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폭등의 주역…삼성·한투·미래 ELS

머니투데이 안재용 기자, 박준식 기자 2020.03.2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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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경제]코로나19 공포→ELS 파생상품 스텝다운→한투 등 1조 ELS 마진콜→달러 현금 증거금 부족→환전 수요→환율 급등→한국은행 한미통화스와프→한은 공개시장 조작까지

사진=김현정디자인기자사진=김현정디자인기자


# 1. 2018년 8월 증권가는 술렁였다. 한국투자증권 반기보고서에 K 차장이 6개월 간 보수로 급여 1억1100만원, 상여 21억1900만원 등 총 22억여원을 받은 소식 때문이었다. 당시 37살이던 K 차장은 김남구 한투 회장보다 9억원을 더 받았다.



2019년 초 업계는 다시 요동쳤다. K 차장이 미래에셋대우로 이적을 결심한 것이다. 퀀트(계량분석) 전문가인 그는 주가연계증권(ELS)과 파생결합증권(DLS)을 설계하고, 국내 증권사 자체 헤지 트레이딩 역량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설계한 인물이다.

# 2. K 차장 같은 스타들을 배출한 증시 활황은 가고 전 세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코로나19라는 '블랙스완(예기치 않은 대형악재)'을 맞았다. K 차장으로 대변되는 스타를 대형 증권사들은 수십억원 연봉을 주며 뺏고 뺏어왔지만 이젠 상황이 반대로 바뀌었다.



코스피200과 S&P, 유로스탁스50 등을 기초자산으로 사용하는 파생상품을 운용하는 대형 증권사들은 속수무책 신세가 됐다.

삼성증권이 약 7조원, 한투가 5조원, 미래가 3조원 규모로 자체 헤지 물량을 운용하고 있는데 해외 지수가 사실상 박살이 나면서 단기 유동성 위기가 빚어진 것이다. 증거금 보충(마진콜)을 위해 사당 크게는 1조원 가량을 달러로 조달해야 하게 된 이들은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을 폭등시킨 주역(?)으로 지목받는다.

24일 하이투자증권에 따르면 삼성증권 ELS·DLS 자체헤지 규모는 7조2040억원(발행잔액 9조60억원)에 달한다. 해당증권 발행잔액이 1조원이 넘는 한투와 미래에셋대우 자체헤지 규모는 각각 5조6060억원, 3조5420억원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발 유럽증시 폭락…ELS·DLS에 닥친 어두운 그림자
/자료=하이투자증권/자료=하이투자증권
높은 자체헤지 비중에 해당 증권사들은 한동안 높은 수익률을 누렸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확산되며 기쁨은 악몽이 됐다. ELS·DLS 등 파생상품의 주요 기초자산으로 활용되는 유로스탁스50 지수는 지난달 20일 3867.28에서 전일 2485.54로 22거래일만에 35.7%가 폭락했다. 시장참가자들이 예상하지 못한 블랙스완이 닥친 것이다.

기초자산(유로스탁스50) 급락으로 손실구간인 녹인배리어(손실 기준선)가 가까워졌고 해외 거래소들은 증권사에 더 많은 증거금을 요구(마진콜)했다. 일각에서는 자체헤지 규모가 큰 빅3(삼성·한투·미래대우) 증권사에 하루 1조원 규모 마진콜이 들어온 것으로 추정했다. 증권사가 증거금을 지불하지 못하면 해당 상품은 소위 '깡통계좌'가 된다. 증권사들은 허겁지겁 유동성 확보에 나섰다.

"달러만 받아요" CP·회사채 단기자금시장 '불똥'
한국투자증권 CI / 사진제공=한국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 CI / 사진제공=한국투자증권
증권사들의 유동성 확보에 나서자 기업어음(CP)과 회사채 등 단기자금시장에 불똥이 튀었다. 과거에는 미국 국채 등 현금성 자산으로 증거금 납부가 가능했으나 유로시장에서는 달러 현금만을 요구한 것이 더 큰 부담이 됐다. 원화 자산은 물론이고 미국 국채도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요구가 달러 현물 수요를 폭발시킨 것이다. 보유하고 있던 달러만으로 증거금 납입이 태부족해진 증권사들은 단기자금시장에서 닥치는 대로 자산을 매각했다.

국내 빅3는 보유하던 CP와 회사채를 던지기 시작했고, 시장에서 공급물량이 폭탄처럼 나타나자 거래 가격이 급락해 단기금리는 급등했다. 시장 자체가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효과는 증권사발 대규모 매물이 쏟아지며 무용지물이 됐다. 빅3가 달러를 구한다는 소문이 시장에 돌며 자금경색설이 퍼졌고, 투자자들은 증권사가 발행하는 CP와 회사채를 외면했다.

단기사채 발행이 어려워진 증권사들은 보유자산을 내다 팔아야 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이 과정에서 CP를 주요 유동성 확보 수단으로 활용하던 애꿎은 중소중견 기업들이 고통을 겪었다.

증권발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환율 급등
국내 증시가 또 다시 급락 마감한 23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전 거래일 대비 원/달러 환율 20원 오른 1266.5원을 나타내고 있다. / 사진=김창현 기자 chmt@국내 증시가 또 다시 급락 마감한 23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전 거래일 대비 원/달러 환율 20원 오른 1266.5원을 나타내고 있다.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증권사들이 CP와 회사채를 팔아 마련한 현금으로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이기 시작했고 환율이 급등했다.

외국인들이 강한 안전자산 선호현상으로 한국 주식과 국채를 매도한 것에 더해 원화가치 폭락의 큰 원인이 됐다. 1200원선을 중심으로 등락하던 원/달러 환율은 1200원대 후반까지 올랐다. 장중 1296원까지 오르며 1300원선을 위협하기도 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19일 밤 부랴부랴 한미 통화스와프 600억 달러 체결에 나선 것도 이런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은 달러 2차 동맹을 결성했고, 다행히 당국자들 노력으로 한국도 이 네트워크에 외환위기 이후로 다시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태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지난 20일 환율은 한때 스와프 체결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이후엔 다시 고공행진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바로 국내 대형 증권사들이 마진콜을 받아 환전수요를 시장에 내놓던 시기다.

결국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한 정부는 증권사 사장단을 소집했다. 금융위원회는 미래에셋대우,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메리츠종금증권, KTB투자증권, 부국증권 등 6개사와 회동을 갖고 CP시장을 점검하면서 동시에 ELS 마진콜 규모를 정밀하게 파악했다.

한국은행이 23일 공개시장 조작을 통해 시장에 개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RP매입을 통해 증권사에 유동성을 공급해 마진콜 수요를 보충해주기로 한 것이다. 한국은행은 RP매입으로 증권사들의 유동성을 보충해주고, 내달부터는 한미 통화스와프를 통해 확보한 달러와 기존 외환보유고를 활용해 증권사들에게 공개입찰을 붙여 달러를 공급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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