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tvN
배우도 그렇다. 아무리 오랫동안 성실히 작품을 해와도 눈에 띄지 않다가 작품 하나로 자신의 포텐셜을 터뜨리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들이 있다. 소위 말하는 ‘인생작’을 만나 제대로 뜬 것. 평범해보이던 얼굴이 특별해 보이고 미미해보이던 존재감이 강렬하게 느껴진다. “이 배우가 이렇게 매력 있고 연기를 잘했나”는 찬사가 저절로 나오게 된다.
겉모습은 ‘겨울’이라는 이름처럼 차갑고 무뚝뚝하지만 환자에 관한 일이라면 언제나 뜨거운 ‘한여름’인 장겨울의 마음은 요즘 11살이나 많은 안정원 교수(유연석)를 향한 외사랑 때문에 꽃바람이 부는 ‘봄날’이다. 그 남자 때문에 설레 실없이 웃다가 냉정한 모습에 좌절하기를 반복한다. 일에서는 프로페셔널하지만 난생 처음 빠져든 외사랑에 안절부절못하는 장겨울의 인간적인 모습에 시청자들은 안쓰러워하면서 응원을 보내고 있다. 이를 사랑스럽고 능청스럽게 소화해내는 신현빈의 물이 오른 연기력에 대한 찬사도 쏟아지고 있다.
사진제공=tvN
웬만한 사람이라면 누가 자신을 짝사랑하면 눈치 채기 마련. 5회에 정원이 모두에게 친절한 평소 모습과 달리 겨울에게만 철벽을 치는 걸 보니 알고 있는 듯하다. 대놓고 그렇게 뜨거운 눈빛을 보내는데 어찌 모르겠는가? 그 철벽이 자신도 마음이 가는데 신부가 되고 싶은 마음에 차단하는 건지, 아니면 단호한 거절의 의미인지 궁금해진다. 연애 상담프로그램 ‘연애의 참견’ 참견러들의 조언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겨울의 아군을 자처하는 이혼남 익준(조정석)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기 때문. 더군다나 연애코치가 ‘납득이’ 조정석이 아닌가? 도와주다가 오히려 다른 마음을 먹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통해 재발견된 신현빈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두 번 놀라게 된다. 첫 번째는 참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었구나, 두 번째는 수많은 화제작에 비중에 상관없이 진짜 많이 나왔었구나.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버티면 ‘해뜰날이 온다’는 고전적인 명제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살아있는 증거다.
신현빈은 사실 2010년 영화 ‘방가!방가!’로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관심을 받을 만한 후속작이 이어지지 않으면서 긴 무명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신현빈을 다시 눈여겨볼 수 있게 만든 작품이 이준익 감독의 ‘변산’. 주인공 학수가 고등학교 때 짝사랑한 미경 역을 맡아 기존의 정적인 이미지를 지우는 생기발랄한 연기를 선보이며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이후 드라마 ‘자백’,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리’ ‘클로젯’ 등에 출연한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집승들’로 비상했다. 인생 막장에 처한 미란 역을 강렬하게 소화해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신현빈이 연기한 미란은 빚 때문에 가정이 무너진 인물로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살해해 보험금을 타내려다 수렁에 빠져든다. 신현빈은 10년 동안 갈고 닦은 연기력을 마음껏 과시하며 대선배 전도연에 절대 밀리지 않은 연기를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이제 자신이 충무로를 이끌어나갈 만한 재목임을 과시했다.
미란과 겨울은 극과 극의 인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미란의 여운이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정반대의 인물로 돌아온 신현빈의 모습은 영화팬과 시청자, 또한 관계자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굉장히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고 연기 스펙트럼이 넓다는 걸 증명한 것. 이제 주연배우로서 탄탄대로를 걸어 나갈 일만 남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알려진 대로 시즌제 드라마. 시청자들의 사랑이 있어야 주연인 99학번 동기 의사 5인방과 함께 계속 등장할 수 있다. 시크하고 쿨한 외양 속에서 엉뚱하고 귀여운 매력을 지닌 8차원 의사 장겨울의 서사가 본격적으로 그려지기를 기대해본다. 짝사랑의 성취 과정뿐만 아니라 의사로서, 인간적으로서 ‘좋은 어른’이 성장해가는 과정도 보고 싶다. 그런 모습을 연기하며 배우로서 훌쩍 성장해가는 신현빈의 모습을 보는 건 매우 흐뭇한 재미를 선사할 듯하다.
최재욱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