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생산·판매 '삼중고'…'코로나 대못' 박힌 기업들 플랜B 가동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0.04.07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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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생산·판매 '삼중고'…'코로나 대못' 박힌 기업들 플랜B 가동


"정해진 투자야 그대로 하지만 플러스 알파는…"

6일 삼성전자 임원은 끝내 말꼬리를 흐렸다. 투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코로나19(COVID-19) 사태의 한가운데서 내뱉은 착찹한 한마디다.



이 임원은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데 누가 투자를 늘릴 수 있겠냐"며 "이미 투자를 시작했거나 불가피한 분야를 빼면 올해는 공격적인 투자가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세운 경영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거나 수정하는 대기업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국면이 1분기를 넘어 상반기 내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플랜B' 준비에 힘을 싣는 분위기다.



투자계획 전면수정…"생존전략 검토"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24일 화상으로 개최된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제공=SK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24일 화상으로 개최된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제공=SK
올해가 시작한 지 석달이 지나도록 투자계획을 확정하지 못한 삼성전자 (80,800원 ▲1,000 +1.25%)의 모습은 코로나19 사태에 휩쓸린 기업들의 투자, 판매, 생산 3중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30일 공개한 사업보고서에서 올해 투자 규모를 밝히지 않은 채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코로나19 쓰나미에 휩쓸리면서 경영시계가 사실상 제로 상태라는 분석이다. 삼성만이 아니다. 현대차·SK·LG그룹도 줄줄이 지난해 말 세웠던 경영계획의 재검토에 착수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24일 그룹 전반의 전략을 논의하는 수펙스추구협의회의 비상경영회의에서 유례없이 강도 높은 표현을 써가며 생존전략 재검토를 지시했다. 코로나19 충격이 그룹 양대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과 SK하이닉스에 큰 충격을 주면서 최 회장의 발언을 끌어냈다는 분석이다.


LG그룹 '주포' LG화학의 신학철 부회장도 이날 사내 메시지를 통해 "투자와 비용 지출 등 올해 계획을 다시 챙겨보고 변화한 상황에 맞게 비상경영체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본격적인 허리띠 졸라매기를 선언한 것이다.

글로벌 수요급감…"5월 항공사 파산 초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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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물꼬가 틀어막힌 이면에는 당면한 시장 문제가 크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수출길이 사실상 막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주요 업종별 올해 수출전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디스플레이(-17.5%), 자동차(-12.5%), 가전(-12.0%), 휴대폰(-11.0%) 등 대다수 업종이 지난해보다 부진할 전망이다.

올해를 미국시장 반등의 원년으로 삼았던 현대차 (237,000원 ▼7,000 -2.87%)는 사실상 수출 회복 기대감을 접고 내수에 '올인'하는 분위기다. 지난 3월 미국시장 판매실적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 줄면서 비상이 걸렸다.

삼성전자와 LG전자 (96,800원 ▼200 -0.21%)도 올해 전세계 TV 시장 매출이 지난해보다 10% 가까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에 전전긍긍한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대에서 20달러대로 떨어지며 정유·화학업계도 대규모 재고평가손실을 떠안았다. 시장에서는 1분기 국내 정유 4사의 영업손실이 2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항공업계는 줄도산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다. 갈 곳이 없어 주기장에 멈춰선 국적항공사 여객기가 374대 가운데 324대(87%)다. 항공협회는 올해 상반기 국적항공사의 매출 피해가 최소 6조4451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세계 최대 항공 컨설팅 전문기관 CAPA는 각국 정부의 지원이 없을 경우 전세계 항공사 대부분이 5월말 파산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재가동 언제일지 몰라…기업 근간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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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수요감소를 걱정하던 기업들이 이젠 생산 고민에 빠졌다는 것도 큰 문제다. 자동차·전자·철강 등 업종과 상관없이 전세계적으로 얽힌 공급사슬망이 흔들리면서 언제 공장이 멈출지 모른다는 셧다운 공포가 기업을 흔들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총 12개 글로벌 생산기지 가운데 중국을 제외한 모든 공장이 생산을 멈췄거나 멈출 예정이다. 삼성전자도 국내외 37개 생산거점 가운데 4분의 1가량이 멈춰선 상태다. LG전자 생산공장은 41곳 가운데 6곳이 가동 중단했다. LG화학 (440,000원 ▼4,000 -0.90%)의 미국 미시간주 배터리 셀 공장과 삼성SDI의 배터리 팩 공장, 포스코의 이탈리아·인도·필리핀 가공센터도 가동 중단했다.

재계 인사는 "업체별로 길어야 3주 정도의 '일시 중단'이라고 하지만 실제 중단기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도 재가동 예정이었던 삼성전자·LG전자·현대차의 러시아 공장이 현지 정부 방침에 따라 이달 30일까지 중단을 연장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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