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시련의 광야에서 '구르마'를 돌아보다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2020.04.2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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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기획한 '구르마, 십자가가 되다' 전시회가 명동성당 내 요갤러리에서 열렸다./사진=우경희 기자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기획한 '구르마, 십자가가 되다' 전시회가 명동성당 내 요갤러리에서 열렸다./사진=우경희 기자


"유행도 사조도 기술도, 첨단이 미덕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골목길 속엔 70~80년 전의 '구르마'가 여전히 현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직 짐을 벗지 못한 구르마의 숭고한 땀방울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두산인프라코어 회장)

돌아보면 지난해부터 어두웠다. 글로벌 경기부진은 생각보다 길었다.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렇게 찬바람이 스산히 불던 와중에 코로나19(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가 덮쳤다. 동북아에서 시작된 코로나19는 팬데믹(전세계적 전염병)이 됐다. 시장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수요가 절벽처럼 끊겼다.



기업들의 1분기 장사는 거의 모두 작년 대비 반토막 났다. 일부 대기업은 체감조차 어려운 조(兆)단위 금액의 적자를 이미 예약했다. 공장을 돌리고 사무실 문을 열지만 하루하루 손해가 쌓인다. 여차저차 고비를 넘고 있는 기업들은 그나마 나은 축이다. '구조조정'에 들어간 기업들은 피가 마른다. 그야말로 모두가 시련의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 가톨릭 본산 명동성당에서 21일 마감된 '구르마, 십자가가 되다' 전시는 개막부터 폐막까지 시종 소박했다. 지하 1층 한켠에 아담하게 전시장이 마련됐다. 한 가운데엔 얼마 전까지 동대문 시장에서 '현역'으로 뛰던 구르마(수레의 방언)가 전시됐다. 일제강점기부터 고치고 또 고치며 인부들이 사용해 온 실제 구르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기획한 '구르마, 십자가가 되다' 전시회가 명동성당 내 요갤러리에서 열렸다./사진=우경희 기자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기획한 '구르마, 십자가가 되다' 전시회가 명동성당 내 요갤러리에서 열렸다./사진=우경희 기자
2018년부터 2년 동안 시장을 뒤져 구르마를 찾았다. 한 대는 원형으로 전시했고 한 대는 해체해 10개의 십자가로 만들어 전시했다. 구르마가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도 십자가만큼 강렬하다. '구조조정의 시대'에 돌아보는 기업의 초심이다. 전시를 기획한게 대한상의 회장이면서 두산인프라코어 (7,700원 ▼20 -0.26%) 회장인 박용만 회장이어서 더 그렇다.



1896년 종로통에서 문을 연 포목상이 두산그룹의 출발점이다. 1946년 다시 두산상회를 연 곳도 동대문 인근이다. '구르마'와 함께 성장해온 두산이다. 그런 두산그룹이 다시 고비를 맞고 있다. 중공업으로 대대적 사업전환을 선언한 이후 최대 위기다. 중심인 두산중공업 (14,690원 ▼210 -1.41%)은 공적자금 지원을 받는 형편이다. 알짜 계열사들이 매각대상 리스트에 올랐다.

대한상의 회장으로 재계 전체의 입장을 아울러야 하는 박용만 회장이다. 그런 박 회장이 구르마와 십자가로 두산에 간절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 셈이다. 내부 유동성 위기와 외부 코로나19 여파를 모두 견뎌내고 다시 튼튼한 뿌리를 내려 달라는 당부다.

"동대문 뒷동네의 마지막 구르마들. 닳고 휘고 패이고 갈라지도록 숱한 세월을 달리고도 아직 짐을 벗지 못한 구르마의 숭고한 땀방울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오늘도 묵묵히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여기, 열 개의 구르마 십자가의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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