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기'가 현실로…코로나19 물리친 '혈장치료법'

머니투데이 오상헌 기자, 류준영 기자 2020.04.0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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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커우=신화/뉴시스]중국 하이난(海南)성 하이커우(海口)의 하이난 혈액센터에서 지난 2월17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부터 회복된 환자 한 명이 혈장을 기증하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25일(현지시간) 일부 심각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회복된 환자의 혈장 사용을 승인했다. 또 뉴욕시도 중증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코로나19로부터 회복된 환자들의 혈청을 검사하기 시작하기로 했다. 2020.3.26[하이커우=신화/뉴시스]중국 하이난(海南)성 하이커우(海口)의 하이난 혈액센터에서 지난 2월17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부터 회복된 환자 한 명이 혈장을 기증하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25일(현지시간) 일부 심각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회복된 환자의 혈장 사용을 승인했다. 또 뉴욕시도 중증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코로나19로부터 회복된 환자들의 혈청을 검사하기 시작하기로 했다. 2020.3.26


국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중증 환자 2명이 완치자 혈장 주입 치료를 받고 회복됐다는 연구 논문이 국내에서 처음 발표되면서 '혈장치료법'이 항바이러스 치료 효과가 없는 '중증 환자'를 살릴 대안이 될지 주목된다.

일부 부작용과 대규모 임상시험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 등을 감안해야 하지만 혈장 치료를 다른 치료와 병행할 경우 중증 환자에 효과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령 중증환자 2명에 '완치자 혈장' 투여 효과
최준용·김신영 세브란스 교수팀은 7일 코로나19 감염에 따른 급성호흡곤란증후군 동반 중증 폐렴으로 위중한 환자 2명에게 혈장치료를 한 결과 모두 완치됐으며 1명은 퇴원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논문은 이날 발간된 국제학술지 'JKMS'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각각 71세와 67세인 고령 남성·여성 환자를 대상으로 완치자의 혈장을 주입하는 치료를 시도했다. 기저 질환이 없었던 71세 남성은 코로나19 확진 판정 후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았으나 폐렴 증상이 완화되지 않았다고 한다.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긴 후 의료진은 20대 남성 완치자의 혈장 500㎖를 2회 용량으로 나눠 12시간 간격으로 환자에게 투여했다. 스테로이드 치료도 병행했다. 혈장 치료 이틀 후부터 이 환자는 산소 요구량 감소, C-반응성 단백질(CRP) 수치 감소 등 호전 증상이 나타나 결국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았다.

고혈압 기저질환으로 확진 후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던 67세 여성 환자 역시 완치자의 회복기 혈장을 12시간 간격으로 두 번에 걸쳐 투여하자 바이러스 농도가 감소해 완치 판정을 받았다.

영화 '감기' 포스터영화 '감기' 포스터
완치자 혈장 속 다량의 항체가 바이러스 중화작용
혈장 치료법은 2013년 개봉한 영화 '감기'에도 등장했던 감염병 치료 방식이다. 감기에선 치명적인 신종 독감(인플루엔자) 발병으로 국가가 혼란에 빠지자 자연 완치된 아이의 혈액을 이용해 치료제를 개발하는 장면이 나온다. 완치된 환자의 피에서 혈장을 분리·수혈하는 치료법으로 대개 백신 및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신종 감염병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도되곤 했다.


'혈장'은 혈액에서 적혈구·백혈구·혈소판 등을 제외한 액체 부분을 말한다. 완치자의 혈장에는 다량의 항체가 있다. '항체'는 항원에 대항하기 위해 혈액에서 생성된 당단백질로 바이러스를 중화하는 기능을 한다. 세균·바이러스가 체내에 침입하면 공격적 항원이 만들어지는데 인간의 신체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 항체를 만들어낸다.

국내 첫 혈장 치료 성공 사례처럼 '혈장치료법'은 국내외에서 산소호흡기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의 '중증 환자' 치료에 활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기존의 말라리아 치료제인 '클로로퀸', 에볼라 치료제 '렘데시비르', 에이즈 치료제 '칼레트라' 등을 코로나19에 적용한 신약 재창출 치료법은 '경증 환자'가 주요 대상이다. 혈장치료로 완치된 국내 중증 환자 2명에 대해서도 의료진은 확진 후 말라리아와 에이즈 치료제, 항바이러스 치료법 등을 시도했으나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다.

사스·메르스·에볼라 때도 혈장치료 시도 효과는 '들쑥날쑥'
혈장치료법은 1918년 발생 후 2년 동안 전세계에서 2500만~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간 스페인 독감에서부터 사용됐다고 한다. 약 1700명 이상의 환자가 이 치료법을 썼지만, 실제로 효과를 봤는지는 검증된 기록이 없다.

2002년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병 때도 이 치료법이 일부 성공을 거뒀다. 홍콩 의료진은 약 80여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혈장 치료법을 적용해 다른 치료를 받은 환자들과 견줘 완치 확률이 높다는 점을 확인했다.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창궐 당시 서아프리카에서 의료활동을 펼치던 미국인 의사 켄트 브랜틀리 박사는 감염 확인 후 완치된 환자로부터 에볼라 항체가 포함된 피를 수혈받아 치료 효과를 보기도 했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발생 때도 국내에서 완치자 2명의 혈장을 채취, 환자 2명에게 투여하는 혈장 치료를 시도했다. 하지만 당시엔 환자들에게서 차도가 발견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고됐다.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엔 수개월 혹은 수년이 걸린다. 혈장치료는 이보다 환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기간이 훨씬 짧다는 장점이 있다. 연구개발 비용이 저렴하고, 방법도 간단하다. 의료기술이 낙후된 국가에서도 이용이 가능하다.

[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정세균 국무총리가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제공) 2020.04.04.      photo@newsis.com[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정세균 국무총리가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제공) 2020.04.04. [email protected]
부작용·임상확인 필요하지만 '중증환자' 대안 가능성
일부 전문가들은 혈장 치료법이 완벽한 치료 효과를 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최소한 코로나19 환자들과 접촉하는 가족·의료진들이 전염되는 것을 막아주는 효과는 있다고 말한다. 존스 홉킨스 대학 면역학 전문가인 아르투로 카사데발 교수는 "치료제로 사용되는 혈장은 바이러스 공격을 일정 기간 막아줄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진정 국면에 들어간 중국에선 지난달 초부터 회복기 혈장을 이용한 여러 연구가 시도되고 있다. 중국 저장대학 연구진은 코로나19 중증 환자 13명을 대상으로 회복기 혈장을 이용한 치료를 시도했다. 하지만 일부 환자들의 경우 호전 상태를 보이다 상태가 다시 악화된 경우가 있어 해당 치료법이 효과가 있다고 단정 내리긴 아직 힘든 상태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부속병원, 워싱턴대학 부속병원 등도 회복기 혈장을 검사하기 위한 실험 계획서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최근 제출했다.

최준용 세브란스병원 교수는 "혈장치료에 나름의 부작용이 있고 대규모 임상시험이 없어 과학적인 증거는 충분하지 않다"면서도 "항바이러스 치료 등에 효과가 없는 중증 환자들에게 스테로이드 등 치료와 병행하면 나름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도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이번 치료 사례를 참고해 코로나19 혈장치료 지침을 수일 내로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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