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기본소득 10조 넘으면 채권시장 무너진다"

머니투데이 세종=박준식 기자 2020.03.2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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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기획재정부가 정치권에서 요구하는 재난기본소득에 대해 내부적으로 가능성을 검토한 결과 10조원 이상은 재정건전성을 해칠뿐만 아니라 채권시장에도 교란작용을 일으켜 사실상 불가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전 국민에 1인당 100만원, 또는 소득 하위 80%에 50만원을 지급하려면 최소 20조~50조원 규모의 2차 추경 예산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현실을 도외시한 무리한 정치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정부는 1차 추경 예산으로 11조7000억원을 책정한 터라 2차 추경을 통한 재난지원 최대 규모는 10조원 이내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26일 기재부에 따르면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예산실과 경제정책국, 경제구조개혁국, 국고국 등을 통해 최근 정치권에서 요청한 재난기본소득을 시뮬레이션하고 대안 마련에 나섰다.



홍 부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비상경제회의에서 지시한 대로 '전례 없는 특단의 민생 안정 조치'를 현실화하는 방안을 각 부서에 주문했다. 기재부는 이번 주말까지 마련한 대안을 기본 틀로 오는 30일 제3차 비상경제회의 논의를 거쳐 추가 대책을 확정할 방침이다.

"미국처럼 온 국민 무차별 살포는 불가"
[창원=뉴시스] 홍정명 기자=김경수 경남도지사가 19일 도청 프레스센터에서 도내 중위소득 이하 가구 100%에 선별적 긴급재난소득 최대 50만원까지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다.2020.03.19.    hjm@newsis.com[창원=뉴시스] 홍정명 기자=김경수 경남도지사가 19일 도청 프레스센터에서 도내 중위소득 이하 가구 100%에 선별적 긴급재난소득 최대 50만원까지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다.2020.03.19. [email protected]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필두로 시작된 정치권 재난기본소득 주장은 시뮬레이션 결과 재정건전성에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됐다. 전 국민 50만원을 한차례 지급할 경우 약 25조원 재정이 소요된다. 이 경우 국가채무비율이 41.2%(1차 추경 전 39.8%)에서 다시 42.5% 이상으로 1.3%포인트 상승한다.


당국은 국가채무비율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110.5%에 비해서는 낮지만 지난해 37%대에서 1년 만에 5%포인트 급상승하는 것을 경계한다. 절대적인 채무비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악화하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를 경우 국제신용평가사들에 의해 국가신인도 자체가 떨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미국이나 일본은 사실상 국제적, 지역적 경제권의 기축통화국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화폐를 찍어낼 수 있다. 때문에 이런 발권력과 통화 신인도 우위를 바탕으로 이번 코로나19 재난에 무차별 기본소득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자원이 빈곤하고 내수시장이 크지 않은 무역국가인 한국이 세계통화가 아닌 원화를 적자국채로 융통할 경우 국가신용등급에 쇼크가 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2차 추경 10조 넘으면 채권시장 교란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관련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관련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정부는 대규모 적자국채 발행이 취약한 채권시장을 자칫 스스로 무너뜨리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1차 추경 전까지 한국 정부가 예상한 올해 국고채 발행물량은 130조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1차 추경(11조7000억원)이 세입경정을 줄이고 세출경정을 늘리는 방식으로 마련되면서 적자발행 규모는 순수히 10조3000억원 늘어 총 140조원이 됐다. 세입을 늘리고, 세출을 줄일 나라재정이 여의치 않자 미래부담만 늘린 빚으로 추경을 충당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재난기본소득으로 무차별 현금살포가 확정된다면 이를 위한 자금조달방안은 오로지 국채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1차 추경으로 국고채 발행물량이 140조원으로 늘어났는데 이중에서 차환 물량은 60조원 수준이고, 약 81조원이 순증한다. 여기에 20조~50조원이 부가되는 것은 말 그래도 민간기업들이 의지해야 할 채권시장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채권 투자자산 수요는 코로나 쇼크로 극도로 보수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안전자산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미국 국채는 물론 금값마저 떨어지면서 공포심이 지배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1, 2차 추경으로 30조원 가량 국고채 순증 물량이 쏟아지면 투자자들이 국채를 사기 위해 일반 회사채를 외면하는 상황이 빚어진다. 최근 채권시장안정펀드 20조원 조성을 발표해 기껏 눌러놓은 불안 심리가 다시 증폭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건보 등 하위 30% 가입자 감면…일자리 안정자금 지원

임종철 디자이너 / 사진=임종철 디자이너임종철 디자이너 /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기재부는 이런 맥락에서 전 국민 기본소득보다는 코로나19 피해의 전면에 있는 소득하위 계층에 대한 선별적 지원을 구상하고 있다. 일단 건강보험과 고용보험, 산재보험료 납부 기준 하위 30% 가입자들에게 석 달 간 보험료 50%를 면제하는 방안이 논의된다. 이 경우 재정 소요는 약 3000억원으로, 상대적으로 국가 재정건전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저소득층 지원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다. 당국은 이 지원을 하위 50%로 늘린다고 해도 재정 소요는 기존 두 배인 6000억원 안팎에 머물 것으로 예상한다.

기재부는 흑자도산 기업이 나오지 않도록 고용유지 지원금을 최대한 확충해 중견중소기업뿐 아니라 일부 대기업 항공사 등 피해 취약업종 급여생활자까지 지원하는 방안 등을 고민하고 있다.

또 코로나19 피해 직격탄을 맞은 화물차 운전수 등 특정 계층 임금근로자들이나 특정 산업 업종 종사자들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일시적으로 고용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이 감염병 사태가 극복될 때까지 생계를 유지하도록 산업재해 보험에 가입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특별고용 노동자로 지정하는 방안이다. 여기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원이 겹치는 중복 지원을 막기 위해 지자체에서 받은 재난기본소득이 있다면 2차 추경에서 준비한 취약층 소비쿠폰 등을 배제하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안도걸 기재부 예산총괄심의관은 이날 방송에 출연해 "실직한 이들에게는 긴급복지제도를 활용해 4인 가구 기준 월 123만원 생계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며 "신속하게 직종 전환하게 하는 직업훈련 프로그램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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