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성동훈 기자 = 지난 3월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6회국회(임시회) 제8차 본회의에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부결되자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항의하며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2020.3.5/뉴스1
4·15총선이 끝났다. 21대 국회 개원까지 한달여 남았다. 이제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시간이다. ‘도둑을 잡기 위한 경찰차’인지 ‘같은 도둑질’인지 따지는 것도 옛날 일이 됐다. 당초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인다는 선거제 개혁의 정신이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진 지금에 주목해야 한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다원과 공존의 민주주의를 위한 도전
기존 선거제의 구조적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거대 양당이 과도한 의석을 차지하는 등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를 바꾸자는 게 골자다. 소선거구제에선 당선된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던 표가 모두 ‘사표’ 처리되면서 ‘비례성’을 약화시켰다.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고 특정 계층이 과하게 대변되면서 ‘대표성’도 결여된다.
소선거구제의 지역구 의석수를 조정하는 것은 물론, 선거 방식 자체를 개편하는 논의가 시작된 이유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연동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구를 통합해 1명 이상의 의원을 뽑는 ‘중대선거구제’, 아깝게 낙선한 의원을 구제하는 ‘석패율제’ 등이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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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의 선택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 비례대표 의석수 47개는 그대로 두고, 이 중 30석은 지역구 의석 수와 연동하기로 했다. 그동안 정당 지지율만큼 의석수를 가져가지 못한 소수정당들의 목소리가 반영됐다. 이른바 ‘4+1’(민주당·정의당·민주통합당·바른미래당+대안신당) 협의체는 지난해 12월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가결 처리하며 ‘새 시대’를 여는 듯 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하여
거기까지였다. 선거제 개편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미래통합당이 ‘위성 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앞세워 준연동형 비례제의 무력화를 시도했다. 지역구는 지역구대로, 비례대표는 비례대표대로 의석수를 챙기겠다는 속내다. 민주당도 더불어시민당으로 맞불을 놓았다. 1년 6개월.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새 선거제가 잠정 폐기되는 순간이었다.
‘5월 국회’가 선거제 보완을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당장 급해 보이지 않는다고 손을 놔버리면 모순은 심화·왜곡된다. 각 정당이 의석수라는 이해관계에서 다소 멀어진 지금을 놓치면, 선거제는 21대 국회에서 격한 갈등을 촉발시키는 ‘시한 폭탄’이 될 수밖에 없다.
당초 구상대로 비례성 강화뿐 아니라 권역별 명부에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잘 맞물려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또 지역주의 완화를 위한 작업이 절실하다. 이번 총선에서 지역주의로 회귀한 결과가 나온 만큼 이 부문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무엇보다 위성정당 창당을 차단하고, 정당득표율과 지역구 의석의 연동률을 높이는 등 원점에서 살펴야한다.
선거제 보완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한민국 대변혁을 준비하는 21대 국회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의미도 있다. 21대 국회는 코로나19(COVID19)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처리는 물론 내수 진작을 위한 각종 입법 준비에 집중해야 한다. 선거제 보완을 통해 잠재적 위험 요소를 조기에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등 참석자들이 지난해 12월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선거제도 개혁안 본회의 상정 및 후퇴 중단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12.12/뉴스1
◇‘위성정당’에 대한 국민의 따가운 시선 읽어야
사회적 갈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의미도 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전략에 대해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선거소송 소송인단은 17일 민주당·시민당, 통합당·한국당이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대법원에 선거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시민당과 한국당의 인적 구성과 의사 결정 과정 등이 독립적이지 않고, 비례대표 후보자 추천 과정을 당헌·당규 등 민주적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47조를 위반했다는 설명이다. 이들 위성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왜곡하기 위한 위헌적 목적으로 탄생했다는 주장이다.
이번 선거 결과에 담긴 민심도 읽어야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준연동형 비례제 무력화를 위해 선수를 친 통합당·한국당은 지역구 선거에서 41.45%(1191만5277표)의 득표율을 기록하고도 비례대표 선거에선 이보다 7.61%포인트(p) 적은 33.84%(944만1520표)를 얻는 데 그쳤다.
민주당·시민당도 마찬가지다. 지역구에서 49.91%(1434만5425표)를 얻었지만 비례대표 선거에선 33.35%(930만7112표)로 부진했다. 16.56%p 차이다. 유권자들이 인물 중심의 지역구 선거에선 양 당을 뽑고도, 정당 투표에선 선뜻 지지하지 못한 셈이다.
"20대 국회, 반성없이 넘어가면 믿을 국민 하나 없어"'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연비제)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도입에 대한 부작용은 여야 모두 경험했다. 연비제가 만들어낸 미래한국당도 21대 총선이 끝난 뒤 선거법 개정의 목소리를 냈다. 미래한국당은 미래통합당의 비례 위성정당으로 창당됐다.
원유철 미래한국당 대표는 지난17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당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을 끝낸 뒤 "처음부터 반대해 온 편법, 겹겹이 쌓인 누더기 선거법 재개정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미래한국당에 맞서 비례정당 더불어시민당을 만들 때 반대의 목소리가 적잖게 나왔다. 선거법 개정을 주도한 여당이 비례정당을 만들면 원칙을 저버려 명분이 없다는 지적이었다. 김해영·박주민 최고위원, 박용진‧조응천 의원 등이 비례연합정당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연동형 비례제도의 취지 자체는 잘못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연동형 비례제는 소선거구제 하에서 지역구 의석수로 대표성이 왜곡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다만 정치권이 '게임의 룰'인 선거제도를 기존 방향에서 보완을 해나갈지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논의할지 합의과정을 통해 찾아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는 "제도를 우회하고 악용하려 하는 주체가 있으면 아무리 제도를 꼼꼼히 만들어도 계속 문제는 생긴다"며 "합의를 기존 정당이 지킬 의지만 있다면 제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제도가 불비하더라도 주체의 정치적 실천 의지로 충분히 선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 연구원은 "민주당이 정치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요구에 제도개혁에 동참했다가 '제도개혁연합'에서 이탈했다"며 "민주당이 연동형비례제 선거법이라는 취지에 아직도 동의하고 그 방향에서 개선을 할지, 원점에서 다시 선거법을 논의할지 천명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선거법으로 나타난 거대양당의 위성정당 다툼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선거를 앞두고 실리를 위해 서로 상대 탓하면서 위성정당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치현실을 무시할 수 없지만 명분과 취지를 스스로 훼손시키는 건 국민에게 참 면목 없는 일"이라며 "정부여당은 이 상황에 대해 다시 복기하면서 근본적인 논의를 할 때다. 이 문제에 대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어가면 앞으로 어떤 개혁을 말해도 국민이 믿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 또한 선거제도에 대한 정치권의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통합당 등 보수야당은 계속 연비제를 반대해왔고 취지 자체에도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선거를 앞두고 눈앞의 이익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닌 장기적인 논의가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이 교수는 만일 20대 국회에서 당장 개정하기 힘든 상황이 생기더라도 논의의 싹은 틔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야당은 연비제를 유지하면 당장 참여하기 어려울 거고 합의를 이끌어가기 쉽지 않다"며 "모든 카드를 놓고 좁혀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