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선거판도 싹 다 갈아엎으며 재개발 중!

윤준호(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0.04.0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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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기 힘입어 대세 콘텐츠로 자리매김

사진=스타뉴스DB사진=스타뉴스DB


트로트가 돌아왔다. 지난해부터 '미스트롯'과 '놀면 뭐하니'의 유산슬(유재석)로 인해 트로트가 이미 대세 콘텐츠로 자리 잡았는데 "무슨 뒷북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고 하는 거다! 선거판에서 트로트가 부활했다. 4.15 총선을 앞두고 지난 2일부터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며 선거로고송 역시 길거리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표심을 공략하는 각 당 후보들은 당대 가장 유명한 노래를 개사해 대중의 이목을 끌려 노력해왔다. 최근에는 "젊은 유권자를 잡겠다"는 기치 아래 한동안 트로트가 선거판에서 외면 받았는데, 올해는 양상이 다르다.



#대세는 트로트!

한국음원저작권협회의 선고로고송 승인현황을 살펴보면, 640여명의 후보가 약 1000곡(중복 포함)을 선거로고송으로 쓰겠다고 접수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대규모 인파가 모이는 선거전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먼 거리에서도 각 당과 후보를 알릴 수 있는 로고송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유산슬의 '사랑의 재개발'을 선거송으로 정한 것을 비롯해 당 공식 응원가인 '더더더송'에는 박군의 '한잔해', 홍진영의 '엄지척', 박상철의 '무조건', 송대관의 '유행가' 등의 트로트가 포함됐다.

미래통합당 역시 '사랑의 재개발'을 필두로 박상철의 '황진이'와 '무조건', 장윤정의 '어부바', 박현빈의 '곤드레 만드레', 영탁의 '찐이야' 등의 트로트를 로고송으로 정했다.

트로트는 단연 선거판을 주름잡는 장르였다. 하지만 ‘중장년층에게만 어필할 수 있다’는 편견과 더불어 젊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는 판단 아래 아이돌의 노래가 대거 선거판으로 유입됐다. 지난 20대 총선 때 Mnet '프로듀스 101'의 로고송인 '픽 미'(pick me)가 가장 높은 인기를 끈 것이 그 예다. 이 외에도 트와이스의 '치어 업', 인피니트의 '내꺼하자' 등이 절묘한 개사와 함께 선거로고송으로 탈바꿈됐다.


또한 영화 '검사외전'에서 주인공을 맡은 톱스타 강동원이 선거판에서 '붐바스틱'이라는 노래에 맞춰 격하게 몸을 흔드는 장면이 화제를 모은 후에는 이 노래가 선거판의 단골송이 됐다. 신나는 비트에 맞춘 강동원의 안무가 인상적이었던 '붐바스틱'이 2040 유권자들에게 긍정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판단 때문이었다.

사진출처='검사외전' 영상 캡처 사진출처='검사외전' 영상 캡처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최근 TV조선 '미스터트롯'이 전국 시청률 35.7%라는 상상을 웃도는 결과를 내면서 다시금 트로트로 쏠림 현상이 강해졌다. 특히 '사랑의 재개발'의 경우 이를 부른 방송인 유재석의 긍정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라는 가사가 선거의 분위기가 딱 맞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함께 다른 트로트 곡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며 선거판의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로고송 사용, 공짜는 없다!


여기서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 '사랑의 재개발'은 어떻게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모두에게 로고송으로 쓰는 것일까? 이는 원작자의 허락만 있으면 중복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산슬이 부른 '사랑의 재개발'은 선거로고송으로 쓰이지만, '합정역 5번 출구'는 사용 못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노래의 가사를 쓰는 데 참여해 원작에 대한 권리를 가진 유산슬, 즉 유재석이 선거로고송 사용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YTN 유튜브 채널인 ‘시사 안드로메다 시즌4’에 출연한 '합정역 5번 출구' 이건우 작곡가는 "선거로고송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작사가와 작곡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합정역 5번 출구'는 나뿐만 아니라 유산슬도 공동 작사했다. 나와 박현우 작곡가가 허락 한다고 해도 유산슬이 안 해주면 안 되는 건데, 유산슬은 ‘웬만하면 안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밝혔다.

2016년 총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백세인생'을 선거로고송으로 쓰려는 경쟁이 치열했지만 ‘5억 원’이라는 사용료를 감당하지 못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백세인생'의 작곡가는 특정 정당이 이를 ‘독점 사용’하려고 하자 이를 꺼려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징적 금액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에 쓰이는 선거 로고송 제작비용은 저작권료 등을 포함해 250만 원 안팎 정도다. 저작권료만 보면, 한국음악저작권협회 규정에 따라 대통령 선거 때 곡당 사용료는 200만 원, 광역단체장 선거는 100만 원, 국회의원 선거는 50만 원이다. 이번은 총선인 관계로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50만 원을, 원작자에게는 100만 원 안팎의 저작인격권료를 지불해야 한다. 여기에 개사 후 다시 부르는 가창료까지 포함하면 그 총합이 250만 원 정도 된다.

#선거로고송, 언제부터 사용됐나?

선거로고송은 이제 ‘선거의 꽃’으로 자리매김했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높지 않던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더 없이 좋은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중가요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로고송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언제일까?

통상 1997년 15대 대선을 출발선으로 본다.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그룹 DJ DOC의 히트곡인 'DJ DOC
와 함께 춤을'의 가사를 바꾼 'DJ와 함께 춤을'을 통해 젊고 건강한 이미지를 확산시키는 데 성공했고, 결국 대선의 승자가 됐다. 이보다 앞선 1987년 13대 대선 당시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보통사람’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애창곡 '베사메무초'를 직접 부르기도 했지만 현대적 의미의 로고송이라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뜨겁던 2002년 치른 16대 대선에서는 단연 월드컵 응원가가 인기였다.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오 필승 코리아'를 '오 필승 노무현'으로 개사해 표심을 자극했다. 이에 경쟁자였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태진아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대통령은 아무나 하나'로 바꿔 부르며 맞불을 놨으나, 선거는 노무현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대선에서는 ‘박현빈 효과’가 두드러졌다. 2007년 17대 대선 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박현빈의 '오빠 한 번 믿어봐'를 'MB 한 번 믿어봐'로 부르고, 2012년 18대 대선에서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박현빈의 '샤방샤방'을 전면에 내세워 대권을 움켜쥐었다.

이후 선거에서는 젊은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앞서 언급했던 '픽 미', '치어 업', '내꺼하자'와 '붐바스틱' 등이 인기를 누렸으나, 이번 총선에서는 다시금 전통의 강자인 트로트가 선고로고송의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윤준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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