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신뢰로 철옹성 쌓은 TSMC…10년안에 무너뜨리려는 삼성

머니투데이 박소연 기자 2020.04.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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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①부동의 파운드리 1위 TSMC…삼성을 '추격자'로 만든 힘

편집자주 코로나19 여파로 삼성전자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인 삼성전자가 하루빨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도 장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파운드리 분야에선 대만의 절대강자 TSMC 아성이 워낙 높다. 도대체 TSMC는 어떤 강점이 있는 걸까? 33년간 쌓아올린 TSMC의 노하우를 짚어본다.

기술·신뢰로 철옹성 쌓은 TSMC…10년안에 무너뜨리려는 삼성


"파운드리 사업은 최첨단 공정에 따라 좌우되는데, 이 측면에선 TSMC에 절대 뒤지지 않습니다."

김기남 삼성전자 (77,600원 ▼2,000 -2.51%) 부회장이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꺼낸 이 발언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에서 대만 TSMC를 따라잡아야 하는 삼성전자의 고민과 해법이 녹아있다.

삼성전자는 정보 저장용 '메모리 반도체'에선 세계 1위로 이 분야의 공정기술과 제조력 노하우가 남다르다. 하지만 정보 처리용 '비메모리 반도체'에선 1위 자리에서 한참 밀린다. 파운드리는 대만 TSMC가, 팹리스(반도체 설계)는 미국 퀄컴이 워낙 독보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그러나 메모리 반도체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2030년 안에 글로벌 파운드리 1위 자리를 꿰찬다는 목표다.

그러나 반도체 설계와 제조를 겸하는 TSMC는 종합 반도체 기업으로서 쉽게 넘볼 수 없는 파운드리 경쟁력을 갖고 있다. 과연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1위 쟁탈은 성공할 수 있을까?



'반도체 비전 2030'…핵심은 미세공정 초격차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추격전은 지난해 4월 '반도체 비전 2030' 발표 이후 속도가 붙고 있다. 이 비전은 2030년까지 133조원을 쏟아부어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승부를 본다는 것이다. 파운드리 1위가 구체적인 목표다. 삼성전자는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을 더 미뤘다간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이 비전을 세웠다.

이 비전 2030의 핵심 전략은 대규모 투자를 통한 기술력 확보다. 삼성전자는 전체 투자금의 55%인 73조원을 연구개발(R&D)에 쏟아붓고, 45%인 60조원은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같은 최첨단 생산 인프라에 투입할 방침이다.

이 규모의 투자는 파운드리 1위 TSMC를 능가한다. 실제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자본지출(CAPEX, 시설투자)로 79억달러(9조1700억원)을 집행하며 분기 기준 역대 최고액을 시설투자에 썼다. 이는 TSMC에 비해 25억달러 이상 많은 금액이다.


삼성전자는 미세공정에서 우위를 점하는 초격차에도 집중하고 있다. 34년간 파운드리라는 한 우물만 파며 독보적 입지를 구축한 TSMC를 따라잡으려면 빠른 선단공정(최첨단 나노공정) 도달을 통한 '기술 초격차'만이 살 길이라는 진단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월 세계 최초로 EUV를 적용한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제품 양산에 돌입한 데 이어 지난 1월엔 세계 최초로 GAA(Gate-All-Around)가 적용된 3나노 공정기술 개발을 공식화하며 TSMC 추월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올초 화성사업장을 찾아 3나노 개발을 보고받고 "역사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밝힌 것도 비메모리 반도체 1위를 향한 의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TSMC는 5나노 양산에서는 아직 앞서 있다. TSMC는 올해 2분기부터 5나노 공정을 활용한 대량 생산체제에 돌입한다. 3나노 공정 기술 개발도 한창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에서야 5나노 반도체 양산에 나설 전망이다. 단 3나노 칩은 내년 하반기부터 양산체제에 들어가 TSMC보다 한발 앞설 수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선단공정 기술에서는 삼성전자가 TSMC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며 "삼성 화성사업장 EUV공장 내 5나노 라인 등에 엄청난 투자가 이뤄지고 있어 TSMC와의 격차를 좁힐 수 있다"고 밝혔다.
TSMC 33년간 고객과 신뢰구축…파운드리 점유율 격차 벌려
기술·신뢰로 철옹성 쌓은 TSMC…10년안에 무너뜨리려는 삼성
하지만 일각에선 삼성전자의 이런 기술력이 실제 파운드리 점유율 확대로 이어질 지는 반신반의 한다. TSMC가 워낙 오랜 기간 고객사들과 함께 신뢰를 쌓았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이를 비집고 들어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에는 만만치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대량생산을 통한 치킨게임으로 메모리시장을 평정했다면 TSMC는 미국의 위협에도 불구, 중국 화웨이와 계속 거래를 유지하는 등 오랜 신뢰관계가 강점이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파운드리 사업은 미세공정 기술력이나 가격만으로 쉽게 거래처를 바꾸지 않는다는 속성을 삼성전자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고객사 신뢰를 바탕으로 올해 TSMC는 매출이 더 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 1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이 TSMC 54.1%, 삼성전자 15.9%라고 분석했다. TSMC는 전년대비 6%p 늘었고, 삼성전자는 3.2%p 줄었다. TSMC는 올 1분기에 코로나19(COVID-19) 여파에도 불구, 전년대비 42%의 매출 신장을 보였다.

기술력만으론 부족…대형고객 유치 특단의 대책 필요
그러나 삼성전자의 저력은 무시할 수 없다. 삼성전자는 2016년부터 전 세계 각지를 돌며 기술 로드맵을 설명하는 '삼성 파운드리 포럼'을 개최해 상당수 고객을 유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팹리스 고객들의 유연하고 편리한 설계를 돕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에코시스템'(SAFE)을 개발한 것도 고객사의 호응을 얻고 있다.

삼성전자가 앞으로 파운드리 점유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려면 궁극적으로 관련 사업부를 분사해야 한다는 진단도 들린다. 애플과 퀄컴 같은 초우량 고객은 IP(지적재산권) 유출을 우려해 경쟁사인 삼성에게 파운드리 물량을 맡기기 꺼린다. 반면 TSMC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모토를 내세우고 있다. TSMC는 이런 모토를 바탕으로 올 가을 출시될 아이폰12의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칩을 이미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장은 "파운드리 사업에서는 아직 삼성의 비전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보인다"며 "D램 1위인 삼성의 기술력을 더 끌어올리는 한편 대형 고객사의 물량 수주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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