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감형 절대 안 된다" 1만7000 시민의 요구

뉴스1 제공 2020.03.2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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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화난사람들' 김영미 변호사 "국민-법조인 인식차 너무 커"
"디지털 성범죄, 강간 비해 훨씬 가벼운 죄란 인식 바뀌어야"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캠페인을 진행 중인 김영미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가 2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법무법인 숭인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News1 유승관 기자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캠페인을 진행 중인 김영미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가 2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법무법인 숭인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News1 유승관 기자


(서울=뉴스1) 손인해 기자 =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서 감경사유는 '절대 없음'."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정한 양형기준이 아니다. 공동소송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는 '화난 사람들'이 '진짜 국민의 목소리'를 들려주자며 취합 중인 국민 의견서의 한 사례다. 피해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나락으로 빠뜨리는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관행을 깨고자 하는 이들이 뭉쳤다. 26일 기준 참여한 이들은 1만7000여명. 이른바 'n번방' 사건이 터지면서 관심도 커졌다.

캠페인을 진행하는 김영미 변호사(46·사법연수원 39기)는 가장 기억에 남는 국민 의견으로 '감경사유 절대 없음'을 꼽았다.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는 의견서가 양형위 결정에 영향을 미칠지를 묻는 말엔 "법조인의 생각과 갭(gap)이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국민 생각이 이렇다는 걸 허심탄회하게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라면서도 "무시하진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달 말까지 모인 국민 의견은 양형위에 직접 전달된다.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을 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 양형위는 다음 달 전체회의에서 아동청소년 대상 음란물 범죄의 적정 형량을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법무법인 숭인 사무실에서 김 변호사를 만났다.

- 캠페인을 시작한 이유가 궁금하다.



▶ 작년 여름 양형위에서 개최하는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관련 토론회 발제를 맡았다. 토론회 이후 양형위가 여성가족부나 한국여성변호사회, 그리고 여러 여성단체로부터 양형기준 가중·감경사유에 관한 의견서를 받는 걸 지켜봤다. '왜 꼭 법조인이나 전문가들한테만 의견을 받아야 하나?' 피해자나 일반 국민 목소리를 반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내용의 인터뷰를 했고, 이를 본 '화난 사람들' 최초롱 대표가 "그럼 우리 같이 국민의견을 모아보자"고 해서 시작하게 됐다.

- 어떤 의견들이 모였나.

▶가중사유는 예시로 든 걸 많이 쓰지만 감경사유는 의외로 '절대 없음'이다. 피해 경험자로 추정되는 이들도 있다. 20명에 1명꼴 정도다. 이들의 의견을 보면서는 거의 협박을 통해 영상을 받고 유포한 부분이 많았다는 점을 느꼈다.


- 양형 기준은 왜 필요한가?

▶ 판사들이 똑같은 사안을 접했을 때 받아들이는 감수성에 따라 형이 들쑥날쑥하다. 어떤 판사를 만났느냐에 따라 결과가 복불복인 거다. 양형기준이 있다고 해도 판사에 따라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 갭이 크진 않다. 양형기준이란 무조건 몇 년 형이 아니라 어느 범위 안에서 하라는 건데, 이게 없다면 재량 폭이 넓어질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 양형위 논의에 영향이 있을까.

▶ 무시하진 못할 거다. 지금 모은 1만7000명 의견은 통계를 낼 수 없다. 설문조사 기관에서 전화 돌린 게 아니라 각자 본인의 의견을 밝혀달라고 했기 때문에 짧게는 1줄에서 길게는 5~6줄의 의견을 주셨다. 한 분 한 분 의견을 한 장씩 출력해서 양형위에 보낼 계획이다. 다만 공통된 의견들을 모아 대표 의견서는 작성하려고 한다.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캠페인을 진행 중인 김영미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가 2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법무법인 숭인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 News1 유승관 기자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캠페인을 진행 중인 김영미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가 2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법무법인 숭인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 News1 유승관 기자
- 외국과 비교해 처벌 수위가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 법정형 자체는 낮지 않다. 문제는 경합범 가중방식이다. 가장 중한죄의 2분의 1밖에 가중을 못 한다. 아무리 많은 죄를 저질러도 상한이 있기 때문에 형량이 높아지긴 하지만 한계가 있다. 미국은 각 죄마다 플러스다. 무한정 더해진다.

또 판사도 사람이다 보니 선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거라 생각한다. 대부분 피고인은 판사 앞에서 뉘우치고 울고, 너무너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판사가 인신을 구속하는 것에 대해 크게 생각하고, '너무 장기적으로 구금상태에 놓이면 이 사람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힘들지 않나'란 마음에 양형 자체가 낮을 수 있다. 성폭력이나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제작·배포죄 형만 낮은 게 아니라 사기나 강도, 절도, 강간 등 모든 형이 다 낮다.

- 최근 양형위에서 판사들을 대상으로 아청법 11조 관련 적절한 양형이 얼마인지 묻는 설문조사에서 선택지로 제시된 형량이 지나치게 낮다는 보도가 나왔다.


▶ 형량을 너무 세분화하고 낮게 잡았다. 선택지가 최대 형량을 체크할 수 없게끔 돼 있다. 이렇게 되면 설문에 응하는 판사들 입장에서 기본적으로 '이 죄는 그렇게 높지 않은 형을 선고해도 되는 죄인가 보다'라는 인식과 편견을 갖게 한다. 기본적으로 감수성이 없는 분들이 설문지를 작성했다고 생각한다. 또 법원 자체가 음란물에 대한 인식이 강간이나 강제추행에 비해 가볍게 보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 양형위 논의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 먼저 디지털 성범죄가 어떤 범죄인지 아는 게 필요하다. 강간이나 성 착취와 같은 직접 가해는 아니지만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은 이에 못지않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는다. 유포되면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죄마다 경중이 있지만 강간에 비해서 훨씬 가벼운 죄라는 인식을 일단 바꿀 필요가 있다.

적어도 유포가 된 경우에는 지금보다 형량을 확 높일 필요가 있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음란물을 제작하는 행위 역시 국가가 청소년의 성을 보호해야 할 의무도 있기 때문에 이런 범죄는 엄단해야 한다. 법정형은 아동·청소년 대상 음란물 제작이 5년 이상 징역으로 강간 못지않다. 아청법상 미성년자에 대한 간음이 5년 이상이다. 그런데 정작 판결 내리는 판사님들 인식은 다르다는 거다. 그 인식이 바뀔 수 있게끔 확실한 양형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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