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성도착자들, 처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20.04.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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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광기와 성’…사이코패스의 심리와 고백

‘n번방’ 성도착자들, 처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디즘, 마조히즘, 호모섹슈얼, 페티시즘 같은 변태 성향의 성적 용어들은 오스트리아 빈 대학 신경정신과 교수로 재직하던 저자로부터 시작됐다. 정신병리학의 ‘성서’로도 통하던 이 책은 프로이트와 칼 융 같은 정신과 의사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책은 우리가 쉽게 외면하거나 들추기 싫은 불편한 성적 일탈을 고찰한다. 도착적 성 심리와 스스로 제어할 수 없었던 잔혹한 성범죄까지 198개 사례를 살피면서 불운하게 유전으로 타고난 운명과 육신의 강압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입장도 대변한다.



최근 ‘n번방’ 사건으로 드러난 실체는 우리 사회에 이와 유사한 성범죄들이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때,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처벌의 수위와 재발 방지를 거론하지만, 그것만으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범죄에 대한 형벌일 뿐, 치료가 아니라는 점에서 재발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특히 비정상적인 것을 극도로 혐오하는 한국적 지배윤리는 성도착증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 그들을 사회의 깊은 그늘 속으로 몰아넣을 뿐, 정신의학과 법의학 관점에서 그들을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학계의 노력은 희박하다.



가령 동성애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정상적인 사랑의 행위였다는 것과 그 경계의 모호함 속에 우리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성도착증과 관련해 우리는 흔히 ‘뒤틀린 성욕의 표현’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뒤틀리지 않고 곧바로 표현된 성욕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는 모두에게 성도착증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다름없다. 프로이트는 “성인 모두가 성도착증자”라고 진단했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성의 타고난 진실을 감히 직시하지 못하는 사회, 퇴행기에 접어든 사회일수록 병적인 포르노그래피만 창궐한다”고 강변했다.

이 책의 가장 큰 공로는 정신질환의 원인 분석과 치료 방법을 획기적으로 대중화하는 데 이바지했다는 점이다.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받으며 사회적으로 격리된 정신질환자들이 좀 더 인간적인 의료환경에서 치료받는 길을 열어 준 셈이다.


성적 정신질환자들이 자신의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을 기록으로 남겼을 때, 우리가 어떤 부분에서 분노하고 이해해야 하는지 작게나마 가늠해볼 수 있다.

◇광기와 성=리하르트 폰크라프트에빙 지음. 홍문우 옮김. 파람북 펴냄. 607쪽/2만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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