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의사 지선우 역을 맡은 김희애. /사진제공=JTBC
원작인 영국 BBC 드라마 ‘닥터 포스터’가 ‘사랑과 전쟁’ 같은 전형적인 드라마 형식을 따랐다면, ‘부부의 세계’는 범죄 스릴러물 같은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 첫 회 지선우가 보여준 몇 개의 표정만으로도 이 드라마가 어떻게 시청자를 흡입하는지 여실히 증명한다.
아직 초반이지만, 이 드라마에서 가장 특색있는 구도는 남자 캐릭터를 ‘악’ 또는 ‘하자’로 묘사한다는 점이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지선우의 선배 의사 마강석 역으로 나오는 박충선. 가족을 잃고 알코올 중독으로 문제를 일으킨 그는 지선우로부터 해고를 당한다. /사진제공=JTBC
“마광석씨 오늘부로 해고조치 하겠습니다. 두 달 째 근태 불량과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진료를 맡길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알코올 중독 의사를 허용할 병원은 없습니다.”
병원장조차 쉽게 꺼내지 못한 말을 부원장인 지선우가 “가족을 잃었다”는 선배 의사의 동정심 유발 멘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또렷한 메시지’로 해고 결정을 내린 것은 ‘완벽한 세계’로의 방해는 허용할 수 없다는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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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인생에 그런 불행은 없을 것 같아?”라는 선배 의사에 마지막 멘트에도 지선우는 “아무리 힘드셔도 본분을 잊지 말았어야죠”라고 응수한다. 지선우에겐 ‘본분’이 중요하다. 부부의 세계에선 바람을 피우면 안 되는 신의성실의 본분, 피우더라도 솔직히 말하는 정직의 본분 등이 그렇고 직업의 세계에선 마강석씨 같은 사례가 그렇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민현서(심은우, 왼쪽)는 박인규(이학주)로부터 상습 폭행을 당하는 여자 친구로 나온다. /사진제공=JTBC
“상해진단에 정신의 진단 한 장이면 네 인생이 끝난다”는 간결하고 명쾌한 설명은 완벽한 세계와 본분을 거역하는 관점에서 가장 시의적절한 ‘협박’이다.
지선우의 인생관과 세계관은 이 두 사례에서 정확하게 감각된다. 명확한 메시지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지선우의 일관적인 패턴은 그러나 오직 남편에게만 예외로 남아있다. 남편의 외도를 아는 것도 모자라 주변 인물들까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서 치오른 극단의 분노에서도 의료용 가위를 숨기고 남편에게 키스하는 자제력을 발휘한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 한 장면. /사진제공=JTBC
잘못은 남편이 했는데도, 앞선 두 사례처럼 맺고 끊는 결단이 부족한 추가적 또는 결정적 요인으로는 폭력을 당한 민현서의 말 한마디 때문이다. “그런 놈하고 얽혀서 한 번뿐인 인생 낭비하고 싶어요?”라고 지선우가 묻자, 민현서는 이렇게 답한다. “그 사람 인생이 나한테 달려있으면요? 인생 잠깐 꼬인 걸로 화풀이하는 거지.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니에요. 내가 꼭 괜찮은 남자로 만들 거예요.” 지선우는 “사람 그렇게 쉽게 안 바뀐다”고 하자, 민현서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사랑해서 그래요. 내가”
민현서의 말을 남편에게 적용하면 ‘잠깐 핀 바람’으로 ‘눈속임’하는 거지 나쁜 남편은 아닐 것이고 지선우 자신이 ‘꼭 괜찮은 남편’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해서 그런 것이다. 내가’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남편 이태오 역을 맡은 박해준. /사진제공=JTBC
대놓고 물어본 어쩌면 황당한 질문에 지선우도 당황했는지 두 번째 기회의 질문에선 비참한 톤으로 애걸하듯 말한다.
“우리 결혼할 때 살다 보면 다른 상대가 눈에 들어올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잖아. 그땐 서로 솔직해지자고. 이제라도 태오씨가 솔직하게 인정하고 깨끗이 정리하면 나 용서할 수 있을 거 같아. 잠깐 육체적으로 끌렸을 뿐이잖아. 그치?” 남편은 냉정하게 쏘아보는 것도 모자라 되레 화난 듯한 표정까지 짓는다.
마지막 기회는 거짓말과 용서의 질문이다. “그런데 거짓말은 용서 못해. 그건 진짜 배신인 거야.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해줘.”
드라마 '부부의 세계' 중 한 장면. /사진제공=JTBC
세 번의 기회에도 ‘정답’을 내놓지 못한 남편에 대한 아내의 다음 수순은 하자 있는 남자들을 향한, ‘타자’에 대한 응징과 복수의 전철 그대로다. 아니, 타자는 단 한 번의 응징으로 끝냈을지 모르지만, 타자화된 가족의 응징 또는 복수는 곱절, 아니 갑절이 되기 십상이다. 2회는 전초전에 불과하다. 불륜녀의 임신 사실만 알렸을 뿐이니까.
‘완벽한 세계’란 이미 불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인간은 불완전할 때 완전을 향한 목표가 생기고 ‘완벽’이라는 느낌이 들 때 그 의미는 낭떠러지로 접어든다는 사실을 이 드라마가 소름 끼치도록 각인시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