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짝 배팅'된 주식시장…2030 뉴비들의 투자 일기

머니투데이 조준영 기자, 강민수 기자 2020.04.1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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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코로나19(COVID-19)로 촉발된 폭락 장 속 저가매수에 띄어 들어 지수 하락을 방어한 개인들은 ‘애국 개미’, 코스피지수의 추가하락에 배팅한 개인들은 ‘매국 개미’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상당수 개미들은 주요 투자처를 원유선물상품으로 옮겨 레버리지와 인버스란 위험한 ‘홀짝 배팅’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처음 주식시장에 뛰어든 2030 청춘들의 투자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동학개미, 6만전자를 바라보다
#1

평일 오전 8시 50분. 29살 사회초년생 A씨는 개장을 앞두고 HTS(홈 트레이딩 시스템)를 열 때가 제일 두렵다. 계좌잔고에 찍혀있는 파란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고 있자면 숨이 막힌다. 지난 3월에 들어간 삼성전자는 54층(5만4000원)이 바닥인 줄 알았다. 하지만 천장이었다. 56층에 샀다가 두 층을 내려와 좋은 기회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내가 산 종목 빼고는 다 오르는 것 같다.



돈을 벌고 싶었다. 100년에 한 번 올 까 말 까 한 기회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처음 주식계좌를 만들었다. 여윳돈을 최대한 뽑아 500만원으로 삼성전자를 샀다. 가장 유명했고 무조건 오를 거라는 뭔지 모를 확신이 들었다. 삼성전자가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하니까.

그렇게 ‘동학개미’가 됐다. 지인이 알려준 오픈 카톡방에 들어가니 나 같은 개미들이 가득했다. 모두 ‘BnP 전략’을 취했다. 사고(Buy) 주가상승을 기도(Pray)하는 기우제를 지냈다. 동전 가치가 되 버린 비트코인을 바라보는 마음과 비슷했다. 매일 새벽이면 카톡방은 코로나 사태에 대한 주요 외신들이 올라왔다. 경기가 회복되면 떠나간 외국인들이 곧 돌아올 것이라는 자기최면을 걸었다.



'홀짝 배팅'된 주식시장…2030 뉴비들의 투자 일기
"드디어 올랐다!"

지난 17일 4만 원대 후반을 오가는 삼성전자의 지루한 제자리걸음이 끝났다. 개미들은 벌써 축포를 쏜다. ‘동학개미운동의 위대한 승리’, ‘동학개미 승전보’ 등 외국인의 거센 매도세를 버텨내고 승기를 거머쥐었다는 목소리가 가득하다.


전날까지만 해도 횡보장이 계속되는 삼성전자를 ‘개미 무덤’이라고 자조하던 이들에게 단비가 내렸다. 이날 삼성전자는 4.9% 급등한 5만1400원을 기록하며 5만원이 깨진 지난달 12일 이후 25거래일 만에 5만원선을 회복했다.

“오래 기다렸는데 많이 먹어야죠”. 이제 반등의 시작이라며 5월에는 ‘6만 전자’(주가 6만원)를 기대하는 이들이 상당수다. 배가 아픈 걸까. 냉철한 판단일까. ‘기회가 있을 때 얼른 팔고 나가야 한다’는 절박한 호소도 들린다.

동학개미, 원유에 손을 대다
'홀짝 배팅'된 주식시장…2030 뉴비들의 투자 일기
#2

지난 3월, 2년 차 직장인 30살 B씨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지금 원유 ETN(상장지수증권)에 투자하지 않으면 바보’라는 글을 접했다. 안 그래도 최근 유가가 연초대비 3분의 1 토막이 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①석유 없이 만들어지는 상품은 거의 없다 ②미국이 유가 하락으로 힘들다는데 트럼프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③유가는 언젠가 오른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니 지금이 돈을 넣어야 할 때였다. 찾아보니 ‘원유선물 레버리지 ETN’은 하루 수익률 20%가 기본이었다. 선물도 ETN도 뭔지 몰랐다. 그저 두 배 수익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끌렸다. 괴리율을 주의해야 한다는 말도 치솟는 수익률과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의심 반 기대 반으로 삼성전자에 투자했던 돈까지 정리, 200만원을 넣었다. 하루 만에 50만원을 벌었다. 심장이 두근댔다. 다음 날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400을 넣었다. 이날은 레버리지 가격이 40% 넘게 치솟았다. 100만원 넘는 돈이 들어왔다.

그렇게 일주일도 되지 않아 월급의 반을 벌었다. 친구들과 월급이 쥐꼬리 같다며 투정만 부리던 때는 지나갔다. 선택 할 때가 왔다. 이런 좋은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적금통장을 깨 추가로 돈을 ‘몰빵’했다.

다음날 한 달 월급이 날아갔다. 거래소가 원유 ETN 거래를 단일가매매로 바꾸면서다. 주말이 지나고 거래가 정지됐다. 원유 레버리지 토론방에는 원유 가격이 떨어질 때 돈을 버는 인버스 투자자들의 조롱이 쏟아졌다. 인과응보 같았다. 승승장구하던 지난주와 위치가 달라졌다. 지금 돈을 빼려니 눈앞이 아득했다. 그렇게 나는 비자발적 장기투자자가 됐다. 이제 ‘존버’(오래 버티기)다.

"아 그때 인버스를 샀어야 했다"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장관과 알렉산더 노박 러시아 에너지장관/사진=AFP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장관과 알렉산더 노박 러시아 에너지장관/사진=AFP
원유 레버리지 ETN은 개미들에게 새로운 시장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들도 이렇게 거래가 늘어난 것은 처음 봤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다. 유가가 연초대비 큰 폭으로 하락하자 급반등을 기대한 투자자들이 몰리며 하루에만 ETN 가격은 30~40% 폭등했다. 특히 수익률을 두 배로 끌어올릴 수 있는 레버리지 상품들에 돈이 몰렸다.

금융당국이 연일 투자자들에게 경고신호를 보냈지만 과열된 매수세는 진정되지 않았다. 결국 거래소가 단일가매매에 이어 거래정지까지 단행하자 미친 듯이 올랐던 가격은 끝없는 추락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일주일간 30% 넘는 추락 세다.

약 한 달 동안 원유 ETN 시장에 벌어지고 있는 ‘홀짝 배팅’은 결과도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확실히 오르고 확실히 내리는 롤러코스터에 ‘멘탈’이 깨지는 개미도 속출한다. “내려갈 때는 아무 말 없더니 올라갈 때만 개미 돈 못 뺏어가서 안달이냐 왜!”라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매국개미' 아닙니다. 엄연한 투자자입니다
'홀짝 배팅'된 주식시장…2030 뉴비들의 투자 일기
#3
3년 차 직장인 27살 C씨는 지난달 19일 난생 처음 주식계좌를 만들었다. 이날은 코스피 1500선이 깨진 날이다. 뉴스에서는 ‘사상 초유의 사태’, ‘9·11 이후 첫 주식거래 중단’ 등의 헤드라인이 쏟아졌다. 인버스(주가지수의 하락에 베팅하는 상품 )로 수십 % 수익을 올렸다는 뉴스를 봤다. 주식의 ‘주’자도 모르는 ‘주린이’였지만, 주가는 떨어지고 있고, 인버스는 떨어지면 돈을 버는 거니까 괜찮겠다 싶었다. 300만원짜리 적금을 깼다. 남들이 다 산다는 ‘KODEX 200선물인버스2X’를 샀다.

다음날 증시가 7% 넘게 올랐다. 하지만 B씨는 당황하지 않았다. 친구의 추천으로 들어간 ‘종목토론방’에는 더블딥, 데드캣바운스 등 경제용어가 난무했다. 처음 보는 단어들이었지만, 결국 증시가 언젠가는 또 떨어진다는 말이었다.

종목토론방에서는 날마다 ‘오늘은 주가가 내릴 것’이란 예측과 ‘인버스를 손절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했다. 개미들이 나처럼 인버스를 잔뜩 샀다는 뉴스를 봤다. 그래도 나만 산 건 아니니까 언젠가는 또 내리지 않겠냐 싶었다. 코스피가 1100~1200은 갈 것이라는 전문가의 경고도 나왔다. 일단 믿어보지 싶었다.

코스피가 1900선을 넘어섰다. 적금 300만원이 거의 반 토막이 났다. 종목토론방에는 인버스 투자자를 ‘하락무새’라며 놀리는 말만 가득하다. 주가 상승한 배팅한 개미들은 하락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인버스 투자자를 조롱하는 말이다. ‘매국개미’라는 말도 듣는다. ‘매국’ 이라니…투자는 이익 실현을 위한 것인데, 애국이 어딨고 매국이 어디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울컥했다. 그렇다고 잃은 돈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오늘도 기다리던 '떡락'은 오지 않는다"


삼성전자에 투자한 개미들의 반대편에는 나처럼 ‘매국개미’라는 별명을 얻은 인버스 상품 투자자들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지난달 19일 코스피지수가 1500선이 무너지는 역대 급 폭락 이후 들어갔다.

이날 이후 4월 16일까지 개인들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대표적인 인버스 상품인 ‘KODEX 200선물인버스2X’다 삼성전자보다도 더 많다. 그러나 이후 코스피는 반등세를 지속해 저점 대비 31% 넘게 올랐다. 그동안 ‘KODEX 200선물인버스2X’는 1만2000원대에서 6000원대로 추락했다.

“오늘도 기다리던 ‘떡락’은 오지 않는다” 증권 커뮤니티 등에서는 아직도 인버스 투자의 손절매 시기를 두고 갑론을박이다. 인버스 개미들의 기대가 무색하게, 코스피는 17일 1910선까지 넘어섰다. 빨갛게 물들어 가고 있는 코스피를 바라보고 있으면 인버스 개미들의 속은 더욱 타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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