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부부의 세계'에서 남편의 불륜 장면을 목격하고 눈물을 흘리는 지선우(김희애). /사진제공=JTBC
시청률조사기관 닐슨코리아가 집계한 4회 시청률은 무려 14%까지 치솟았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신념’의 시청자들도 적지 않았을 듯싶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주인공(김희애)이 겪는 당혹감, 좌절감, 충격 등 섬세한 내면 심리를 표현하는 데 연기뿐 아니라 연출적 요소나 대본 스토리까지 심적 공감력을 높였다는 점에서 차별화가 도드라진다”며 “자극적인데, 막장처럼 안 느껴진다는 것 자체가 ‘웰메이드’ 작품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 /사진제공=JTBC
드라마 초반에는 쉽게 이혼할 것처럼 보인 구조가 이렇게 꼬인 것은 막무가내식 막장이 아니라, 복잡한 현실적 관계를 통해 개인의 심리를 처절하게 투영하는 공감력에 무게를 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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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선 불륜을 암시하는 문자 하나에 헤어지는 ‘쿨’한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부부가 이뤄놓은 그간의 성과나 자식 문제 등으로 고민의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드라마의 분노게이지는 점입가경이다. 남편 이태오(박해준)가 “누구를 선택할 거냐”는 친구 설명숙(채국희)의 물음에 “두 여자 모두 사랑한다”는 황당한 답변을 하면서 시청자의 분노는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피가 솟구치는 대목은 남편이 아내가 모은 대부분의 자산을 관리하면서 불륜녀 여다경(한소희)에게 갖다 바치느라 담보대출을 받은 장면이다. 그중 압권은 아들 보험까지 손댄 일이다. 이 장면에서 시청자들의 분노게이지는 폭발 직전까지 이르렀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불륜녀로 나온 여다경(한소희). /사진제공=JTBC
한편으로는 시청자가 욕을 하는 과정에서 잘난 그들만의 세계가 내가 사는 세상보다 결코 낫지 않다는 안도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아들의 보험까지 손댄 일은 건드릴 수 없는 마지막 노선을 건드렸다는 점에서 ‘결별의 설득력 있는 논거’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주변 관계 속에서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인 바닥 심리까지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이혼 과정에서 보여주는 ‘권력 주도권’…연대 혹은 결별 ‘정치 게임’드라마는 언뜻 ‘가족의 불화’ 얘기 같지만, 자칫 ‘권력의 관계’로 확대해석되기도 한다. ‘완벽한 세계’를 꿈꾸는 최고 권력자 지선우와 맺는 관계들이 이 권력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지선우(김희애, 왼쪽)를 흠모해 온 친구 손제혁(김영민). /사진제공=JTBC
정덕현 평론가는 “대결 구도 안에서 수직적인 틀로 휘둘리는 정치적 게임이 곳곳에 숨어있다”며 “권력의 속성이 그러하듯, 힘의 대결이 때론 동지적 관계로 연대하거나 때론 갈라서거나 하는 장면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지선우가 친구 설명숙에게 ‘이중첩자’ 운운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현재 페미니즘 인식에서 퇴행적”…2% 아쉬운 대목들
탁월한 심리묘사와 긴장감을 잃지 않는 스토리 전개에도 ‘관습적 퇴행’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능력 있는 전문직 여성이 이혼 과정에서 남편의 ‘완벽한 추락’을 위해 보여주는 일련의 복잡한 감정이 이해할 수 있어도 지금의 현대 사회 관점에선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선우가 ‘이혼녀 딱지’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복수심을 결심한 후에도 ‘사랑 문제’에 집착하는 행태가 너무 ‘올드’하다는 얘기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이혼 과정에서 복잡한 심리 묘사로 시청자를 끌어모은 주인공 지선우 역의 김희애. /사진제공=JTBC
여다경에 대한 캐릭터도 이해불가.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가장 잘 사는 이가 여다경 집안인데, 왜 그가 기반이 없는 고아처럼 묘사되는지 쉽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젊은 여자의 욕망에 대한 부분이다. 남편 이태오가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흔히 그렇듯 낭만적 감정이나 불안한 영혼에 기대어 사랑을 호소하는 방식에 여다경이 쉽게 이끌리는 모습이 고리타분한 설정이라는 것이다.
황 평론가는 “자신의 영혼의 취약함을 매력 자본화하는 남자에게 끌리는 젊은 여자의 욕망은 안쓰럽기까지 하다”며 “드라마의 두 여주인공이 지닌 ‘퇴행적 분열’이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