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3500만원 車공장'은 끝내 꿈이었나…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기성훈 기자 2020.04.0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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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금속노조 현대·기아자동차지부 노조원들이 김종훈 민중당 의원과 함께  '광주형 일자리' 일방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금속노조 현대·기아자동차지부 노조원들이 김종훈 민중당 의원과 함께 '광주형 일자리' 일방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주 44시간 노동에 평균 연봉은 3500만원."

적정시간 근로와 적정임금을 통해 상생형 일자리를 늘리자는 취지에서 기획했던 '광주형 일자리'가 노동계 반발로 좌초 위기를 맞았다. 투자금을 준비 중이던 현대차 (233,000원 ▼4,000 -1.69%)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일단 당초 계획대로 준비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망은 어둡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지난 1일 입장문을 내고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가 광주형 일자리 협약 파기를 선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협약 파기 선언은 청년 일자리와 지역 일자리를 연계해 경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희망이 무너졌음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려 했다는 주장도 했다. 한국노총은 "노동계가 요구한 적정 임금과 적정 노동시간, 원하청 상생방안, 노사책임 경영이 상생형 일자리의 기본적인 원칙"이라며 "한국노총은 '사회통합 일자리 협의회'를 통해 이 문제를 풀어가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주시 등이 '노동계의 헌신적 결단'만 요구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협의는 의미가 없다는게 한국노총의 주장이다.

'이상'에 '이상' 더해 그렸던 광주형일자리 밑그림
(광주=뉴스1) 한산 기자 = 30일 오후 광주 광산구 삼거동 빛그린국가산업단지 1공구에서 광주형일자리 합작법인인 광주글로벌모터스(GGM)의 공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광주글로벌모터스는 현재 철골 구조물 설치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전체 공정률이 8.1%라고 밝혔다. 2020.3.30/뉴스1(광주=뉴스1) 한산 기자 = 30일 오후 광주 광산구 삼거동 빛그린국가산업단지 1공구에서 광주형일자리 합작법인인 광주글로벌모터스(GGM)의 공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광주글로벌모터스는 현재 철골 구조물 설치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전체 공정률이 8.1%라고 밝혔다. 2020.3.30/뉴스1
광주형 일자리는 지난해 1월 탄생했다. 현대차와 광주시, 한국노총이 합의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불안했다.

일자리 확보라는 큰 명분에 가려졌던 현실적 문제들은 법인 설립 이후 끝내 현실화했다. 한 완성차업체 관계자는 "사실 같은 일(완성차 생산)을 하면서 낮은 연봉을 감수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고 밝혔다.


기업은 저렴한 인건비로 경쟁력 있는 자동차를 만들고, 근로자들은 낮은 연봉을 받더라도 지역 사회에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 이게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이다. 그야말로 노사 양측 모두 이상적인 밑그림 자체다. 이 밑그림은 노조 측이 "적정 임금을 보장하라"고 주장하자 여지없이 찢어졌다.

한국노총이 주도하는 구도도 불안요소 중 하나였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핵심 사업장이다. 광주형일자리 사업엔 현대차가 500억원 정도를 투자할 예정이었다.

때문에 합작법인인 '광주글로벌모터스'를 놓고 한국노총 주도 사업장이지만 언제든지 민주노총이 복수 노조 설립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렇게 되면 유례 없는 '한 지붕 두 가족'이 탄생한다. 특단의 노무관리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올-인' 해도 어려울 판에...지자체 경영 테스트?
(광주=뉴스1) 박준배 기자 = 이용섭 광주시장이 2일 광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노총 광주본부의 '광주형 일자리' 협약 파기 선언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시장은 "노동계와 함께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꼭 성공시키고 싶다"고 말했다.2020.4.2/뉴스1(광주=뉴스1) 박준배 기자 = 이용섭 광주시장이 2일 광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노총 광주본부의 '광주형 일자리' 협약 파기 선언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시장은 "노동계와 함께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꼭 성공시키고 싶다"고 말했다.2020.4.2/뉴스1
출발부터 난관이 예고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인데다, 속사정을 보면 처음부터 연착륙은 쉽지 않았다. 완성차 업계는 "사업을 '되는 방향'으로 끌고 가기 쉽지 않은 구조였다"고 평한다. 지방자치단체 경영이라는 한계 때문이다.

매 고비마다 결단을 내려야 할 박광태 초대 대표이사는 광주시장 출신이다. 현대차 출신 부사장이 있긴 하지만 요직인 경영지원본부장 등도 모두 광주시 출신 전직 관료들이다.

경영진은 물론 경영 의사결정도 광주광역시가 주도했다. 지자체장 임기가 정해져 있는 지자체가 경영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기업은 현대차가 '올-인' 한다고 해도 살리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온다. 공장을 돌리기도 전에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갔다는 얘기도 들린다.

합작법인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시스템으로 뭔가가 돌아가는 수준에 이르기도 전에 중간 중간 여러 힘들이 개입했다"며 "합리적 대안을 세워도 계획대로 안될 수 있는데 비경영적 요소가 너무 많이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일자리 명분을 위해 청와대와 중앙정부가 급하게 사업을 추진했다는 분석도 있다. 사업이 좌초되면 지역 주민들에게 '희망고문'만 한 셈인데 노동계와 재계, 지자체 등 여러 상황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2일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계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며 대화 재개를 촉구했다. 사업 재개 의지를 보인 것이지만 동시에 처음 취지가 퇴색될 가능성도 생겼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다시 항로를 잡을 수 있을 지 시선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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