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시장 기근에도 스팩은 '쑥쑥' "이유 있네"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2020.04.13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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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이후에만 스팩4개 상장예심 노크, 5개사는 이미 상장... 자금조달 기업, 증권사, 투자자 모두에 불리하지 않다는 게 장점

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코로나19(COVID-19) 폭락장세로 밸류에이션(가치평가)이 어려워지면서 IPO(기업공개)에 나서는 기업들도 크게 줄어든 모습이지만 스팩(기업인수목적) 종목은 얘기가 다르다. 전년 동기 대비 이미 상장된 종목도 늘었을 뿐더러 새로 상장을 시도하는 경우도 눈에 띈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분기까지 이미 증시에 입성을 완료한 스팩 종목은 5개로 이들이 공모과정에서 조달한 자금은 454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신규 스팩 상장 종목 수가 2개에 불과했고 조달금액도 182억원에 그쳤다. 지난해는 스팩 신규상장 종목의 수가 30개로 2015년(45개)에 이어 역대 2번째로 많았던 때였다. 아직 올해가 3개월여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지만 일단은 스팩이 1분기에 전년 대비 대폭 확대된 것은 분명하다.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하고 이미 승인을 받았거나 승인 대기 중인 스팩도 4개가 더 있다. 이베스트스팩5호가 이미 지난 달 초 상장예심을 청구해 이미 승인 결정을 받고 증권신고서를 발행해 자금모집에 나섰다. IBK투자증권이 만든 13호, 14호 스팩과 하나금융투자가 만든 16호 스팩도 지난 달 하순부터 이달 초에 걸쳐 상장예심을 청구해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현대차증권도 최근 스팩설립을 마치고 상장시점을 조율 중이다.

스팩은 증시에 상장된 '돈 주머니'와 같은 개념으로 페이퍼컴퍼니의 일종이다. 설립 3년 내에 비상장사와 합병하면 된다. 스팩과 합병하는 비상장사는 우회상장과 비슷한 구조로 증시에 입성하게 된다. 스팩 투자자는 비상장사 합병 과정에서 스팩신주 발행으로 일정 부분 지분이 희석되지만 시세차익을 얻을 수도 있다.
IPO시장 기근에도 스팩은 '쑥쑥' "이유 있네"
이같은 스팩이 현재와 같은 불안정한 상황에서 더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공모가 산정 과정에서의 불확실성이 대폭 제거된다는 점이 꼽힌다. 기업은 상장을 돕는 주관사(증권사) 및 회계법인 등의 도움을 받아 적정 가치를 투자자들에게 제시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미 증시에 상장돼 있는 동종업계 종목들의 밸류에이션을 참조로 한다. 증시에 상장된 동종업계 종목들의 PER(주가이익비율) PBR(주가순자산비율) 등 지표가 양호하면 신규 상장을 추진하는 비상장사의 몸값도 그만큼 높게 매겨지는 식이다.



대개 일반 기업이 직접 상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을 통해 공모가를 정해야 한다. 제한된 공모물량을 기관투자자들에게 경매 방식으로 내놓는 것이다. 최근처럼 코로나19로 증시 전반이 폭락한 상태에서는 동종업계 상장사 주가도 급락한 경우가 많다. 기관투자자들의 평가도 그만큼 박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올해 들어 스팩이나 바이오·제약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한 나머지 업종의 상장 시도가 급감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팩을 통한 상장의 경우는 이같은 공모가 산정 과정에서의 불확실성이 대폭 줄어든다. 스팩을 상장시킨 증권사와 상장을 시도하는 비상장사 사이의 협상으로 갈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거시경기 전망이 해당 비상장사의 실적전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지만 수요예측 과정에서의 불확실성에 비하면 그 정도가 훨씬 덜하다.

스팩을 상장시키는 증권사 입장에서도 유리한 점이 있다. 스팩설립 과정에서 증권사는 공모가(대개 2000원)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 작게나마 초기 지분투자를 하기 때문에 상장 후 비상장사와의 합병이 성사되면 그만큼의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다. 일반 비상장사를 직상장 방식으로 상장시키는 과정에서 단지 공모금액의 3% 안팎 수수료를 받는 것에 비해 수익성이 월등히 높다는 얘기다. 또 설립 후 해산까지 3년의 스팩 존속기한 동안에만 비상장사를 물색해 합병시키면 되기 때문에 증권사 입장에서도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스팩 공모주 입장에서도 스팩 투자가 나쁠 일은 없다. 공모주 투자자의 납입금은 전액 은행 등 금융기관에 정기예금 금리로 예치가 된다. 스팩이 비상장사 합병을 성사시키지 못해 청산된다더라도 공모주 투자자는 투자금액에 3년간의 정기예금 금리 복리이자를 더한 돈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투자한 스팩이 우량 비상장사와 합병해 주가가 오를 경우 시세차익을 얻을 수도 있다. 물론 상장 후 주가가 빠지면 그만큼 시세차손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현재처럼 불확실한 시기가 조기에 안정되지 않은 채 장기화되거나 추가로 증시가 낙폭을 키울 경우 스팩도 무풍지대로 남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증권사 IB(투자은행) 담당자는 "스팩이 투자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수단이자 기업에게도 안정적인 자금조달 수단인 것은 맞지만 시장 흐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며 "결국은 거시 경제가 회복세에 들어간다는 징후가 확인돼야 일반 기업 뿐 아니라 스팩 상장도 활성활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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