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서버·연락처도 모르는데…텔레그램 또다른 n번방 나오면

머니투데이 오상헌 기자 2020.03.2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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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n번방’ 사건을 계기로 해외 플랫폼 사업자 규제 문제가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n번방’ 사건 가담자 신상 확보와 추가 범죄 수사를 위해선 텔레그램의 적극적인 협조가 절실하지만 여의치 않다.



텔레그램은 카카오톡, 페이스북 메신저에 이어 이용자 수가 많을 정도로 국내에서 많이 쓰는 메신저인데도 정작 국내 지사도 협력사도 없다. 심지어 서버가 있는 본사 위치나 연락처도 파악할 수 없다. 사법당국도 회사 공식 이메일로 겨우 협조를 요청하는 상황이다. 미성년자 성착취물 유포 차단 등은 분초를 다툴 사안이다. 이쯤되면 ‘공권력 사각지대’나 다름없는 셈이다.

방통위원장 “텔레그램 간접규제도 어려워”
텔레그램 성착취 대화방 운영자 조주빈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0325 / 사진=김창현 기자 chmt@텔레그램 성착취 대화방 운영자 조주빈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0325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몰카·음란물 등 불법 인터넷 콘텐츠 대응 정책을 맡는 규제기관도 곤욕스럽긴 마찬가지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 25일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n번벙’ 긴급 현안점검 회의에서 “텔레그램은 사업자 연락처도 없고 단지 공개된 이메일을 통해 불법 영상물 삭제를 요청할 정도”라며 “국내에서 수익을 내는 것도 아니어서 간접 규제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정부는 개인정보 침해사고 등 국민 권리 보호를 위해 정보통신망법을 개정해 지난해 3월부터 국내 대리인 지정 제도를 의무화했다.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해외 사업자들이 대상이다. 대리인을 통해 신속하게 우리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게 목적이다. 미성년자 성착취물의 경우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론 △전년도 전체 매출(국내외) 1조원 이상 △정보통신서비스 전년 매출 100억 원 이상 △전년말 기준 직전 3개월 간 개인정보 저장·관리 이용자수 일평균 100만명 이상 △개인정보 침해사건 발생 혹은 발생 가능성이 있어 방통위가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경우 등 한 가지라도 해당하면 대상기업이 된다.


하지만 지난해 3월부터 9월까지 국내 대리인을 지정한 해외 사업자는 국내 법인이 있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13곳에 그쳤다. 텔레그램은 리스트에 빠져 있다. 매출과 이용자 수 등이 모두 베일에 가려 있어서다. 설령 텔레그램이 대상에 오르더라도 실제 국내 대리인을 지정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강제할 수단도 마땅찮다. 국내 대리인을 지정해야 할 해외 사업자가 이를 위반해도 횟수와 상관없이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만 물면 된다. 이마저 추징 대상이 모호하다.

규제 입법 실효성 있으려면 ‘집행력 확보’ 관건

국내 인터넷 사업자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n번방’ 사태를 계기로 국내 사업자 규제 수위만 높이고 해외 사업자엔 여전히 손을 못 쓰는 일이 반복될 수 있어서다. 전날 국회 과방위에서 방통위가 발표한 n번방 대책이 그랬다. 불법음란물의 2차 유통 피해를 막기 위해 웹하드 사업자에 대한 과태료를 최대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올리고 과징금 제도를 신설하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수사나 규제망을 피해 몰카나 성착취물 등 불법 영상물 범죄의 경우 텔레그램을 비롯해 익명성을 보장하는 해외 서비스로 활동 무대를 옮긴 지 오래”라며 “해외 플랫폼 사업자들에 대한 사법적·행정적 집행력을 어떻게 강화하느냐에 대책의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텔레그램에 대한 수사가 좁혀오자 음란물 범죄자들이 디스코드, 위커 등 다른 메신저로 빠르게 거점을 옮기고 있다. IT 전문가들 사이에선 몰카, 성착취물 등 해외 서비스 통한 민감한 사이버 범죄의 경우, 신속한 피해 확산 방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해당 영상 신고 시 해당 서비스에 한해 즉각적이고 광범위한 임시 차단 정책을 통해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물론 서비스 이용자들의 권리에 비해 피해자들의 권리 침해가 심각한 경우에 한해서다.

국회 과방위 소속 신용현 미래통합당 의원도 "해외 사업자가 아동‧청소년 음란물 등의 유통 방지 대책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국내 접속 차단 등의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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