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삼성 'TSMC'…삼성을 '추격자'로 만든 힘

머니투데이 이정혁 기자 2020.04.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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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②부동의 파운드리 1위 TSMC…33년간 쌓은 고객사들의 '무한신뢰'

편집자주 코로나19 여파로 삼성전자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인 삼성전자가 하루빨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도 장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파운드리 분야에선 대만의 절대강자 TSMC 아성이 워낙 높다. 도대체 TSMC는 어떤 강점이 있는 걸까? 33년간 쌓아올린 TSMC의 노하우를 짚어본다.

"'무어의 법칙'(Moore's Law)은 죽지 않았다."

대만 TSMC의 류더인 회장은 지난해 9월 타이페이에서 열린 반도체 컨퍼런스 '세미콘'에서 이렇게 강조하고 이에 대한 근거로 자사만의 압도적인 기술력을 설파했다. 인텔의 창업자 고든 무어가 제시한 무어의 법칙은 '반도체 직접회로의 성능은 18개월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는 이론이다.

당시 류 회장은 2020년에는 5㎚(나노미터·1나노는 10억분의 1m) 공정 반도체 양산이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그의 전망대로 TSMC는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인 '아이폰12'에 탑재되는 A14칩(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을 5나노 공정으로 양산한다.



류 회장은 "초미세공정의 발전은 무어의 법칙을 증명한다"며 "기술 리더십은 TSMC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①경쟁업체도 인정하는 기술력
TSMC가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는 것은 삼성전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기술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파운드리 업체 중 7나노 이하 미세공정 기술은 TSMC와 삼성전자만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7나노부터 3나노 개발 고지를 선점했다. 하지만 TSMC는 삼성전자를 제치고 이달부터 세계 최초로 5나노 양산에 돌입한 상태다.

특히 5나노급 이하는 회로를 아주 미세하게 새겨야 하기 때문에 1대당 1500억원에 달하는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를 써야 한다. 숫자가 낮은 공정을 적용할수록 웨이퍼 한 장당 더 많은 칩을 뽑아낼 수 있고 전력효율과 성능까지 잡을 수 있다.

파운드리 시장 3위인 글로벌파운드리는 지난해 7나노 이하 공정 기술 개발을 포기한다고 밝힐 정도로 이 분야는 고비용·고난도 싸움이다. 삼성전자는 2022년 3나노 양산 계획까지 밝힌 상태다.


TSMC는 이미 지난해 하반기 2나노 R&D(연구·개발)를 공식화했다. 대만 정부는 최근 대만 신주 남방과학기술단지에 있는 TSMC 2나노 팹에 대한 환경영향 평가를 승인했다.

TSMC의 시선은 벌써 1나노로 향하고 있다. TSMC 연구 부사장인 필립 황은 지난해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반도체 관련 포럼에서 "현재 기술력에 만족할 수 없다"며 "고객사들에게 1나노 기술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②33년간 쌓은 고객사들의 '무한신뢰'
TSMC의 기술력은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았다. 이는 고객사들과 함께한 33년간의 신뢰 관계에서 비롯됐다.

TSMC는 1987년 설립됐다. 국내 파운드리 원조인 DB하이텍은 2000년 파운드리 사업을 시작했고 삼성전자는 2005년부터 뛰어들었다. 한국보다 10년 이상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업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셈이다.

특히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웨이에 대한 제재 선포 이후 TSMC 고객사들의 줄이탈이 예상됐으나 현실은 달랐다. 전 세계적으로 5G(5세대 통신) 사업 확대로 화웨이는 물론 애플과 퀄컴, AMD, 엔비디아 등의 주문이 몰렸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1분기 파운드리 시장 예상 점유율은 △TSMC 54.1% △삼성전자 15.9% △글로벌파운드리 7.7% △DB하이텍 0.8%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TSMC의 올해 1분기(1~3월) 순이익은 38억9000만달러(약 4조 7400억원)로 작년 동기 대비 무려 90.6% 급증했다. 코로나19 악재 속에서도 시장의 예상치를 10% 이상 웃도는 성적을 기록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TSMC 고객사들은 신제품 물량이 있으면 업체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밀어준다"며 "삼성전자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라고 말했다.

③순수 파운드리만 고집…기술 유출 적어
급변하는 글로벌 IT(정보·기술)업계에서 TSMC가 '절대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한우물만 팠기 때문이다. TSMC는 삼성전자와 달리 순수 파운드리 사업만 한다. 팹리스 입장에서는 기술 유출에 대한 부담이 적다.

팹리스와 파운드리 간 긴밀한 협업은 필수다. 팹리스들은 설계와 생산을 병행하는 삼성전자는 경쟁사로 인식하는 반면 TSMC는 그럴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다.

그동안 퀄컴은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AP '스냅드래곤' 물량 대부분을 TSMC에 위탁했다. 나머지 중저가폰 AP는 삼성전자의 몫이었다.

삼성전자는 '2030년 비메모리 1위' 달성을 위해 TSMC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고객사 확보 차원에서 2017년 5월 시스템LSI 사업부에 속한 파운드리 사업을 분리해 별도 사업부로 독립시켰다.

그럼에도 고객사들의 깐깐한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사업부를 분사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올 초 "(분사 계획은) 아직 없다"고 선을 그었다.

④칩·설계 우수 인재 확보에 '올인'
대만은 정부 차원에서 1500억원을 투입해 '2022 AI(인공지능) 반도체 제조공정·칩 시스템 R&D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AI, IoT(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등 '6대 유망기술'을 선정하고 이에 투입할 칩·설계 인재 육성이 핵심이다.

우수 인력 확보에 초점이 맞춰진 이 프로젝트는 류더인 회장의 의지가 적극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류 회장은 대만 경제부에 체계적인 반도체 인재 양성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그는 지난해 여러 행사에서 '산업 발전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기술 장벽이 아닌 엔지니어와 전문가 집단 부족', '대만에 더 큰 인재풀을 만들기 위해 국가 R&D 예산을 늘려야 한다' 등 반도체 인력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왔다.

이후 TSMC는 지난해 11월 도쿄대와 손잡고 웨이퍼 시제품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일본 반도체 산업은 완전히 무너졌지만 TSMC와의 산학협력은 비메모리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삼성전자와 향후 특허 다툼으로 번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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