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눈물젖은 원유레버리지ETN, 투자자 잠정손실 4000억

머니투데이 조준영 기자 2020.04.2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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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개인투자자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투기과열 현상이 벌어진 원유선물 레버리지ETN(상장지수증권)이 사실상 상장폐지 수순에 들어갔다.

레버리지ETN이 추종하는 원유선물 지표가치가 0에 가까이 수렴하면서 시가총액 약 4300억원 규모의 4개 레버리지ETN 증권이 휴지조각이 될 위기에 처했다. 투자자 잠정손실액은 4000억원 이상이 될 전망이다.



거래소가 투자자손실 위험을 경고하며 레버리지ETN 거래를 정지시킨 가운데 매매거래정지가 무기한으로 연장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지표가치가 '0'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1일 괴리율이 적게는 수백~수천%로 치솟은 4개 레버리지ETN의 IIV(실시간 지표가치)는 100원대 아래로 떨어졌다. 이들 ETN은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 △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혼합 ETN(H)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 △QV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 총 4개다.



거래소는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기초자산인 WTI원유선물이 50% 이상 하락해 지표가치가 ‘0’원이 되면 투자금을 전액 손실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신한·미래에셋 레버리지 ETN의 거래를 23일, 24일 양일간 정지한다고 밝혔다. 현재 거래가 정지된 삼성·QV(NH투자증권) 레버리지 ETN의 거래재개 시점은 별도로 공지한다고 말했다.

지표가치가 0이라는 말은 쉽게 말해 더 이상 증권으로서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원유선물 ETN은 추종하는 기초자산의 수익률을 ETN가격에 그대로 반영하도록 설계됐는데, 기준가인 지표가격이 0원을 찍을 경우 추후 유가가 오르더라도 원금이 전액 손실된다는 것이다.

현재 신한 레버리지ETN의 IIV 값은 63이다. 만약 유가가 단기간에 급반등을 해 현 유가보다 50%(레버리지는 100%) 폭등한다고 해도 IIV 값은 126(63의 2배)에 그친다. 현재 신한 ETN 가격은 650원으로 전혀 현재 유가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 IIV 가격이 0원에 가까워질수록 사실상 거래가 의미가 없다는 의미다. IIV가 1로 떨어지게 되면 유가가 5일 연속 50% 폭등하더라도 △1 △2 △4 △8 △16에 그치게 된다. 극단적으로 현재 레버리지ETN 거래는 이미 가치를 상실한 가상의 기업을 두고 투자자들의 수급만으로 가격을 뻥튀기 하는 일과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4000억 '휴지조각' 위기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2일 장마감 후 이들 ETN 4종목의 시가총액은 총 4344억7500만원, 21일 기준 지표가치금액은 1493억9345만원이다. 22일자 지표가치금액은 이르면 이날 저녁 집계될 예정이다.

여기서 시가총액은 투자자들이 4개 ETN을 매수해 갖고 있는 금액을, 지표가치금액은 실제 이들 ETN이 추종하는 원유선물 지표가격의 총합을 말한다. 4개 증권사(신한금융투자, 미래에셋대우, 삼성증권, NH투자증권)는 시점은 다르지만 각각 1만원에 레버리지ETN 증권을 상장해 거래해왔다. 이 ETN이 실제 추종하는 지표가치, 즉 원유선물 가치가 1500억원 남짓이라는 설명이다.

이 금액은 전날 기준 액수다. 22일에는 이 지표가치가 10분의1 넘게 하락했다. 전날부터 거래가 재개된 신한 레버리지ETN의 경우 900원대였던 IIV 가격이 22일 현재 63원까지 내려왔다. 10분의1로 떨어졌다고만 가정해도 1500억이었던 지표가치금액은 150억원으로 대폭 줄어들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4개 종목이 상장폐지 또는 조기청산 절차에 돌입한다고 가정시 지표가치금액만을 돌려받게 된다. 결국 현 IIV 값을 통해 지표가치금액을 수정하면 투자자들은 전체 시가총액에서 지표가치금액을 제외한 4000억원 이상(4344억7500만원 - 약 150억원) 손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삼성증권이 22일 홈페이지에 올린 투자유의 공지문 /사진=삼성증권 홈페이지 캡쳐삼성증권이 22일 홈페이지에 올린 투자유의 공지문 /사진=삼성증권 홈페이지 캡쳐
◇어떻게 하다 이렇게까지

처음에는 괴리율이 문제였다. 지난 3월에는 유가반등을 기대한 투자자들이 레버리지ETN에 돈을 쏟아부으며 LP들의 가격조정 물량을 싹쓸이하자 괴리율이 벌어졌다.

괴리율은 ETN의 시장가격과 지표가치(IIV)의 차이를 나타내는 비율로 양수(+)인 경우에는 시장가격이 ETN의 본질적 가치인 지표가치보다 고평가된 것을 의미한다. 과대평가된 상품일수록 급격한 가격 하락 가능성도 높아진다.

추가로 가격조정을 위한 ETN물량을 수 천만주를 상장해도 며칠만에 개인투자자들이 이를 모두 사들이면서 도저히 괴리율을 잡을 수 없게 됐다. 즉 가격조정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온전히 투자자들의 수급으로만 가격이 결정돼 괴리율이 올라갔다는 뜻이다.

◇유가가 떨어지니 답이 없네

이때까지만 해도 실제 IIV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매수물량이 문제였지, IIV 가격 자체가 폭락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문제는 5월물 롤오버 시점에서 불거졌다. 지난 21일 5월물 WTI 만기시점이 가까워오자 공급과잉이 극대화되면서 유가는 마이너스(-) 37달러까지 곤두박질 쳤다. 이 영향으로 22일 IIV도 10분의 1 토막이 나버린 것이다.

ETN 가격과 원유선물 지표가격을 일치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해 가격을 조정하는 LP(유동성공급자) 증권사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LP물량은 현 IIV값의 ±6% 내외로 주문을 낼 수 있게 정해져있다. 신한 레버리지ETN의 경우 IIV값이 60대를 맴돌고 있어 6%를 적용해도 63~64원선의 매도주문을 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 주문가격은 ETN가격의 하한선을 크게 밑돈다. 신한 레버리지ETN은 22일 650원에 거래를 마쳤는데 하한가 60%를 적용해도 365원이다. LP가 가격조정을 위한 주문을 내고 싶어도 하한가에 막혀 낼 수 없게 된 것이다.

◇숱한 투자경고, 거래정지에도 막을 수 없던 불나방들

이번 레버리지ETN의 투자과열에 대해 증권업계는 물론이고 거래소도 혀를 내두른다. 최근 몇 주 동안 수차례 투자경고와 괴리율 폭등을 경고하며 손실위험을 고지했지만 늘어난 매수세가 도무지 가라앉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한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저희도 너무 답답하다. 얼마나 이게 위험한지 고지를 계속 했고 수 천만주를 추가상장해도 가격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며 "이렇게 투자자들이 몰려들면 저희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말했다.

원유선물을 담은 ETF(상장지수펀드)에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커지면서 자산운용사들은 관련 유의사항을 각 판매증권사에 전달하고 고객들에게 고지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한 대형증권사 강남지역 PB팀장은 "최근 고객들 문의는 많이 있었는데 투기성이 너무 높아 투자하지 말라고 말렸다. 유가가 너무 낮게 내려가서 쉽게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는데, 시장을 너무 심플하게 봤다. 선물을 이용하고 롤오버 코스트를 무시했다가 큰 위험에 처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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