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코로나 경제위기와 골든타임

머니투데이 임상연 미래산업부장 2020.03.31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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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는 민주적이다. 누구도 가리지 않는다.”

코로나19(COVID-19) 환자 수치 은폐 의혹에 대해 “상황은 거의 안정된 상태다. 과민반응 말라”며 강하게 부인한 이라즈 하리르치 이란 보건부 차관이 지난달 정작 자신이 확진판정을 받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독일 사회학자이자 ‘위험사회’의 저자로 유명한 울리히 벡의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공해)는 민주적이다”란 말을 인용, 바이러스의 전파력을 강조한 것으로 보이는데 결과적으로 정부의 방역체계에 대한 이란 국민들의 불신만 키우는 꼴이 됐다. 안정된 상태라던 이란은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30일 오전 9시 기준 확진자 3만8309명, 사망자 2640명으로 급증했다. 확진자 기준 세계 7위, 중동지역 최대규모다.

울리히 벡의 말처럼 산업화와 근대화의 부산물인 기후변화, 미세먼지 등 현대사회의 위험은 빈부와 계층, 지역을 초월한다. 그렇다고 그 영향마저 평등한 것은 아니다. 늘 그렇듯 국가적 재난이나 위험은 위계를 타고 흘러 취약한 고리부터 파고든다. 코로나19가 뒤덮은 현실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바이러스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선 평등하지만 그 위험에 대처하는 방식이나 능력에는 빈부격차만큼 큰 차이가 존재한다.



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재택근무가 가능한 사람이 있는 반면 마스크 한 장에 의존해 새벽녘 혼잡한 버스를 타고 일터로 나가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 감염 우려로 배달음식을 시키는 사람이 크게 늘었지만 음식을 배달해야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한가하고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다. 정책자금을 융자해주는 소상공인지원센터와 지역신용보증재단에 다닥다닥 줄을 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라고 바이러스가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고용복지센터의 실업급여 설명회장을 가득 메운 실업자들이라고 면역력이 남다른 것도 아니다. 그들에겐 바이러스보다 직면한 생계위기가 더 큰 공포다.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휘청이자 각국 정부가 천문학적 돈풀기에 나섰다. 우리 정부도 11조7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데 이어 전례 없는 100조원의 기업구호 긴급자금과 9조원의 생계지원금(소득하위 70% 가구)을 투입하기로 했다. 긴급자금 중 50조원 이상은 벼랑 끝에 놓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원에 쓰인다. 대부분 저금리 대출이나 보증 같은 금융지원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대출 기다리다 문 닫겠다”는 한탄이 나온다. “긴급하지 않은 긴급자금” “진짜 서민은 빠진 정책자금”이란 비아냥과 질타도 쏟아진다. 현실의 절박한 사정을 행정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탓이다. 대출대란은 한꺼번에 많은 신청자가 몰린 이유도 있지만 공직사회의 고리타분한 일처리 방식도 문제다. 위기상황에서도 고질병인 탁상행정, 소극행정이 그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스마트폰 앱(애플리케이션)으로 대출받는 시대가 도래한 지 오래지만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정책자금을 받기 위해선 지금도 사업자등록증을 비롯해 8가지 서류를 제출하고 지원대상확인서를 직접 받아야 한다. ‘정부3.0’이니 ‘디지털 정부혁신’이니 호들갑을 떨지만 행정은 여전히 5G(5세대 이동통신)가 아닌 오지(奧地)를 헤맨다. 이러니 “차라리 정책자금을 핀테크(금융기술) 기업들에 통째로 넘기는 것이 낫겠다”는 푸념이 나오는 것 아닌가.

정부의 실력은 위기 때 드러난다. 코로나19 위기 초기 정부는 뒷북대응으로 골든타임을 허비하고 피해를 키웠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상황을 초래했다. 부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만큼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처럼 ‘과할 정도’로 대응해 국민들의 고통과 불안을 해소해주길 바란다. 특히 전례 없는 대책이 제대로 효과를 내려면 그에 걸맞은 전례 없는 속도가 필요하다. 코로나19 방역과 마찬가지로 경제위기 대응도 속도가 생명이다.
[광화문]코로나 경제위기와 골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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