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시장보다 유리하게 대기업 지원 못해"…얌체족 때문?

머니투데이 이학렬 기자 2020.04.0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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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채 매입조건 두고 이견…금융당국 "시장 조달이 우선"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컨퍼런스콜로 열어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 100조원+α'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 사진제공=금융위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컨퍼런스콜로 열어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 100조원+α'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 사진제공=금융위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대기업을 향해 "시장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기 어렵다"며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기업까지 살리겠다고 했는데 금융위는 왜 이런 경고를 했을까.

정부가 코로나19(COVID-19) 여파로 변동성이 커진 금융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 내놓은 채권시장안정펀드가 2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앞선 1일엔 1차로 약 3조원 조성이 마무리됐다.



채안펀드가 회사채를 매입하려고 했지만 매입조건을 두고 기업과 채안펀드 측 간에 이견이 발생했다. 특히 카드사, 캐피탈사 등 여신전문회사가 낮은 금리를 요구하면서 채안펀드는 도저히 여전채를 사들일 수가 없었다.

금융당국은 채권시장이 3월 하순처럼 경색되지도 않았는데 여전사들이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봤다. 실제로 신한카드는 채안펀드의 도움 없이 △만기 2년짜리 400억원 △만기 1년7개월짜리 1200억원 △만기 1년10개월짜리 900억원 등 총 2500억원의 카드채를 발행했고, 우리카드도 만기 1년짜리 카드채 700억원을 발행했다.



금리 수준이 나쁜 것도 아니다. 신한카드는 만기 2년짜리를 1.717%로 발행했다. 신한카드는 금융시장이 한창 출렁거린 지난달 24일에도 만기 3년짜리 카드채를 발행했는데 금리는 1.75%였다. 지난달 10일 만기 5년짜리는 1.49%에 발행한 만큼 조달여건이 악화된 건 맞지만 그렇다고 감내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라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대기업 등이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하려는 경우 내부 유보금, 가용자산 등을 최대한 활용해 1차적으로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 여전사들이 채안펀드에 의존해 조달금리를 낮출 것이란 우려는 채안펀드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나왔다. 2003년 카드채 환매사태 때 정부는 브릿지론을 조성해 카드채를 매입했는데 당시에도 카드사들은 낮은 금리와 다양한 옵션을 요구한 적이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여전사들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대출만기를 6개월 연장하고 이자상환도 6개월 유예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채안펀드로 여전채를 사들이는 것"이라며 "여전사들이 이를 통해 제 잇속을 채우려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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