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남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이 지난 3월18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 제51기 정기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삼성전자 (80,800원 ▲1,000 +1.25%)는 정보 저장용 '메모리 반도체'에선 세계 1위로 이 분야의 공정기술과 제조력 노하우가 남다르지만 정보 처리용 '비메모리 반도체'에선 1위 자리에서 한참 밀린다. 파운드리는 대만 TSMC가, 팹리스(반도체 설계)는 미국 퀄컴이 독보적인 존재다.
◆'반도체 비전 2030'…핵심은 미세공정 초격차
'비전 2030'의 핵심 전략은 대규모 투자를 통한 기술력 확보다. 삼성전자는 전체 투자금의 55%인 73조원을 연구개발(R&D)에 쏟아붓고 45%인 60조원은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같은 최첨단 생산 인프라에 투입할 방침이다.
투자 규모는 파운드리 1위 TSMC를 훨씬 능가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시설투자로 79억달러(9조1700억원)를 집행하면서 분기 기준 역대 최고액을 썼다. TSMC보다 25억달러 이상 많은 금액이다.
삼성전자는 미세공정에서 우위를 점하는 초격차에도 집중하고 있다. 34년 동안 파운드리라는 한 우물만 파며 독보적 입지를 구축한 TSMC를 따라잡으려면 빠른 선단공정(최첨단 나노공정) 도달을 통한 '기술 초격차'만이 살 길이라는 진단이다.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제공=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올초 화성사업장을 찾아 3나노 개발을 보고받고 "역사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밝힌 것도 비메모리 반도체 1위를 향한 의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TSMC는 5나노 양산에서는 아직 앞선다. TSMC는 올해 2분기부터 5나노 공정을 활용한 대량 생산체제에 돌입한다. 3나노 공정 기술 개발도 한창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에서야 5나노 반도체 양산에 나설 전망이다. 단 3나노 칩은 내년 하반기부터 양산체제에 들어가 TSMC보다 한발 앞설 수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선단공정 기술에서는 삼성전자가 TSMC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며 "삼성 화성사업장 EUV공장 내 5나노 라인 등에 엄청난 투자가 이뤄지고 있어 TSMC와의 격차를 좁힐 수 있다"고 밝혔다.
◆TSMC 33년간 고객과 신뢰구축…파운드리 점유율 격차 벌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제공=삼성전자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대량생산을 통한 치킨게임으로 메모리시장을 평정했다면 TSMC는 미국의 위협에도 불구, 중국 화웨이와 계속 거래를 유지하는 등 오랜 신뢰관계가 강점"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파운드리 사업은 미세공정 기술력이나 가격만으로 쉽게 거래처를 바꾸지 않는다는 속성을 삼성전자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객사 신뢰를 바탕으로 올해 TSMC의 매출은 더 늘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 1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이 TSMC 54.1%, 삼성전자 15.9%라고 분석했다. TSMC는 전년대비 6%포인트 늘었고 삼성전자는 3.2%포인트 줄었다. TSMC는 올 1분기에 코로나19(COVID-19) 여파에도 불구, 지난해보다 매출이 42% 증가했다.
◆기술력만으론 부족…대형고객 유치 특단의 대책 필요
정은승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사장이 2019년 10월10일(현지시간) 독일에서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19 뮌헨'에서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가 앞으로 파운드리 점유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려면 궁극적으로 관련 사업부를 분사해야 한다는 진단도 들린다. 애플과 퀄컴 같은 초우량 고객은 IP(지적재산권) 유출을 우려해 경쟁사인 삼성에게 파운드리 물량을 맡기기 꺼린다. 반면 TSMC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모토를 내세우고 있다. TSMC는 이런 모토를 바탕으로 올 가을 출시될 아이폰12의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칩을 이미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장은 "파운드리 사업에서는 아직 삼성의 비전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보인다"며 "D램 1위인 삼성의 기술력을 더 끌어올리는 한편 대형 고객사의 물량 수주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박소연 기자
대만의 삼성 'TSMC'…삼성을 '추격자'로 만든 힘
/사진제공=TSMC
대만 TSMC의 류더인 회장은 지난해 9월 타이페이에서 열린 반도체 컨퍼런스 '세미콘'에서 이런 얘기를 꺼내면서 이에 대한 근거로 TSMC의 압도적인 기술력을 들었다. 인텔의 창업자 고든 무어가 제시한 무어의 법칙은 '반도체 직접회로의 성능은 18개월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는 이론이다.
당시 류 회장은 2020년에는 5㎚(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공정 반도체 양산이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그의 전망대로 TSMC는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인 '아이폰12'에 탑재되는 A14칩(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을 5나노 공정으로 양산한다.
류 회장은 "초미세공정의 발전은 무어의 법칙을 증명한다"며 "기술 리더십은 TSMC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경쟁업체도 인정하는 기술력
/사진제공=TSMC
삼성전자는 7나노부터 3나노 개발 고지를 선점했다. 하지만 TSMC는 삼성전자를 제치고 이달부터 세계 최초로 5나노 양산에 돌입한 상태다.
특히 5나노급 이하는 회로를 아주 미세하게 새겨야 하기 때문에 1대당 1500억원에 달하는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를 써야 한다. 숫자가 낮은 공정을 적용할수록 웨이퍼 한 장당 더 많은 칩을 뽑아낼 수 있고 전력효율과 성능까지 잡을 수 있다.
파운드리 시장 3위인 글로벌파운드리는 지난해 7나노 이하 공정 기술 개발을 포기한다고 밝힐 정도로 이 분야는 고비용·고난도 싸움이다. 삼성전자는 2022년 3나노 양산 계획까지 밝힌 상태다.
TSMC는 이미 지난해 하반기 2나노 R&D(연구·개발)를 공식화했다. 대만 정부는 최근 대만 신주 남방과학기술단지에 있는 TSMC 2나노 팹에 대한 환경영향 평가를 승인했다.
TSMC의 시선은 벌써 1나노로 향하고 있다. TSMC 연구 부사장인 필립 황은 지난해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반도체 관련 포럼에서 "현재 기술력에 만족할 수 없다"며 "고객사들에게 1나노 기술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33년간 쌓은 고객사들의 '무한신뢰'
TSMC 12인치 팹. /사진제공=TSMC
TSMC는 1987년 설립됐다. 국내 파운드리 원조인 DB하이텍은 2000년 파운드리 사업을 시작했고 삼성전자는 2005년부터 뛰어들었다. 한국보다 10년 이상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업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셈이다.
특히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웨이에 대한 제재 선포 이후 TSMC 고객사들의 줄이탈이 예상됐으나 현실은 달랐다. 전 세계적으로 5G(5세대 통신) 사업 확대로 화웨이는 물론 애플과 퀄컴, AMD, 엔비디아 등의 주문이 몰렸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1분기 파운드리 시장 예상 점유율은 △TSMC 54.1% △삼성전자 15.9% △글로벌파운드리 7.7% △DB하이텍 0.8%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TSMC의 올해 1분기(1~3월) 순이익은 38억9000만달러(약 4조 7400억원)로 작년 동기 대비 무려 90.6% 급증했다. 코로나19 악재 속에서도 시장의 예상치를 10% 이상 웃도는 성적을 기록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TSMC 고객사들은 신제품 물량이 있으면 업체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밀어준다"며 "삼성전자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라고 말했다.
◆순수 파운드리만 고집…기술 유출 적어
TSMC 12인치 팹. /사진제공=TSMC
팹리스와 파운드리 간 긴밀한 협업은 필수다. 팹리스들은 설계와 생산을 병행하는 삼성전자는 경쟁사로 인식하는 반면 TSMC는 그럴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다.
그동안 퀄컴은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AP '스냅드래곤' 물량 대부분을 TSMC에 위탁했다. 나머지 중저가폰 AP는 삼성전자의 몫이었다.
삼성전자는 '2030년 비메모리 1위' 달성을 위해 TSMC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고객사 확보 차원에서 2017년 5월 시스템LSI 사업부에 속한 파운드리 사업을 분리해 별도 사업부로 독립시켰다.
그럼에도 고객사들의 깐깐한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사업부를 분사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올 초 "(분사 계획은) 아직 없다"고 선을 그었다.
◆칩·설계 우수 인재 확보에 '올인'
TSMC 12인치 팹. /사진제공=TSMC
우수 인력 확보에 초점이 맞춰진 이 프로젝트는 류더인 회장의 의지가 적극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류 회장은 대만 경제부에 체계적인 반도체 인재 양성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그는 지난해 여러 행사에서 '산업 발전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기술 장벽이 아닌 엔지니어와 전문가 집단 부족', '대만에 더 큰 인재풀을 만들기 위해 국가 R&D 예산을 늘려야 한다' 등 반도체 인력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왔다.
이후 TSMC는 지난해 11월 도쿄대와 손잡고 웨이퍼 시제품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일본 반도체 산업은 완전히 무너졌지만 TSMC와의 산학협력은 비메모리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삼성전자와 향후 특허 다툼으로 번질 수도 있다.
이정혁 기자
'반도체 금광' 비메모리 나노전쟁…막오른 10년 전쟁
문재인 대통령(왼쪽에서 두번째)이 2019년 4월30일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EUV(극자외선)동 건설 현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에서 두번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맨 왼쪽은 김기남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 부회장, 맨 오른쪽은 정은승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 /사진=뉴시스
당시 삼성전자는 133조원을 투자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포함한 비메모리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2030년까지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내용의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정부도 나란히 업계와 발맞춘 '2030년 종합반도체 대책'을 냈다.
두사람이 삼성전자 파운드리 생산라인 건설현장에서 함박웃음을 짓는 장면을 두고 업계에서는 "한국 반도체의 미래"라는 얘기가 나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시스템반도체 분야의 도전이 성공하면 (우리는) 명실상부한 종합반도체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지난 1년 동안의 삼성전자 비메모리 전략은 파운드리 역량 강화로 요약된다. 반세기 이상 쌓인 미국·유럽의 반도체 설계 노하우를 추격하기보다 메모리 공정에서 축적한 기술력을 발판으로 파운드리시장부터 접수하자는 구상이다. 파운드리 세계 1위업체 대만 TSMC 따라잡기가 1차 목표가 된 이유가 여기 있다.
현재 3나노 파운드리 공장 투자도 예정대로 진행 중이다. 지난해 6월 선행투자 개념으로 2나노 연구개발에 착수한다는 로드맵도 공개했다. 이런 구상대로라면 2022년 3나노, 2024년 2나노 반도체 양산 체제를 갖출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는 올 1월 세계 최초로 개발한 3나노 공정기술을 시연하면서 추격의 기세를 끌어올리고 있지만 5나노 양산 시점이 올해 말로 다소 뒤진다. 업계에서는 TSMC가 삼성전자를 제치고 애플 아이폰12에 들어가는 A14 바이오닉칩을 수주한 배경으로 평균 수율(합격품 비율) 80%를 넘긴 5나노 공정 기술력을 든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미세공정 기술력이 핵심인 이유는 공정이 미세화될수록 고효율 고성능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데다 생산성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최근 파운드리 시장은 7나노를 기점으로 갈렸다. 7나노 공정의 벽을 넘은 업체가 TSMC와 삼성전자 두곳뿐이다. 글로벌파운드리(미국) 등 핵심 제조사들은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이용한 7나노 이하 첨단공정을 포기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인공지능 관련 비메모리반도체 시장만 해도 2017년 12억달러에서 2022년 158억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비메모리반도체 시장성장률이 2022년까지 연평균 5%로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 전망치 1%의 5배에 달할 것으로 관측했다.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며 반도체 강국이라고 자화자찬하지만 규모가 2배 이상 큰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선 존재감이 미약하다. 시장점유율이 3% 수준으로 대만(8%)이나 중국(3%)에도 밀린다.
TSMC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실적발표 콘퍼런스콜(다중전화회의)에서 올 1분기 매출이 3106억 대만달러(약12조6000억원)로 지난해 1분기보다 42% 늘었다고 밝혔다. 올 1분기 영업이익은 1285억 대만달러(약 5조2000억원)로 50% 늘었다.
TSMC 생산라인. /사진제공=TSMC
업계 관계자는 "시장 수급이 크게 흔들릴 때는 1위 업체 쏠림현상이 두드러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열세를 인정하면서도 조금씩 점유율을 키워 기술력에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김형준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시스템반도체 산업 육성은 십수년 전부터 전문가들이 강조하던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재현 기자
56세 창업·87세 은퇴…'삼성도 안 부럽다' 반도체따거
TSMC를 전 세계 1등 파운드리 회사로 키워낸 것은 대만 반도체의 아버지로 불리는 모리스 창 창업주 겸 전 회장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미래를 내다본 혜안으로 세계 최초 파운드리 기업을 세운 것은 신의 한 수 였다. 창 전 회장은 회사가 어려울 때 바로 복귀해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는 탁월한 경영 감각을 보였다.
◆반도체 외길 인생…대만의 강점·약점 제대로 파악해 TSMC 창업
모리스 창 TSMC 창업주 겸 전 회장. /사진=AFP
창 전 회장은 중국 저장성 닝보시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폭격을 피해 광저우와 홍콩으로 거처를 옮겼고 결국 미국으로 이주했다. 1949년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고, 공학도의 꿈을 품은 그는 MIT로 학교를 옮겨 기계공학 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유명 반도체 기업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20년간 근무하며 부사장 자리까지 오를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TI는 그가 스탠퍼드대학원에서 전기공학박사학위를 받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창 전 회장은 TI에서는 물론, 이후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이적한 제너럴인스트루먼트(GI)에서 연구개발(R&D)를 본격 육성하려는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때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이 대만 정부다. 대만공업기술연구원(ITRI) 원장을 맡아 줄 수 없겠냐는 제안을 받고 창 전 회장은 1985년 모두의 만류를 뒤로 한 채 대만으로 떠났다. 이 대만행이 결국 TSMC 창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 대만 정부는 반도체 회사를 육성할 적임자를 찾고 있었다. 창 전 회장은 오랜 기간의 업계 경험을 바탕으로 '순수 파운드리' 사업이라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내놨다.
TSMC 12인치 팹. /사진제공=TSMC
TSMC는 1987년 2월 자본금 2억2000만달러(2710억4000만원)로 설립됐는데 정부가 절반, 외국 투자자가 절반의 자금을 댔다. TSMC는 1990년대 민영화가 됐지만 대만 정부는 국가개발기금 등을 통해 지금도 지분 6%를 보유중이다.
창 전 회장의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브로드컴, 마벨, 엔비디아 등이 안심하고 TSMC에 주문 제작을 의뢰해 왔고 이들은 오랜 기간 윈윈 관계를 유지하며 TSMC와 함께 컸다.
지난해 기준 TSMC는 499개 고객사로부터 1만761개의 서로 다른 제품을 생산했다고 밝혔다. 그 중에는 애플, 퀄컴 등 대기업도 있다. 지난해 TSMC 매출액은 1조699억8545만대만달러(43조8052억원)이다.
엔디비아 젠슨 황 CEO는 2018년 창 전 회장이 87세의 나이로 은퇴할 때 "한 시대가 끝났다"며 "그는 내가 아는 세계 최고의 CEO 중 한 명이었다"고 평가했다.
창 전 회장 스스로도 무에서 유를 창조했음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TSMC의 가장 큰 성과는 새로운 사업 모델이었단 점"이라며 "더 중요한 것은 TSMC가 IC(집적회로) 산업에 진입장벽을 낮춘 덕에 수 많은 팹리스 업체들이 생겨났다"고 강조했다.
◆노익장의 역발상…복귀와 동시에 외친 '투자' 적중
/사진=AFP
고령을 이유로 2005년 한 차례 은퇴했지만 3년 뒤 금융위기 탓에 TSMC 매출이 급락하자 2009년 다시 현업에 복귀했다. 그의 나이 78세였다.
모든 것이 위축됐던 시기, 돌아온 창 전 회장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과감한 투자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창 전 회장은 당초 15억달러(1조8480억원)로 줄였던 연간 투자 규모를 2개월 만에 19억달러로 늘렸다. 이듬해 1월에는 TSMC 사상 최대 규모인 48억달러 상당 투자계획을 내놨다.
금융위기로 해고됐던 직원도 복직시켰다. TSMC는 1200명이던 R&D 인력을 30%까지 더 늘렸다.
역발상이었다. 당시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09년 반도체 산업 전반 자본 지출이 전년 대비 45%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었기 때문이다.
창 전 회장은 당시의 경제침체를 그리스 비극에 비유하면서 "1막은 금융위기, 2막은 글로벌 경기둔화, 3막은 결국 회복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경영감각은 적중했다. 2010년 TSMC 매출액은 전년 대비 41.9% 늘어난 4195억대만달러(17조1659억원)를 기록했다.
TSMC는 2009년부터 매년 약 100억달러를 들여 첨단 시설을 늘렸고 연구 개발 비중도 당시 매출의 8%로 높였다. 지난해에도 이 비중을 유지하며 914억1900만 대만달러(3조7408억원)를 연구개발에 썼다.
◆무역전쟁·코로나19 등 숙제 받아든 2세대…대규모 투자는 '지속'
(왼쪽부터) 마크 리우 회장과 CC웨이 대표/사진=로이터
창 전 회장이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한 것은 마크 리우(류더인) 현 회장과 C.C.웨이 현 최고경영자(CEO) 등 두 사람이다.
리우 회장은 이사회를 이끌며 자본 지출, 임원 인사 등 주요 결정의 문지기 역할을 했고 웨이 사장은 모든 임원의 보고를 받는 동시에 고객을 응대하는 최고위 대표 역할을 맡았다.
두 사람은 상호 보완적 성향으로 평가된다. 창 전 회장은 "리우 회장은 더 성찰적이고 모든 각도에서 이슈를 공격할 것"이라며 "웨이 사장은 의사 결정이 좀 더 빠르다"고 말했다.
창 전 회장이 맡긴 고객도 달랐는데 웨이 사장은 1위 고객사인 애플을, 리우 회장은 퀄컴과의 사업을 총괄했다.
다만 이원적 구조가 앞으로도 지속될 지는 미지수다. 닛케이아시안리뷰는 "2021년 현재의 이사회 임기가 끝나면 경영쇄신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TSMC 앞에는 현재 숙제가 산적해 있다. 두 사람이 취임한 후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한 데다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 추이는 둔화되고 있다. 신성장 동력이 될 사물인터넷과 자율주행차 산업은 아직 성장 속도가 더디다. 최근에는 코로나19가 전세계 경기를 침체로 몰아가고 있다.
지난 16일 닛케이아시안리뷰에 따르면 코로나19가 6월 안정된다는 가정 하에 TSMC는 올해 여전히 15% 이상의 매출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1월에 예상했던 수치(17%)보단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 전 회장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대규모 투자는 지속한다. TSMC는 올해 장기 성장을 염두에 두고 150~160억달러(18조4800억원~19조7100억원)의 자본 지출(시설투자)를 할 예정이다. 첨단공정 개발을 위해서다. TSMC는 이미 5나노 공정 양산에 들어갔고, 2021년에는 3나노 공정 시험생산으로 기술을 확장할 계획이다.
김성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