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의 아포리아]좌파는 정말 한국의 주류가 된 것일까?

머니투데이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0.04.20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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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아(α)와 길을 뜻하는 포리아(ποροσ)가 합쳐져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또는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여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하는 용어. '김남국의 아포리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지구적 맥락과 역사적 흐름을 고려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김남국의 아포리아]좌파는 정말 한국의 주류가 된 것일까?


유럽에서 좌우파의 개념은 3차례의 과정을 거쳐 변화해왔다. 우선 경제적 차원에서 시장 중심의 분배를 강조하는 우파와 국가 중심의 재분배를 강조하는 좌파 구분이 전통적으로 자리잡았고 이후 사회적 차원에서 권위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는 우파와 권위에 대한 해방적인 흐름을 강조하는 좌파가 등장했다. 최근에는 시장에 의한 분배와 국가에 의한 재분배라는 사회경제적 차원의 좌우파 구분은 약화하고 극우정당이 대표하는 고립적 민족주의와 녹색당이 대표하는 다원적 세계주의라는 사회문화적 차원의 좌우파 개념이 지배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좌우파 개념도 이러한 내용을 비슷하게 공유하지만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면서 다원적 세계주의 대 고립적 민족주의라는 좌우 개념이 훨씬 선명하게 나타났고 세계주의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룩한 방역정책의 성공이 집권여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 특히 한국의 민주적 투명성, 생명존중의 책임성, 열린사회의 세계주의를 표방한 방역정책 성과는 개인의 권리보다 공동체의 가치, 고립보다 연대가 더 중요해지는 미래사회의 비전을 제시했다. 물론 코로나19 위기는 지구적 차원에서 초연결사회가 가져온 부정적 폐해를 드러냈고 분권과 연대의 적절한 균형 필요성을 상기시켰다. 즉 경계를 나눠 지역에서 위기를 막아내는 분권이 필요하고 동시에 정보를 공유하고 자원을 나누는 지구적 차원의 연대가 필요한 것이다.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한 가장 단순한 해석은 아마도 지역주의 투표로의 회귀라는 평가일 것이다. 나름의 절박한 이유와 근거가 있어 선택한 사람들에게 그저 지역색을 좇아 투표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모욕적이다. 우선 지역주의 투표 설명만으로는 호남에서 지역 정당인 민생당의 현역의원들이 살아남지 못한 것이나 대구에서 더불어민주당이 25%에서 35% 안팎의 지지를 얻은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다. 아마도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사람들이 가진 보수나 진보의 이념 정체성에 따라 자신을 대리하는 정당과 함께 오랜 기간 지내면서 생겨난 정당일체감에 따른 투표라는 설명일 것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사회의 균열을 나누는 지역, 세대, 이념, 계층의 변수 가운데 우리 사회의 선거를 둘러싼 담론 대결은 점점 보수우파와 진보좌파의 이념투쟁으로 변화해왔다. 이제 많은 사람이 보수우파라는 자신의 이념을 당당하게 개인의 자유나 시장경제의 필요성과 함께 말한다. 물론 유권자 선호 이전에 먼저 형성된 과거의 정당들이 대안정당의 등장을 제한하고 유권자 선호 자체에도 제약을 가하고 있지만 특정 정당과의 일체감은 이미 자신의 정체성의 한 부분이 된 것이다. 따라서 어느 지역의 누가 어떤 선택을 했든 절차에 따르고 결과에 승복한다면 존중하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사회에서 주류의 교체는 첫째 인물의 교체, 둘째 정책의 교체, 셋째 세력관계의 역전을 포함한다. 그 동안 진보좌파는 인물을 바꿨고 그 인물이 새로운 정책을 추진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세력관계의 역전이 완전하게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번 총선 결과는 세력관계의 역전이 비로소 완성되었음을 의미하고 여당의 압승에는 코로나19 위기가 가져온 세계의 변화 방향이 국가의 역할 강화와 다원적 세계주의 등 진보의 가치와 더 친화력을 갖는다는 점이 자리잡고 있다. 다시 말해 시대의 흐름에 맞는 이념 정체성이 여전히 중요하고 그 위에 실용적인 문제해결능력을 누가 갖췄느냐에 따라 주류는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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