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일 앵커에서 하차한다고 밝힌 손석희 JTBC 대표이사. /사진=JTBC 화면 캡처
최근 성 착취물 유포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씨가 흥신소 사장을 사칭해 “프리랜서 기자 김웅 씨가 (손 사장) 가족을 해치라고 내게 돈을 줬다”며 손 사장에게 똑같이 금품을 요구했을 때, 손 사장은 경찰에 도움을 구하지 않고 조씨 요구에 응했다.
조씨는 손 사장의 교통사고 ‘뺑소니 영상’이 있는 것처럼 속여 김씨를 상대로 지난해 1500만원을 뜯어냈다. 뺑소니 의혹 사건에 휘말리기 싫고 가족의 불안을 떨쳐내고 싶어 손 사장이 경찰보다 입금을 더 손쉬운 방법으로 선택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JTBC도 ①손 사장은 ‘태블릿 PC’ 보도 이후 지속적인 테러 위협을 받아 늘 민감했다 ②위해를 가하려는 김씨가 아니더라도 조씨가 다른 행동책을 찾을 가능성이 있어 신고를 미뤘다를 입금의 주요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의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36년 언론 생활 동안 손 사장은 어떤 테러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대쪽’이나 ‘지조’의 태도를 간직해 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점을 높이 평가해 왔기에 이런 문제에서도 ‘당당하고 상식적’인 길을 손 사장이 걸을 것이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조씨의 협박이 테러 위협이라면, 그간 손 사장은 수많은 테러 위협에 ‘입금’으로 대처했다는 뜻일까. 정교하고 치밀하게 조작된 텔레그램 내용 때문에(JTBC 해명) 쉽게 거부할 수 없었다면 보이스피싱에도 손 사장은 가장 손쉬운 먹잇감의 주인공이 되기 쉽다는 뜻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의구심은 여기서 출발한다. ‘손 사장도 당했다’는 공감이 아니라 ‘손 사장만은 안 당한다’는 절대적 신뢰가 큰 까닭에 사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이고 설득력있는 사연이 동반되지 않고선 의구심은 쉽게 지울 수 없다.
경찰에 신고하는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과정 대신 협박 요구에 끌려다니는 사연을 ‘설득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불의와 맞서 싸우는’ 수호신 역할을 자처해온 그의 지난 경력의 각인된 이미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카메라 앞에서 당당한 멘트로 감동마저 안겨준 그가 카메라 뒤에서 허술한 듯한 대처를 보여주는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은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손석희 JTBC 사장에게 불법 취업 청탁과 금품 요구 등 공갈미수 혐의를 받고 있는 김웅 프리랜서 기자가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
손 사장은 사고가 난 날 합의금으로 150만원을 입금했다. 하지만 교통사고가 날 때 경찰에 신고하거나 보험사에 연락하거나 하는 일반인의 상식적인 절차는 이 상황에서 하나도 엿보이지 않았다.
입금으로 합의하는 방식이 비상식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과정이 ‘필연적’이거나 ‘설득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2010년에도 손 사장은 오토바이 접촉 사고를 내며 비슷한 상황을 연출했다. 오토바이 피해자는 사고수습 없이 질주한 손 사장 차를 쫓아가 신호등 앞에서 차를 멈춰 세웠다. 당시 피해자는 “젊은 여성 동승자를 봤다”고 주장했다.
손 사장은 그날 합의금 30만원을 입금했다. 지난해 이 사건이 알려지자 손 사장 변호인 측은 “공소시효가 지난 일은 답변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교통사고 2건은 모두 ‘뺑소니’처럼 질주하다 막다른 골목에서 피해자와 입금 합의로 무마됐다. 그 과정은 어떤 드라마보다 흥미롭다. 조주빈씨의 협박 과정에서 돈을 건넨 과정은 일반인 입장에선 수긍이 가면서도 ‘손석희’ 입장에선 허술하다.
정치인보다 더 유명하고 영향력이 큰 그가 투명한 절차 대신 뒷거래에 빠진 필연적 배경이 여전히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