별 일자리 창출 효과를 보면 자동차 4만3000명, 전기·전자 3만2000명, 전기장비 1만명, 1차금속 1만명, 화학 6000명 등으로 추산된다.



생산라인에 직접 투입되는 노동력이 많은 산업일수록 '리쇼어링'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더 크다. 이 일자리 창출은 고스란히 경제효과로 이어진다. 국내생산액 40조원, 부가가치유발액은 13조1000억원에 달한다. SK하이닉스나 현대모비스 같은 굴지의 기업이 새로 생기는 셈이다.

덩치 큰 대기업의 유턴이 낳는 고용·투자 효과는 분명하다. 현대모비스 사례처럼 중소 부품·협력사의 동반 유턴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해외 사업을 정리하고 한국 복귀를 결심하긴 쉽지 않다. 기업들의 해외투자는 국내 규제 회피와 현지시장 확보, 낮은 인건비 활용 등 나름의 경영전략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혜택’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대기업이 국내로 복귀할 유인은 적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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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격적인 대우와 지원으로 이제 대기업 리쇼어링을 유도해야 한다. 국내 경제에 미칠 막대한 경제효과를 생각하면 대기업에 대한 특혜라고 금기시할 필요가 없다. 지난해 5개 협력사와 함께 울산으로 돌아온 현대모비스는 3300억원을 투자해 최대 1만명 이상의 직·간접 고용을 유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에서 설움을 당하고 있는 배터리 3사(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가 국내로 복귀한다면 그 경제적 효과는 천문학적일 것으로 추산된다. 당장 중국내 모든 생산기지의 문을 닫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방식이 아니어도 된다. 앞으로 있을 추가 투자를 국내로 끌어올 수만 있어도 리쇼어링 정책은 성공적이다.

피부와 와 닿는 인센티브...'대기업=적폐' 프레임 걷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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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리쇼어링을 위해선 무엇보다 피부에 와 닿는 지원책이 필수라는 지적이다. 법인세율 인하 같은 세제지원은 물론 수도권으로는 눈길도 못 돌리게 하는 입지 규제도 풀어야 한다. 대기업 노조의 반발은 스마트팩토리 등 4차 산업혁명의 기술력으로 대응하면 된다. 대기업의 수많은 협력사와 내수시장 확장성 등을 감안하면 이 같은 리쇼어링만으로 중소·중견기업 수십 개사가 생기는 것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지금은 대·중소기업을 따질 시점이 아니다”라며 “기업들이 정부가 친기업으로 돌아섰다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규제, 인허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다. 전대미문의 위기 앞에선 ‘대기업=적폐’ 프레임을 걷어내야 한다는 얘기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기업들의 글로벌 공장 가동이 중단되며 해외 진출 대기업의 유턴을 유도하기에 좋은 조건이 갖춰졌다"며 "여기에 더해 세제 개선과 노동 개혁 등 과감한 사회적 합의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해외 전문가들도 리쇼어링이 최근 코로나바이러스에 수그러든 경제를 되살리는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나다 샌더스 노스이스트대 다모어-맥킴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번 팬데믹으로 인해 미국으로 더 많은 제조업을 복귀시키고 사람들을 다시 일하게 할 것"이라며 "기업들은 한 바구니 안에 있는 계란에만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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