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재난지원금 결정 전날밤…"싸우기 직전까지 갈 수도 있었다"

머니투데이 김하늬 기자 2020.03.3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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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막전막후]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싼 정부 여당 내 논쟁이 일단락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소득 하위 70%에 100만원(4인 가구 기준)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키로 결정하면서다. 문 대통령의 ‘결단’이 있기 전 일주일간 여당과 정부는 토론, 논쟁, 갈등 등을 이어왔다.

하이라이트는 비상경제회의 전날인 29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협의회. 청와대, 더불어민주당, 정부 고위 인사들이 모여 4시간 넘게 회의를 이어갔다. 밤 10시를 훌쩍 넘겨서야 회의가 마무리됐다. 민주당은 취약 계층뿐만 아니라 국민 생존권을 선제적으로 지켜야 한다며 적극 직원을 주문했다. 반면 기획재정부는 재정건전성 등을 이유로 맞섰다.



당정간 일정 수준 타협으로 마무리된 ‘긴급재난지원금’ 결정 과정을 재구성했다.

[서울=뉴시스] 장세영 기자 = 이인영(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연석회의에 참석해 현안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2020.03.30.   photothink@newsis.com[서울=뉴시스] 장세영 기자 = 이인영(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연석회의에 참석해 현안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2020.03.30. [email protected]


민주당 “소득 하위 70~80% 지급안 선제적 추진” …열흘 전 시뮬레이션
“좀 늦게까지 회의했다. 밤 늦게까지…”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29일 고위당정청에서 긴급재난지원금 확대 편성을 강하게 요구한 인사는 이인영 원내대표다. 그는 선제적으로 ‘긴급재난지원금 전국민 70~80% 지원안’을 당정청 안건으로 올리고 적극 추진한 장본인이다.

이 원내대표는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전시 사태’로 설정하고 총력전의 각오를 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는 “정부 여당이 필요한 상황에선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충분히 사용해야 한다”며 “지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는 게 맞다”며 정부를 겨냥했다.

민주당 핵심인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20일을 전후해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70%, 75%, 80%로 각각 설정하고 사전 검토를 시작했다. 지급 금액은 100만원으로 설정한 뒤 가구별·개인별, 일괄지급·분할지급 등의 시나리오를 점검했다. 조정식 당 정책위의장이 관련 작업을 총괄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이나 ‘재난수당’ 등의 내용은 따져봤지만 명칭엔 선을 그었다. 소득이나 수당이 ‘정기적인 수입’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생계지원 방안공식 명칭을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잠정 확정하고 필요한 예산 추계에 나섰다.

민주당의 시작점은 보편 지원이었다. 지자체와 지역구 의원을 통해 전해진 민심이 그랬다. 이 원내대표가 “누가 피해를 입고 있고 어떤 점이 취약한 지 모호할 땐 보편지원이 더 효율적인 때가 있다”며 긴급재난지원금을 설득한 배경이다. 이 원내대표는 고위당정청에서 기재부와 ‘1대1’ 격론을 벌였다.

정부 관계자는 “당정간 세수, 지급대상, 중산층지원여부, 중복지원여부 등 항목 하나하나에 대한 격론이 이뤄졌고 이 원내대표가 막힘없이 준비된 답변으로 반박하면서 회의가 예상보다 길어졌다”고 전했다.

기재부 ‘샅바싸움’…靑도 의견 갈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여당의 공격적 편성에 맞서 정부도 방어전에 나섰다. 지난 27일 기획재정부 등이 마련한 정부안 초안이 흘러났다.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방향이라며 긴급재난지원금 대상을 중위소득 100%, 즉 소득 5분위까지만 지급하는 방식이다.

당의 입장(소득하위 70~80%)과 차이가 컸다. 기재부 초안을 본 민주당 지도부는 “말도 안 된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여의도’(민주당)와 ‘세종시’(정부부처)간 샅바싸움이 본격화된 시점이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양호한 상태로 유지한 건 현재와 같은 비상사태를 만나면 ‘비상 조치’를 취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지도부 관계자는 “대통령께서 2차 비상경제회의때 국민의 생존을 위한 지원을 언급하신 건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한 정치적 결단을 내리신 것”이라며 “국민들이 충분히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온당한 후속 조치”라고 말했다.

청와대 입장도 갈렸다. 김상조 정책실장 등 정책파트는 기재부안에 힘을 실었다. ‘재정 건전성’뿐 아니라 재정 여력 비축 필요성에 공감했다. 문 대통령이 “정부로서는 끝을 알 수 없는 경제충격에 대비하고 고용불안과 기업의 유동성 위기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재정여력을 최대한 비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대목이다.

반면 정무 파트는 여당 편에 섰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생존 관련 지원금인데 내수 진작 등 경제 효과를 기대하는 정부와 청와대 일부 인식에 대한 불쾌감도 감추지 않았다.

“굉장히 격렬해서 자칫 싸우기 직전까지 갈 수도 있었다” (이낙연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
[서울=뉴시스] 장세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낙연(왼쪽)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과 이인영 원내대표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연석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2020.03.30.   photothink@newsis.com[서울=뉴시스] 장세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낙연(왼쪽)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과 이인영 원내대표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연석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2020.03.30. [email protected]
고위 당정청회의는 두 입장간 격돌의 무대였다. 회의에 참석했던 이낙연 위원장은 “제가 주로 한 역할은 언쟁이 너무 격렬해지지 않도록 달래는 역할이었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 위원장은 “굉장히 격렬해서 자칫 싸우기 직전까지 갈 수도 있었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의견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살살합시다. 이런 정도의 추임새를 넣고 가라앉혔다”고 전했다.

이 위원장은 “당은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생계비를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정부는 앞으로 더 긴밀하게 돈 쓸 일이 생길 수 있다며 신중한 태도였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기재부는 2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우려와 재정 건전성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더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2차 추경의 경우 적자국채 발행없이 세출 예산안을 조정하는 형태로 추진된다.

재원 마련 방식과 총액이 결정되면서 지급 대상도 윤곽이 잡혔다. 1400만 가구, 가구당 100만원, 9조원 규모였다. 소득 기준 등 세부 내용에 대해선 정부에 맡겼다. 절충안과 함께 고위당정청 회의 내 다수 의견, 소수 의견 등도 그대로 문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문 대통령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여권 고위 인사는 “당정청에서 큰 얼개는 합의했고 대체로 적극론이 다수였다”면서 “문 대통령이 최종 결심하는 것으로 정리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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