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키트를 발빠르게 개발, 세계의 주목을 받았듯이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도 정부와 민간의 ‘2인 3각’ 협력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기사 2면
GC녹십자는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을 모두 개발 중이다. 둘 중 속도가 더 빠른 것은 치료제다. GC녹십자는 코로나19 회복환자의 혈장을 이용한 혈장치료제를 올 하반기에 상용할 계획이다. 셀트리온은 코로나19 항체 치료제 개발 2단계에 해당하는 후보항체군 선별작업에 돌입, 오는 7월 임상을 시작하는 것이 목표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달말 백신 후보물질의 동물 효력시험 단계에 돌입했다. 빠르면 9월 임상에 진입할 계획이다. 일양약품은 기존 백혈병 치료제 ‘슈펙트’를, 부광약품은 항바이러스제 ‘클레부딘’을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 중이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1만명을 넘어선 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 설치된 '해외 입국자 전용 워킹스루 선별진료소'에서 의심환자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업계에선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개발을 앞당기기 위해 정부당국의 협조와 지원이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임상과 허가과정을 단축하는 패스트트랙 도입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기존 치료제를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하는 업체들의 경우 임상1상을 간소화 또는 면제해주고 신약개발을 하는 업체들에는 허가당국이 컨설팅을 해주는 등 단기·중기적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만약 임상 1상이나 2상 막바지에 다음 단계 임상을 시작할 수 있게 해준다면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며 “국내 업체가 치료제 개발에 성공할 경우 한국 바이오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치료제와 백신개발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개선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혈장치료제를 개발 중인 GC녹십자의 경우 코로나19 완치자의 혈액을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현행법상 부적격 혈액만 연구용으로 사용할 수 있어 GC녹십자는 충분한 혈액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바이오 벤처기업의 경우 자금지원도 필요하다. 한 업체 관계자는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기 위해선 여러 후보물질을 한번에 임상해야 한다”며 “이 경우 임상비용이 배로 든다”고 말했다.
완치자 '피' 필요한데…피말리는 혈액법
정세균 국무총리가 2일 인천 서구 초은고등학교를 방문해 코로나19 대응 원격교육 현장을 참관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치료제 개발의 관건은 제약업체의 전폭적인 투자와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맞물려 속도감 있게 추진돼야 한다는 점이다. 하세월하다간 감염자·사망자가 속출한 뒤 ‘집단면역’이 이뤄져 치료제 개발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을 위해 60억원을 추가 투입하고 제약·바이오업체들이 제출하는 임상계획 승인도 신속히 진행키로 했다. 하지만 업계는 정부가 단순히 ‘방침’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제도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혈액관리법 개정 필요”=제약·바이오업계에선 업체들이 치료제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혈액관리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으로선 항체를 가진 완치자의 혈액을 바로 채취해 치료제 개발에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행 혈액관리법에 따르면 질병을 앓은 사람의 혈액은 곧바로 채취할 수 없다. 코로나19 환자의 경우 완치 3개월 후 헌혈이 가능하다. 연구목적으로 이들의 혈액을 채취해 치료에 쓸 혈장을 분리할 순 있지만 해당 병원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은 혈액관리법 시행령 개정을 검토 중이다. 시행령은 국회 동의 없이 국무회의 의결로 처리할 수 있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코로나19 완치자의 동의를 받아 혈장을 채취하고 이를 치료제 개발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반짝’ 개발 경계, 공공영역에서 다뤄야=감염병 사태 때 ‘반짝’ 다루는 치료제·백신개발이 아니라 정부가 공공영역에서 개발이슈를 지속적으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를 통해 개발역량이 없는데도 주가급등을 노리고 치료제 개발을 발표하는 사례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김승택 한국파스퇴르연구소 박사는 “감염병이라는 것이 터지고 나면 이슈가 되지만 잦아들면 기억에서 사라진다”며 “업체 입장에선 치료제 개발의 사업성이 높지 않다. 공공영역에서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네트워크 구축과 강화도 필요하다. 윤태호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치료기술과 백신개발에서 국가간 협력이 필수다. 세계 각국에 우리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적극적인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표만하면 급등…'깜깜이 도전' 주의보
알마티 씨젠의료재단 코로나19 검사 / 사진제공=한국보건산업진흥원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치료제·백신개발에 나선 기업은 줄잡아 20여곳이다. 셀트리온, SK바이오사이언스, GC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등 대표 바이오제약사가 대거 참여했고 업력이 짧은 중소·벤처기업의 도전도 이어진다.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으로 치료제·백신의 필요성이 요구되자 관련기업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진다. 지난달 부광약품과 일양약품은 시험관 내 시험(인비트로)을 통해 자사의 기존 의약품이 코로나19 치료에 효과를 보였다고 밝히자 주가는 상한가를 내달렸다.
코스닥도 마찬가지다. 이날 기준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 중 바이오기업이 6곳이나 된다. 셀트리온헬스케어, 에이치엘비, 씨젠, 셀트리온제약, 코미팜, 헬릭스미스 등이다. 특히 코미팜은 감염증 후보물질인 ‘파타픽스’를 통해 사이코카인 폭풍을 억제하기 위한 임상시험 승인절차에 들어간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가가 급등해 시가총액 30위권에서 10위권에 진입했다.
치료제·백신개발의 가능성만으로 주식시장은 호응했지만 실제 개발과정은 험난하다. 미국 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임상1상에 진입한 신약후보물질이 판매허가를 받는데 걸리는 기간은 12년이다. 성공률도 9.6%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임상시험에 돌입하는 것부터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글로벌 백신개발의 선두주자 격인 미국 존슨앤드존슨(J&J)은 9월 이후에나 임상에 돌입할 수 있다고 했다. 바이오테크기업 모더나는 이미 인체임상에 돌입했지만 내년에나 시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도 “바이러스를 사균화해 인체에 투여하는 백신을 개발하는 데는 안전성 측면을 고려하면 아무리 빨라도 18개월이 걸린다”고 말했다.
코미팜 역시 임상부터 발목이 잡혔다. 지난 2월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임상시험계획승인 신청을 했지만 보완을 요구하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를 두고 다국적 제약바이오기업인 길리어드사이언스가 에볼라 치료제 렘데시비르를 활용한 임상3상 시험을 허가받은 것과 관련해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식약처 관계자는 “렘데시브르는 다른 목적이지만 이미 사용하고 있는 물질인데다 길리어드가 사전 상담 형태로 진행해 제출 자료 요건을 충족한 상황”이라며 “코미팜은 사전 논의가 없었고 임상시험 계획서에 미제출 자료를 보완하는 기존 절차대로 진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식약처로부터 코로나19 관련 치료제로 임상계획 승인받은 업체는 모두 외국계 회사다. 이중 상업화가 가능한 허가용 임상 물질은 렘데시비르 뿐이다.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는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의 과잉홍보가 업계의 신뢰도를 갉아먹을 수 있다며 우려한다. 앞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에볼라,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감염병 유행 당시 치료제 개발 소식을 발표하고도 아직까지 결과를 내놓지 못한 업체도 상당하다.
업계 관계자는 “앞서 메르스 때도 업체들이 치료제를 개발한다고 홍보하고 주가가 올랐지만 아직까지 치료제는 나오지 않았다”며 “기업들은 치료제 개발 홍보시 한계와 소요시간 등을 명확히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