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 내각·국회, '권력독식' 靑…타락한 진영의식 버려야 '내 삶' 바꾼다

머니투데이 특별취재팀= 정진우 강주헌 유효송 김예나 인턴 기자 2020.03.27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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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대한민국4.0'을 열자][4회-종합]청와대 정부와 국민을 위한 개헌

편집자주 대한민국이 맹목과 궤변, 막말 등으로 가득한 '타락한 진영의식'에 갇혀있다. 타락한 진영은 시위와 농성, 폭력 등을 일으키며 생산적 정치를 가로막는다.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타락한 진영을 없애고 '건강한 진영의식'을 회복해 대화와 협상, 타협 등이 가능한 정치를 만들어야한다. 그래야 '대한민국4.0'을 시작할 수 있다.

(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깨 수술 및 치료를 받기 위해 지난해 9월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 도착,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2019.9.16/뉴스1(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깨 수술 및 치료를 받기 위해 지난해 9월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 도착,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2019.9.16/뉴스1


내각·국회는 '병풍'…권력 독식 靑, 극단적 진영갈등 키웠다
# 2016년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를 불허한다. 그해 2월까지만해도 허가를 내주는 분위기였는데 봄을 지나며 갑자기 기류가 바뀐다. 관가에선 청와대 때문이란 소문이 돌았다.



1년 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고 청와대 인사들은 ‘국정 농단’ 관련 재판을 받았다. 당시 청와대 행정관은 증인으로 나와 “안종범 전 경제수석이 ‘박 전 대통령이 SK 합병을 우려하고 있다. 합병에 반대 의견이시다’며 공정위에 이를 전달하라 지시했다”고 말했다. 당시 SK그룹은 최순실씨가 추진하던 K스포츠재단 출연금 요청을 거부한 상황이었다.

우리나라 대통령과 청와대는 권력의 최정점이다. ‘무소불위의 힘’으로 불린다. 하지만 불법을 저지르면 언젠간 탄로난다. 대통령을 비롯 청와대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죗값을 치른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대통령과 청와대의 독선이 ‘실패한 정부’를 만든다고 기록한다.



'병풍' 내각·국회, '권력독식' 靑…타락한 진영의식 버려야 '내 삶' 바꾼다
◇모든 권력 독점하는 '대통령제'

보수 혹은 진보 어느 쪽이 권력을 잡든 정권 초·중반엔 호의호식한다. 하지만 정권 말기엔 힘을 잃은 채 무너진다. 정권이 바뀌어도 국회가 교체돼도 대통령과 청와대의 우울한 말년은 변하지 않는다.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된 탓이다. 대통령은 △인사권 △예산권 △입법권 △감사권 △집행권 등 5대 권력을 갖고 있다. 이외에도 거의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된다. 승자독식 구조에서 당연한 결과다.

청와대의 핵심 역할은 대통령 보좌다. 청와대는 각 부처가 추진하는 정책이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도록 도와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청와대는 대통령 의제를 관철시키는 데 전력을 다한다. 국민을 중심에 두고 일하기 보다 오로지 대통령 받들기에 열중한다.

그러다보니 각 부처는 대통령의 뜻을 ‘전달(실제론 압박)’하는 청와대 힘에 눌린다. 청문회도 거치지 않는 청와대 참모 중심으로 국정이 운영된다. 정권 중·후반엔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부처 장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례도 많다.

명분은 ‘국정 철학’이다. 하지만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수직적 구조만 강화된다. 부처가 다루고 집행해야 할 중요한 현안이 배제된다. 청와대 입장이 최우선시된다.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할 때 ‘책임 총리’를 강조하지만, 실상은 ‘청와대 정부’의 연속이다.

임현진 서울대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제에선 총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국민을 위한 정책을 실행해야 할 내각도 힘을 쓰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병풍' 내각·국회, '권력독식' 靑…타락한 진영의식 버려야 '내 삶' 바꾼다
◇건전한 당청관계? 청와대 앞에선 작아지는 여당

국회도 대통령과 청와대 앞에선 소극적 권력 기관이다. 입법권을 갖고 있지만 대통령과 청와대가 반대하는 입법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국회가 장관 인사청문회를 열고 ‘부적격’ 판정을 내려도, 대통령이 임명하면 그만이다.

집권여당은 대통령 임기 초반엔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임기 후반엔 차기 대통령 후보의 시녀로 변한다. 오직 청와대의 권력 장악을 위한 캠프 역할을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청와대는 여당 위에 있는 거대한 정당이다. 역사는 길다. 김대중 정부때까진 대통령이 여당의 총재를 겸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선 당청간 건전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 덕분에 이 제도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청와대는 집권여당 위에 군림하는 힘이 센 정당의 역할을 하는 게 현실이다.

야당은 현직 대통령과 청와대를 무조건 비판한다. 그들이 실패하는 게 야당의 존재 이유다. 다음에 집권을 위해서다. 그리고 실제 정권이 교체되면 똑같은 행태를 반복한다.

민주당 한 초선의원은 “대통령제에선 내각은 허수아비, 국회는 들러리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지만, 대통령과 청와대가 중요하다고 결정한 일에 대해선 집권여당이 의원총회를 열고 의원들의 힘을 모은다”고 말했다.

◇대통령을 지키거나 죽이는 ‘타락한 진영의식’

우리나라 대통령은 대선에서 40~50% 안팎의 득표률로 집권을 해도 100%의 권력을 갖는다. 각 진영은 권력을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야권의 정치적 공격은 대통령과 청와대로 집중된다. 수위가 강할수록 지지층의 반응이 좋다. ‘잘하는 것은 잘하는대로, 못하는 것은 못하는 대로’ 비판해선 득점이 어렵다.

청와대도 정치 대신 행정에 중점을 둔다지만 쏟아지는 비판을 감내하기 쉽지 않다. 방어와 역공에 나서지 않는 여당이 얄밉다. 오히려 강성 지지층의 반격이 고맙다. 대통령과 청와대를 두고 오가는 생산적 비판과 합리적 옹호는 설 곳이 없다. 외교·안보·경제·행정 등의 논쟁은 정치적 공방으로 변질된다. 그 과정에서 진보와 보수 양 극단에 매몰된 ‘타락한 진영의식’은 커진다. 한쪽에선 “우리 대통령을 살리자”며 거리에 나서고, 다른 한쪽에선 “대통령을 끌어내리자”고 광장을 채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대통령과 청와대의 권력 독점 행태가 바뀌지 않는 이상 여야의 협치는 불가능하다“며 ”절대 권력을 두고 진보와 보수 두 진영의 극단간 대결은 당파적 이익을 위해 중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본관 주변에 눈이 쌓여있다. 2020.2.16/뉴스1(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본관 주변에 눈이 쌓여있다. 2020.2.16/뉴스1
靑 간판 달고 "정부 수호"…너도나도 금배지 레이스
청와대 간판을 달고 나온 ‘청(靑)돌이’들이 여의도로 향한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70여명이 더불어민주당 공천에 도전했다. 그 중 27명이 ‘청와대 출신’이란 명함을 갖고 금배지 레이스를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등 과거 정권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MB맨’들은 이 전 대통령 임기 종료를 10개월 앞두고 치러진 19대 총선(2012년)에 뛰어들었다. 김희정 전 청와대 대변인, 정문헌 전 통일비서관, 윤진식 전 정책실장 등이 국회에 입성했다.

박 전 대통령 임기 4년차인 2016년에 실시한 20대 총선 역시 친박 코드 청돌이들이 당선됐다. 민정수석 출신인 곽상도 의원과 김선동·주광덕 의원 등 정무비서관 출신도 배지를 달았다.

'병풍' 내각·국회, '권력독식' 靑…타락한 진영의식 버려야 '내 삶' 바꾼다
◇청와대는 금배지용 징검다리?

문재인 청와대의 ‘입’을 담당했던 이들이 앞다퉈 출격했다. 박수현 전 대변인과 고민정 전 대변인은 민주당 후보로 각각 충남 공주 공주·부여·청양과 서울 광진을에 전진 배치됐다.

범여 비례 정당인 열린민주당에는 김의겸 전 대변인이 합류했다. 최강욱 전 공직기강비서관도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다.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윤건영 전 국정상황실장은 서울 구로을에 전략공천됐다.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경기 성남시중원구), 김영배 전 민정비서관(서울 성북구갑), 정태호 전 일자리수석(서울 관악구갑) 등이 경선 문턱을 넘었다.

이들은 출마의 변으로 ‘문재인 정부 성공’을 내걸었다. 국회 입성 이유를 ‘정권 안정’으로 귀결시킨다. 열린민주당은 당규에 ‘비례대표 순위를 정함에 있어서 노무현 정신 계승과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한 정책과제 실현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청와대에서 국정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은 만큼 전문성도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나 본선 진출에 실패한 후보들까지 합치면 경력 ‘1년’을 채우지도 않고 선거에 나선 사람들이 적잖다.

대통령을 보좌해야할 청와대 인사들이 수시로 바뀌면 탄탄한 국정운영이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청와대가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오히려 선거에 휘둘리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관계자는 “청와대 출신들이 총선에 나서려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때까지 열심히 일한 후에 제대로 평가받겠다고 나서야 한다”며 “청와대 인사들이 수시로 선거에 차출되면 도대체 일은 누가하냐”고 지적했다.

◇靑 출신의 입법부행…“진영 갈등 키울수도”

전문가들은 청와대 출신의 여의도행이 ‘진영 갈등’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문재인 정부를 지키겠다”는 출마의 변이 진보와 보수의 첨예한 대립을 일으킬 수 있다는거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열린민주당과 같은 곳에서 진영 논리에 따른 문제점이 불거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검찰 쿠데타와 같은 논리를 갖춘 청와대 출신들이 국회에 들어와 같은 논리를 펼치게 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입법부는 권력을 견제해야 하는데 후보자들이 ‘정부 수호’를 위해 출마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민주주의는 효율성과 일사분란함을 담보하는 제도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 정부 출신 인사들은 옛 운동권 출신이 많고 정치적 의욕이 커 역대 정부보다 총선에 나서는 사람이 많다”며 “만일 청와대를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도구로 삼은 사람들이 있다면 국가에 대한 사명의식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요한 건 국민의 선택”이라며 “국민들이 투표할 때 청와대라는 타이틀 하나로 뽑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2018년 5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대통령 개헌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이날 대통령 개헌안 투표에는 총 114명의 의원이 참석, 의결정족수(192석)에 한참 못미쳤다. 이날 본회의에는 정의당을 제외한 야당 의원들이 불참했고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만 표결에 참여했다. /사진=이동훈 기자2018년 5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대통령 개헌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이날 대통령 개헌안 투표에는 총 114명의 의원이 참석, 의결정족수(192석)에 한참 못미쳤다. 이날 본회의에는 정의당을 제외한 야당 의원들이 불참했고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만 표결에 참여했다. /사진=이동훈 기자
건강한 진영의식 회복해야 '내 삶을 바꾸는 개헌' 성공한다
국가가 사람의 ‘몸’이라면 헌법은 ‘뼈대’다. 몸이 커지면 뼈대도 함께 자란다. 몸은 자라는데 뼈대가 그대로라면 큰 문제다. 대한민국 헌법이 그렇다. 바꿀 때가 한참 지났다.

헌법개정(개헌)은 민주국가 통치 체제의 근간을 바꾸는 작업이다. 시대정신을 비롯해 중요한 가치를 정비하는 절차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 이후 30년이 훨씬 지났지만 개헌은 구호에 머물고 있다. 구호마저 ‘권력 구조’에만 쏠린다.

시대 정신, 가치 등은 뒷전이다. 개헌을 주장하며 가치를 외치는 ‘정치가’는 없다. 눈 앞의 이해관계만 따지는 ‘정치꾼’들이 개헌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는다. 개헌마저 ‘타락한 진영의식’에 물든다.

'병풍' 내각·국회, '권력독식' 靑…타락한 진영의식 버려야 '내 삶' 바꾼다
◇권력 좇는 '이합집산' 정치…정당 '지향점'은 어디에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정당의 이합집산은 개헌 실패의 주범이다. 권력만 좇아 세력을 합치고 당적을 바꾸는 흐름 속 건설적 대화는 없다. 선거에서 이기는 유일한 목표다. 일단 이기는 게 먼저다.

가치를 지키는 노력은 사치다. 정당이 지향하는 바를 담은 당헌·당규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유다. 당헌·당규는 각 진영과 정치세력의 가치, 정체성, 협치 등의 내용을 압축해놓은 당의 간판이다.

하지만 각 정당은 당헌·당규를 온라인 홈페이지에 걸어놓은 게 전부다. 선거 승리를 목적으로 당을 쪼개고 붙이는 과정에서 당헌·당규는 짜깁기되며 철저히 훼손된다.

이런 ‘정치꾼’들에게 개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대정신의 반영, 가치의 진화 등을 고민하지 않는다. ‘국면 전환용’ ‘정략적’ 등의 수식어만 붙는다.

집권 막바지 대통령이 국정 장악력이 떨어질 때 쯤 개헌 이슈를 들고 나오고 차기 대선 주자들은 “내가 대통령이 되면 하겠다”고 반대하는 그림은 익숙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은 모두 집권 후반기에 개헌 논의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당시 야당과 유력 대선후보가 반대해 진척은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10월 24일 대한민국 국회 시정연설에서 개헌을 언급했다. 정부 출범 전 본인이 개헌을 공약했고 19대와 20대 국회를 거치며 여야를 막론하고 개헌 요구가 나왔다. 그러나 집권하고 나선 모른체 했다.

2017년 4월 대선 전에는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3당이 자체 개헌안을 내놨다. 대선을 전후로 ‘반(反) 문재인’ 전선 구축을 통한 정국 주도권 확보를 위해서다. 또 대선 이후 예상되는 정계개편 속에서 소수당들의 생존 전략도 맞물렸다. 당시 유력 차기 주자 문재인 후보를 둔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전 개헌에 반대했다.

◇개헌 논의의 또 다른 '블랙홀'…권력구조 개편

진보와 보수 양 극단에서 ‘타락한 진영의식’을 키우는 정치꾼들의 행태는 당이라는 옷만 갈아 입었을 뿐 되풀이됐다. 집권여당에 속했을 땐 대통령 등 살아있는 권력을 지키고 야당에 있을 땐 분권을 강조하며 권력구조 개편에만 목매는 쳇바퀴 논의만 한다. 각 진영의 열성 지지자들은 이들에게 힘을 보탠다.

정치인들의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한 고민은 사라진다. 국민의 기본권 확대 등 정작 필요한 주제는 아예 테이블에 오르지 못한다. 권력 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개헌 논의 자체가 정치 공세의 카드로 이용된다. 개헌 논의 안에 권력구조 개편이라는 또 다른 ‘블랙홀’이 있는 셈이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촛불정국을 거쳤지만 민주주의의 위기가 오히려 연장되는 되는 경향이 있다”며 “분권 논의는 사라지고 청와대의 힘이 더 세지고 권위주의화 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개헌이 무조건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자세를 버려야한다”며 “정치리더들이 국민 삶을 위해 반드시 개헌이 필요하다는 자세로 개헌 논의를 정직하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방향은 '내 삶을 바꾸는 개헌'

‘타락한 진영의식’은 극단과 이분법을 강요한다. 다양성과 공존을 꺼린다. 다층적·다면적 현안과 가치를 합리적으로 논의할 토대조차 없다. 눈 앞의 이익만 쫓는다.

반면 지더라도 가치를 지키는 노력이 건강한 진영의식을 키운다. 극단의 세력이 아닌 대의를 꿈꾸는 정치가를 만든다. 승패가 아닌 가치가 중심에 놓인다.

개헌에 대한 접근도 마찬가지다. 국민 삶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공허하지 않고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 개헌 논의는 중장기 과제에 대한 공감 형성의 과정이다. ‘양극화’는 ‘경제민주화’로, ‘사회안전망 부재’는 ‘복지확대’ 등으로 논의를 확장해 건설적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 소수자 인권, 인간과 함께 살고 있는 동물, 인공지능(AI), 젠더 등 진지한 논의를 통해 만들어야 할 뼈대가 적잖다.

권력 구조 개편 등에 매몰되기보다 민주주의, 인간의 기본권, 생존권, 환경권 등 새 시대에 맞는 논의를 정치권이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정치 분야로 좁히더라도 권력구조 개편 외에 선거제도 개혁, 지방분권, 대의제를 견제하는 직접민주주의 등 개헌에 반영돼야 한다고 평가받는 다양한 현안이 있다.

20대 국회에서 4차 산업혁명 특별위원회 위원장과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를 지낸 김성식 무소속 의원은 “분권, 협치 등 정치구조개혁 말고도 우리 사회의 상생을 위한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며 “국회가 그 과정에서 ‘끼리끼리’ 문화를 버리고 다양성을 어떻게 담보할거냐는 정치적인 판단의 문제가 숙제다. 그 기준엔 미래세대에 대한 고민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병풍' 내각·국회, '권력독식' 靑…타락한 진영의식 버려야 '내 삶' 바꾼다
20대 국회 개헌특위 첫발…선거 득실 따지다 '제자리'
2016년 출범한 20대 국회의 사명 중 하나는 헌법개정(개헌)이었다. 이듬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개헌 논의에 불이 붙었다.
당시 ‘기본권’과 ‘지방분권’에 방점이 찍혔다. 국민을 닮은, 국민의 요구를 반영한 헌법을 만들자는 게 골자였다.

정치권은 거꾸로 행동했다. 기본권 대신에 권력 구조를, 국민 대신 선거 셈법을 먼저 생각했다. 87년 체제를 벗어나는 게 ‘개헌’인데 정치권은 여전히 ‘87년 체제’에 머물며 달라진 대한민국을 외면했다.

국회가 손 놓고 직무유기를 한 것은 아니다. 2017년 1월, 국회는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를 발족하며 발걸음을 뗐다. ‘국정농단’ ‘탄핵’ 이후 대한민국의 ‘뼈대’를 만들 필요성이 높았다.

국회는 권력이 집중된 ‘승자독식’ 구조가 진영 갈등을 유발한다고 봤다. 모든 권한이 대통령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자기 진영의 목표를 위해 밀어붙이는 걸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해 5월 문 대통령이 2018년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 투표를 하자는 후보 시절 공약을 수면 위로 올렸다. 국회 개헌특위도 발맞춰 개헌 로드맵을 마련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87년 체제’를 마무리하고 다음 세대로 나가기 위해 정치권은 시대정신과 가치를 논해야 했는데 논의는 진척되지 못했다. 분출하는 개헌 요구에도 정작 잡히는 것은 없었다.

한해동안 권력구조 개편 이슈에만 매몰된 탓이다. 국회 개헌특위는 여야간 정쟁의 장(場)으로 전락했다. 여당은 4년 중임제를, 야권은 분권형 대통령제만 주장하며 눈 앞의 득실만 따졌다. 개헌 투표가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 등을 계산하는 여야 셈법도 마찬가지였다.

여당은 ‘6월 지방선거 동시개헌’ 입장을 고수했고 야당은 6월 투표 반대로 맞섰다. 기본권 등 가치에 대한 논의는 사장됐다. 타락한 진영 논리를 깨기 위해 머리를 맞댔지만, 결국 같은 이유 때문에 실패했다
.
‘공약 이행’ 명분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3월, ‘대통령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국회로 보냈다. 하지만 국회는 ‘대통령 개헌안’을 펼쳐보지도 않았다.

국회 개헌특위안에 담아보려는 시도조차 없었다. 방송법 처리, 드루킹 특검 등을 놓고 싸우느라 정신없었다. 야당이 장외투쟁을 시작한 시점도 이 때다.

결국 6·13 지방선거와 헌법개정 동시투표의 전제조건으로 처리돼야 하는 국민투표법이 시한을 넘겼다. ‘대통령 개헌안’도 최종 폐기됐다.

지난해 11월, 문 대통령이 여야 5당 대표 초청 만찬에서 개헌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 번 피력했지만 키를 쥐고 있는 국회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2년 전 지방선거가 2020년 21대 총선으로 변했을 뿐 상황은 같다.

여야가 선거제도 개편에 촉각을 세우면서 개헌 논의는 다시 블랙홀 너머로 사라졌다. 21대 국회의 최우선 과제로 개헌이 꼽히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대의를 지향하기보다 소탐만 꾀하는 정치권의 현실 때문이다. 눈 앞의 승리, 이익만 위해 ‘꼼수’ ‘편법’을 당연하게 구사하는 이들이 가치와 시대정신을 담는 개헌을 논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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