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

최재욱 기자 ize 기자 2020.03.2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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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메시지와 장르적 재미로 호평 이어져

사진제공=SBS사진제공=SBS


‘어른’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 자라서 자기 말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말에 책임을 완벽히 지며 사는 ‘어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많지가 않다. 정글 같은 무한경쟁 사회에서 생존하느라 바빠 말과 행동이 상황에 따라 쉽게 바뀌고 남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예전에는 ‘어른’을 넘어서 인생의 길잡이가 돼줄 ‘좋은 어른’이 주변에 분명히 있었는데 요즘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성인남녀들이 자기 살기 바빠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의지조차도 없다.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방송 중인 SBS 월화드라마 ‘아무도 모른다’(극본 김은향, 연출 이정흠)는 미스터리 수사극의 형식을 빌려 우리 시대 좋은 어른의 의미를 묻는 작품. 미스터리 수사물의 쫄깃한 긴장감과 묵직한 메시지가 어우러지면서 뜨거운 반향을 얻고 있다. 성흔연쇄살인사건을 19년 동안 쫓던 차영진 형사(김서형)가 자신을 멘토처럼 따르던 아랫집 소년 고은호(안지호)의 추락사건을 수사하면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이 충격과 안타까움을 선사하고 있다. 왕따, 학교 내 폭력, 성적조작, 사학재단 비리 등 우리 사회 만연한 다양한 문제들을 하나씩 건드리면서 아이들이 고통 받을 때 우리 사회 어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묻는 준엄한 목소리가 시청자들의 양심을 건드리고 있다.



사실 드라마 초반 고은호가 10층 높이 호텔에서 추락했을 때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극중 지역 경찰들처럼 자살시도로 짐작했다. 전혀 어른답지 못한 홀어머니 슬하서 외롭게 자라온 고은호는 나이보다 어른스러운 중학생. 고은호를 7살 때부터 아끼고 챙겨온 ‘영혼의 단짝’ 차영진은 고은호의 성품을 알기에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사고 전날 고은호가 경찰서로 찾아와 평소와 달리 불안해하며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성흔연쇄살인사건’ 진범 수사에 정신이 팔려 그냥 돌려보내는 실수를 했던 것. 차영진은 그때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줬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19년이나 쫓아온 ‘성흔살인사건’ 수사권도 내려놓고 고은호의 추락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수사과정에서 드러나는 어른들의 모습들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이권 싸움에 바쁜 신흥종교 파생 사학재단 관계자들, 아들을 방치하고 감정적으로 학대하는 엄마, 은호를 비극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엄마의 남자친구 등 제대로 정신 박힌 어른들을 찾기 힘들다. 은호가 불우한 환경과 달리 바르게 클 수 있었던 건 본성이 선한 면도 있지만 올곧은 형사 차영진이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해줬기 때문. 감당할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린 고은호의 절박한 이야기를 유일하게 믿고 의지했던 차영진마저 들어주지 않아 비극이 발생했다. 지난 23일 방송된 7회 결말부에 사라졌던 은호의 가방 속 책에 쓰여진 “말할 수 없어요. 하지만 그래도 도와줘요”라는 은호의 절규는 차영진을 절규하게 했고 시청자들도 함께 울었다. 미안함에 머리를 벽에 박으며 소리죽여 울부짖은 김서형의 내면 연기는 '명불허전'이란 표현이 딱 어울린다.



사진제공=SBS사진제공=SBS
사실 어렸을 때는 나이가 들면 무조건 어른이 되는 줄 안다. 나이를 먹으면 자연히 두려움이 없어지고 책임감이 생길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살아보면 그것이 절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나이를 먹어도 두려움은 여전하고 책임감은 저절로 어깨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 수없이 다가오는 인생의 변수 중에서 본인이 선택하고 끊임없이 각성하고 자신을 단련해야 가능해진다. 그냥 ‘어른’도 아닌 ‘좋은 어른’이 된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 ‘아무도 모른다’는 그냥 ‘어른’이었던 차영진이 고은호를 통해 ‘좋은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아무리 자기 살기 바쁜 시대라 하지만 누군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인생의 길잡이가 돼줘야 한다는 메시지를 묵직하게 던지고 있다.

세대 간의 불신이 만연한 시대. 아이들이 마음 속 고민을 어른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발생된 갈수록 지능화된 범죄와 잔인해지고 살벌해지는 학교 현장의 민낯에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어른은 이를 해결해줄 대상이 절대 아니다. 자신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자각할 때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가슴 아픈 현실이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둬야 할 건 ‘인생은 짧다고 하면 짧지만 길다면 길다는 것이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다 안다. 어린 시절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나이를 들수록 더 많은 경험을 할수록 얼마나 자신이 작은 세상 속에 갇혀 모든 걸 판단했는지 깨닫게 된다. 모든 게 다 갇혀 있고 탈출구가 없어 보이지만 눈을 잠시만 돌려보면 더 넓은 세상이 자신의 뒤에 존재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더 넓은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것이 나이가 좀 더 든 어른들이 해야 할 책무다. 그러니 혼자서 두려워하고 힘들어하지 말고 어른들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해결책을 찾아봐야 한다. 주위에 없는 것 같으면 도와줄 사회적 기관이나 단체가 분명히 있다. ‘아무도 모른다’는 말은 어른들의 입장에서 너무나도 서글프다. 말해줘야 어른들도 안다. 도움을 청해야 한다.

‘아무도 모른다’는 이제 중반을 넘어섰다. 호평을 받고 있지만 다소 느린 전개와 복잡한 구성에 답답해하는 시청자들도 존재한다. 다음 주 방송부터 수없이 뿌려진 떡밥이 회수되면서 극의 진행에 가속도가 붙을 거라는 게 제작진의 전언. 각성한 차영진 형사가 은호를 궁지에 몰아넣는 악의 세력을 잡아넣어주기를 열성 시칭저들은 간절히 바라고 잇다. '아무도 모른다'가 제작진의 야심대로 장르적 재미와 묵직한 메시지를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웰메이드 드라마’로 자리잡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재욱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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