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국 모델 벗어난 미국, 코로나19 예측도 못한다

머니투데이 강상규 소장 2020.04.02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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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칼럼]

한국·중국 모델 벗어난 미국, 코로나19 예측도 못한다


지난달 26일 미국 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가 8만3000명을 넘어 미국이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다 감염국이 되면서 미국이 세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의 새로운 진앙지가 될 것이라는 경고가 현실이 됐다. 마거릿 해리스(Margaret Harris) 세계보건기구(WHO) 대변인은 이틀 전인 24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매우 가파르다고 지적하면서 이제 중국이 아닌 미국이 새로운 진앙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WHO 대변인의 경고처럼 미국의 코로나19 확산 속도는 지난달 23일부터 급격하게 빨라지고 있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의 데이터를 가지고 각국의 코로나19의 확산 경로를 비교 분석해보면, 100번째 확진 환자가 나온 이후 20일이 경과한 시점을 전후로 미국의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중국을 앞서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시점이 대략 지난달 23일 무렵이다.

100번째 확진 환자가 나온 이후 20일이 경과하기 전까지는 미국의 코로나19 감염 속도는 중국이나 이탈리아, 스페인, 한국보다 늦었으나 20일이 경과하면서부터는 가파르게 변하면서 조만간 미국이 세계 최다 감염국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3일 후 미국의 코로나19 확진 환자 수가 중국을 추월했다.



그리고 이틀 후인 지난달 28일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10만명을 넘어서며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10만명대로 올라섰다. 이로써 미국은 세계 코로나19 팬데믹 차트 범위 밖으로 벗어나는(off the charts) 첫 번째 국가가 됐다. 지금까진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10만명을 넘은 국가가 한 곳도 없었다.

미국은 100번째 확진자가 나온 이후 25일 만에 확진자 수가 10만명을 넘어서 바이러스 확산 속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빨랐다. 미국 다음으로 확진 환자 10만명을 넘어선 이탈리아는 100번째 확진자가 나온 이후 36일이 걸렸다.

한국·중국 모델 벗어난 미국, 코로나19 예측도 못한다
이렇다 보니 미국의 코로나19 확산세를 추정하기가 매우 어렵게 됐다. 일반적으로 국가별 확진 환자 증가 추세를 예측할 때 한국과 중국 확산 모델을 바탕으로 하는데, 미국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차트 범위를 벗어나면서 한국이나 중국 확산 모델을 적용하면 큰 오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부정확한 예측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예컨대 2월 24일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의 보험팀은 역학(epidemiology) 모델을 토대로 “한국의 코로나19 사태가 3월 20일 정점을 찍고 최대 확진자 수는 1만명에 달할 수 있다”고 예측한 바 있는데, 이때 JP모건은 일정한 가정과 수학적 모델 및 중국 사례를 바탕으로 추정했다.

한국의 경우 100번째 확진 환자가 나온 이후 20일이 경과한 시점부터 코로나19 확산 곡선이 평평해지기 시작했는데 이 시점이 대략 지난달 15일 전후다. 중국은 이보다 열흘 정도 더 걸려 30일이 경과한 뒤에 코로나19 감염속도가 현저히 줄면서 확산 곡선이 평평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미국은 지난달 31일 기준으로 100번째 확진자가 나온 지 28일이 경과했지만 코로나19의 확산 곡선이 평평해질 조짐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달 29일 앤서니 파우치(Dr. Anthony Fauci)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예측 모델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수백만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 내 코로나19 확산세가 언제 정점을 찍을 것인지에 대해선 답변을 보류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확산 속도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

지난달 30일 데보라 벅스(Dr. Deborah Birx) 미 백악관 코로나19 TF(태스크포스) 조정관은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파우치 소장의 감염자 예측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인 100%가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정확하게 따르는 등 “거의 완벽하게 대응했을 경우”라는 전제 조건이 충족된다는 가정 하에 확진자 수가 그 정도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우치 소장은 미국 내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10만~20만명에 달할 수 있다고 예측했는데, 치명률을 1%라고 가정하면 확진자 수는 수백만명이 아닌 최대 2000만명에 달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결국 수백만명의 감염자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은 최상의 시나리오에 가깝다는 얘기다.

또한 코로나19 검사가 미국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적인 제약도 확산 속도를 예측하는데 큰 걸림돌이 된다. 미국 내 코로나19 검사는 아직까지 일부 지역에 국한돼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코로나19 검사가 전국적으로 시행되게 되면 확산 예측 모델의 수정이 불가피해진다.

게다가 많은 미국인들이 여전히 기초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따르지 않고 있는 점도 코로나19의 정점 예측을 어렵게 하는 이유가 된다. 벅스 조정관도 "최상의 시나리오는 미국인들 100%가 정확하게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서 요구하는 것을 따르는 경우인데,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미국의 모든 도시들이 아주 걱정된다"고 호소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준수하지 않는 많은 미국인들의 행태를 지적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거의 같은 날 나왔다. 한국은 1월 20일, 미국에선 1월 21일 첫 확진 환자가 발생했다. 그런데 그 이후 두 나라의 코로나19 대응법은 확연히 달랐다.

한국은 대규모 검사, 엄격한 격리, 확진자 동선 공개와 더불어 마스크 쓰기, 손 씻기, 모임 자제 등 사회적 거리두기를 대대적으로 실천하면서 코로나19 조기 방역에 총력을 기울였다. 초기엔 대구경북지역 신천지 교인 집단감염으로 인해 폭발적인 확산세를 보였지만, 100번째 확진자가 나온 이후 20일이 경과한 시점부턴 확산세가 꺾이면서 확산 곡선이 평평해지지 시작했다.

반면 미국은 1월 말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만 내렸을 뿐 코로나19를 일종의 독감 정도로 치부하고 이렇다 할 방역 조치를 소홀히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19의 위험을 무시하면서 코로나19는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고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는 엉터리 주장을 거듭해 왔다. 그 결과 현재 미국은 세계 최다 코로나19 감염국이라는 오명과 함께 세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의 새로운 진앙지가 되고 말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오판의 대가가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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