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는 이미 '강남 쏘나타'…이젠 '람보르기니' 찾는 한국

머니투데이 이건희 기자 2020.04.0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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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新소비양극화의 명과 암]자동차로 재력 과시하는 '카플렉스'…초고가 슈퍼카 브랜드 '호황'

편집자주 최고급 외제차, 명품백 등 사치품 소비는 과거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반지하에 살아도 벤츠 등 외제차를 몰며 차부심을 뽐낸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몇 달을 아르바이트해 번 돈으로 샤넬백을 지른다. 고소득층뿐 아니라 저소득층도 사치품 소비를 탐닉하는 '신소비양극화-명품 권하는 사회'의 원인과 현상을 짚어본다.

'강남 쏘나타'.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의 대표 세단 'E-클래스'에 붙은 별명이다. 2016년 국내에서 첫 출시된 이래 3년 만에 10만대가 넘게 팔렸다. 그래서 벤츠가 너무 대중화됐다고 '강남 쏘나타'로 불린다. 대표 모델인 'E300'은 지난해 불경기에도 불구, 1만3607대가 판매됐다.

고급차의 대명사인 벤츠가 이렇게 흔한 브랜드가 되다 보니 이젠 람보르기니나 포르쉐 같은 슈퍼카 브랜드가 뜨고 있다. 극심한 소비 양극화 속에서 자동차로 자신의 부를 과시하려는 '카플렉스'(Car-Flex)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매해 신기록 쓰는 벤츠
/그래픽=유정수 디자인기자/그래픽=유정수 디자인기자


9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벤츠는 국내에서 총 7만8133대를 판매했다. 국내 완성차 업체인 한국GM의 지난해 내수 판매량 7만6471대보다 훨씬 많다. 벤츠는 코로나19(COVID-19)가 덮친 올해 1분기에도 판매량 성장세를 이어갔다. 1분기 벤츠 판매량은 전년 대비 14.7% 증가한 1만5296대다.

벤츠는 실적 면에서도 신기록을 쓰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 5조4377억원을 기록해 전년(4조4742억원)보다 21.5% 수직 상승했다. 한국 입성 이래 최대 매출이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2180억원으로 전년대비 40.9%나 늘었다.



4년 연속 국내 수입차 판매 1위를 달성한 만큼 '강남 쏘나타'라는 별명은 이제 식상해졌다. 업계에서는 "벤츠의 희소성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소비자들의 시선은 이제 벤츠에 머물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돈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요즘 누가 그 흔한 벤츠를 타느냐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해 람보르기니 판매 '16배' 껑충
/그래픽=유정수 디자인기자/그래픽=유정수 디자인기자
벤츠 이후에 소비자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브랜드는 람보르기니다. 1대 판매가격이 최소 2억원대인 슈퍼카 브랜드다. 대표 차종인 SUV(다목적스포츠차량) '우루스'는 이미 대중들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지난해 람보르기니는 한국에서 173대를 팔았다. 2018년 11대가 팔린 것과 비교하면 16배가 늘었다. 올해 1분기에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22.2% 늘어난 58대를 판매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소비심리 침체 우려가 무색할 정도다.


한국에서 판매가 급신장하자 람보르기니 회장은 지난해 11월에는 직접 서울을 찾기도 했다. 스테파노 도메니칼리 회장은 당시 "한국은 가장 두드러지는 성장세를 보이는 곳으로 잠재력이 크다"고 밝힐 정도였다.

또 다른 고급 브랜드 롤스로이스도 판매 성장이 확연하다. 롤스로이스는 지난해 한국에서 161대를 판매해 전년 대비 30.9% 늘었다. 포르쉐는 지난해 판매량이 전년 대비 1.9% 줄었지만 한국법인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지위 표현이 돼버린 한국의 '카플렉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고급 수입차 판매 러시 현상에 대해 "사회적 지위 중 하나로 그 사람이 타는 자동차를 보는 시선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자동차 기술은 금방 좋아졌는데 문화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며 "운전자들이 남의 시선을 신경 쓰다 보니 고급차 선호도가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차(車)부심'을 뽐내기 위해 할부 또는 리스(lease)로라도 차량 구매를 마다 않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경기 상황과 관계없이 부자들은 자동차를 통해 재력을 과시하려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구매 기준이 타인의 시선이 아닌 실용성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필수 교수는 "한국 자동차 문화가 실용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국산차 업체들도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를 고려한 차량을 많이 생산해 수입차 중심 선호현상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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