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안전" 외쳤지만…돌아서면 또 철도 사고

머니투데이 문영재 기자 2020.04.1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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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도, '전동차 종합안전대책' 내놔…"땜질식 대책보다 현장의 '책임이행력' 높여야"

지난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에서 신길역으로 향하던 열차가 탈선해 시민들이 선로로 이동하고 있다./사진=뉴스1지난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에서 신길역으로 향하던 열차가 탈선해 시민들이 선로로 이동하고 있다./사진=뉴스1


2월14일 서울 구로역 선로보수장비의 궤도이탈로 경인·경부선 전동차 운행 지연, 같은달 21일 수도권 지하철 경의·중앙선 이촌역에서 전기 공급문제가 발생해 열차 운행 중단, 4월14일 경인선 신길역 철도차량 탈선사고로 10시간만에 복구….

수도권 전동차가 멈춰서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올들어 벌써 3번째 운행 중단·지연 사고다. 한국철도(코레일)는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사고수습대책본부를 꾸리고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잇따른 사고에 시민들의 철도 불신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16일 한국철도에 따르면 14일 오전 6시30분쯤 서울 지하철 1호선 용산행 급행전동열차가 신길역 부근에서 전체 10량 가운데 앞쪽 2량이 선로를 이탈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타고 있던 출근길 승객 100여명은 선로를 따라 대피하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사고 복구까지 10시간이 넘게 걸리면서 해당 선로열차의 운행 중단 물론 인접선로 전동차까지 줄줄이 지연 운행됐다. 정확한 사고원인은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봐야겠지만, 한국철도는 노후차량의 주행장치 파손 때문으로 보고 있다.
"노후차량 교체에 재정지원 요청" vs "스스로 돈 벌어 바꿔야"
한국철도는 '신길역 탈선사고' 이튿날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사고 재발 방지를 대책을 논의했다. 한국철도가 내놓은 '전동차 종합안전대책'에는 △노후차량(70량)과 전체 광역전철 차량(2644량)에 대한 전수검사·점검 △노후차량 교체 △차량에 신장비설치(차축온도감시시스템·지상차축검지장치) △선로점검 장비 도입(선로점검차·고성능 초음파 레일탐상기) 등이 담겼다.



전문가들은 철도사고가 날 때마다 대책을 쏟아내지만 여전히 '땜질식'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한국철도는 사고 재발을 막겠다며 노후차량 교체 카드를 꺼냈지만, 예산에 발목이 잡힐 공산이 크다. 한국철도는 이번 긴급 대책회의에서도 2022년까지 7247억원을 투입해 신규 전동차를 도입할 계획이지만 노후차량 교체에 막대한 예산이 수반되는만큼 재정 당국에 일부 지원(50%)을 요청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국토교통부도 한국철도의 노후차량 교체에 대해 기획재정부와 논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정 당국은 난색을 표한다. 정부 재정에 손 벌리지 말고 한국철도 스스로 돈 벌어 차량을 교체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기재부는 앞서 서울·부산교통공사의 차량교체 비용(226억원) 예산 반영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도시철도를 운영하는 전국의 공기업이 모두 차량을 교체할 때마다 손을 벌리면 기재부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송역 단전사고·강릉KTX 사고 겪고서도…"사고의 악순환 끊어야"
한국철도는 앞서 오송역 단전사고와 강릉KTX 탈선사고 등을 겪으며 사장이 교체되기도 했다. 손병석 한국철도 사장도 지난해 3월 취임 이후 줄곧 "최고의 서비스는 안전이다. 한국철도가 안전에 대해 총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며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사고는 끊이질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고 발생과 후속대책 발표, 책임자 징계 등 도식화된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철도사고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의 방치, 운영사의 무책임, 현장의 안전불감증이라는 이른바 '사고의 3대 요인'이 철도사고의 악순환을 만든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 감사원 감사결과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4~2018년) 철도 차량의 검사주기를 지키지 않은 사례가 8223건이나 확인됐다. 이 기간 부품을 분해해 정비해야 하는 257품목(1만2688개)도 정비주기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철도안전관리를 위탁받은 교통안전공단도 연간 4차례 정기검사를 진행했지만 이런 사실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다.

"땜질식 안전대책 한계…현장의 '안전책임 이행력' 높여야"
전문가들은 상시적인 안전관리시스템을 현장에 안착시키기 위해선 기존 일방적 지시에 따른 '톱다운' 방식의 안전 지침 하달이 아니라 철도 현장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안전을 책임지도록 하는 '바텀업' 방식으로 구조적 접근을 달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경우 사고가 발생했을 때 현장직원 개인이 책임을 모두 떠안는 관행도 개선할 수 있다.

최진석 교통연구원 철도산업·안전연구팀장은 "기존 철도안전 대책을 보면 기술적 제도개선이나 사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 위주였다"며 "앞으로는 철도 현장에서 직원들이 '안전보고서' 작성 등을 통해 안전 이행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영진 등은 임기만료 등 일정 시점이 지나면 바뀌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기록된 안전보고서 등은 차량관리 직원이 바뀌더라도 그대로 남아 점검·보수 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도 "현장의 이행력 강화와 노후차량·시설에 대한 적시 정비·보수, 예산 지원 등 3박자가 어울어져야 철도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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