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생산에 삼성 노하우를"…숨통 틔운 민관협력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0.03.24 17:11
글자크기
삼성전자 제조·설비 전문가팀이 국내 마스크 제조업체에서 제조공정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뉴스룸 유튜브삼성전자 제조·설비 전문가팀이 국내 마스크 제조업체에서 제조공정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뉴스룸 유튜브


"다음주부터 화진산업으로 출근해 제조공정 개선을 지원하세요."

삼성전자 25년차 제조·설비 전문가 김형오씨는 지난달 생각지 못한 업무 지시를 받았다. 그는 협력사도 아닌 업체에 공정 컨설팅을 하라는 얘기에 의아했지만 이 업체가 마스크 제조사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김씨가 파견된 뒤 삼성의 '족집게 과외'를 받은 화진산업의 마스크 생산량은 하루 8만개에서 12만개로 뛰었다. 설비가동 효율도 50%에서 90%로 높아졌다.

삼성전자는 이달 들어 또다른 마스크 제조업체 E&W와 에버그린, 레스텍에도 30여명의 삼성전자 제조·설비 전문가를 파견했다.



레스텍에선 마스크 생산에 필요한 금형이 마모돼 생산 차질이 빚어지자 삼성 전문가들이 금형을 직접 제작해 제공했다. 해외에 금형을 발주하면 최소 한달이 걸리지만 삼성전자 정밀금형개발센터에서 작업을 하면서 7일만에 제작해냈다. 신규설비를 들여놓고도 설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E&W에서도 삼성전자 전문가들이 이를 도왔다.

삼성전자 제조·설비 전문가팀이 국내 마스크 제조업체에서 제조공정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뉴스룸 유튜브삼성전자 제조·설비 전문가팀이 국내 마스크 제조업체에서 제조공정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뉴스룸 유튜브
30여명의 삼성전자 전문가들이 꼬박 열흘 동안 이들 업체에 상주하면서 세 업체의 마스크 하루 생산량은 71만개에서 108만개로 늘었다.

박나원 레스텍 공장장은 "삼성전자 (80,800원 ▲1,000 +1.25%)에서 주말까지 나와서 (공정을) 개선해주고 이런 건 정말 처음 봤다"며 "작업 동선에서 생산량까지 모든 것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업체 선정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중소벤처기업부와 손을 잡았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중앙회가 업체를 추천하고 삼성전자가 제조·설비 전문가를 투입했다. 정부와 삼성의 민관 협력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라는 위기국면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삼성은 지난주 마스크 핵심 원재료인 마스크 필터용 부직포(멜트블로운)를 수입하는 과정에서도 정부와 발을 맞췄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달부터 33개국 113개 부직포 제조업체를 조사, 국내 규격에 맞는 제품 3종을 발굴했지만 정부가 수입할 경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난관에 부딪혔다.

산업부가 삼성에 협력을 요청했고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160,100원 ▲2,400 +1.52%)이 원료 구입을 대행해 정부에 넘겼다. 이렇게 확보한 부직포가 52톤, 최대 2500만개의 마스크를 만들 수 있는 물량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나서면서 계약부터 수입까지 통상 6개월 이상이 걸리는 기간이 한달 안으로 줄었다"고 전했다. 삼성은 이미 확보한 부직포 53톤 외에 추가 물량을 확보하는 데도 산업부와 협력키로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3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을 방문, 임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3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을 방문, 임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은 마스크 기부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해외법인을 통해 확보한 마스크 28만개와 거래처로부터 기증받은 5만개를 대구·경북 지역에 기부했다. 마스크는 삼성이 한번도 거래해 본 적이 없는 품목이지만 전세계에 퍼져 있는 해외법인에서 현지 유통업체를 수소문하면서 고국에 보낼 물량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은 코로나19 사태가 국가적인 위기로 확산되면서 지난달부터 전방위적인 지원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지난달 초엔 협력사를 대상으로 1조원 규모의 운영자금 지원 펀드와 1조6000억원 규모의 물품대금 조기 지급 등 2조6000억원 규모의 긴급 지원방안을 발표했고 내수시장 활성화를 위해 온누리상품권 300억원 어치를 구입해 협력사에 지급했다.

피해지원을 위해 구호물품과 성금 300억원도 긴급 지원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대구·경북 지역에서 병상 부족 우려가 나오자 영덕 연수원을 '생활치료센터'로 제공하고 의료진도 파견했다.

재계에선 일련의 지원책 바탕엔 선대 회장의 '사업보국' 경영철학을 계승해 기업으로 나라에 보탬이 되겠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책임경영 의지가 깔려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호암 32주기 추도식에서 사장단과 오찬을 함께 하며 "선대회장의 사업보국 이념을 기려 우리 사회와 나라에 보탬이 되도록 하자"고 말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