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들이 '당헌·당규'만 지켜도 '타락한 진영의식' 사라진다

머니투데이 특별취재팀= 정진우 이원광 강주헌 김예나 인턴 기자 2020.03.24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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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대한민국4.0'을 열자][3회-종합]'당헌·당규'가 말하는 '건강한 진영의식'

편집자주 대한민국이 맹목과 궤변, 막말 등으로 가득한 '타락한 진영의식'에 갇혀있다. 타락한 진영은 시위와 농성, 폭력 등을 일으키며 생산적 정치를 가로막는다.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타락한 진영을 없애고 '건강한 진영의식'을 회복해 대화와 협상, 타협 등이 가능한 정치를 만들어야한다. 그래야 '대한민국4.0'을 시작할 수 있다.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모습. 국회의원들은 '협치'와 '법치' 등이 담긴 당헌과 당규에 따라 의정활동을 해야 하지만, 거의 지키지 않는다. 민생과 동떨어진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모습. 국회의원들은 '협치'와 '법치' 등이 담긴 당헌과 당규에 따라 의정활동을 해야 하지만, 거의 지키지 않는다. 민생과 동떨어진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민주당 당헌·당규에 계속 보이는 '이 단어', 행동은 안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1955년에 창당한 옛 민주당을 뿌리로 둔다. 올해 65주년을 맞는 민주당은 350페이지에 달하는 ‘강령·당헌·당규’를 갖고 있다.



여기엔 △정치 △자치분권·균형발전 △외교·안보 △통일 △경제 △과학기술 △환경·에너지 △복지 △일자리·노동 △교육 △성평등·사회적 약자·소수자 △문화·예술·체육 △언론·미디어 등 13개 분야 핵심 가치와 윤리규범을 비롯 당의 정체성이 담겼다.

‘강령·당헌·당규’의 맨 앞엔 ‘다양성과 다원성을 반영하는 정치제도 개혁과 의회 내 정당 간 협력의 정치를 지향한다’고 써 있다. 민주당이 가야 할 최우선의 방향이다.



◇‘타락한 진영의식’ 없앨 묘약은 협치

민주당의 강령과 당헌, 당규엔 ‘협치’란 단어가 넘친다. 비교적 역사가 짧은 군소 정당들이 핵심 가치와 조직의 구성과 운영, 당원의 기본권 보장 등 자기 목소리에 집중하는 것과 비교하면 ‘진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65년 전 창당 후 선거 때마다 집권에 도전해온 정당의 고민이 느껴진다. 대의민주제의 운영 원리를 이해하고 각 진영과 세력을 대표하는 정당 간 대화와 합의를 추구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실천 단계로 오면 물음표가 붙는다. 민주당은 지난해말과 올해초 이른바 ‘4+1 협의체’(민주당(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를 가동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안 등을 처리했다.

당시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과반 표결 전략이었다. ‘작은 협치’란 시각이 없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절반의 포기이기도 했다. 한국당은 선거법 개정안에 사실상 ‘불복’ 입장을 내세우며 ‘위성 정당’ 전략으로 맞섰다. 민주당도 ‘꼼수’에 빨려 들어가며 선거법 취지는 사라졌다. 지난 1년 치열하게 싸웠던 이유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협치를 토대로 한 결과는 괴물이 돼 우리 삶을 짓누른다.

민주당이 그토록 강조하는 협치는 당원과 지지자, 더 나아가 국민과의 ‘약속’이다. 그러나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정치권 안팎에서 “민주당이 당헌, 당규만 지켜도 극단적 진영 갈등에 매몰된 ‘타락한 진영의식’이 사라질 수 있다”란 지적이 나온는 이유다.

의원님들이 '당헌·당규'만 지켜도 '타락한 진영의식' 사라진다
◇“다양성 추구한다면서 입을 틀어 막았다”


다양성과 다원성을 강조한 내용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당헌 3조는 ‘민주당은 당원을 중심으로 운영하되,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기반으로 한다’고 돼 있다.

다양성과 다원성은 정당 내 민주화와 건전한 비판의 자양분으로 극단적 진영 논리의 ‘특효약’으로 꼽힌다. 다층적·다원적 현안이 쏟아지는 시대, 정권 재창출에 도전하는 세력이 전면에 내세울 가치로 마땅하지만 이 역시 실천의 문제가 남는다.

금태섭 민주당 의원은 이른바 ‘조국 사태’ 당시 소신 발언과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인 공수처 설치에 반대했다는 이유 등으로 민주당 열성 지지자들로부터 십자포화를 받았다. 금 의원이 공수처 설치안의 본회의 표결에서 기권표를 던지자 당내 성난 민심은 극에 달했다.

다양성과 다원성이 무시되고 당내 열성 지지자 목소리가 과잉 대변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금 의원은 서울 강서을 경선에서 패하며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못한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금 의원을 보면서 앞으로 민주당에서 소신을 밝힐 수 있는 의원이 몇이나 될까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진보진영 당헌·당규 살펴보니

범진보·개혁 세력으로 꼽히는 정의당과 민생당의 당헌·당규도 아쉽다. 정의당은 125쪽에 걸친 당헌·당규에서 ‘노동’, ‘시민참여’, ‘진보’, ‘보편적 복지’, ‘한반도 평화’ 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지만 협치 등 ‘정치 행위’에 대한 내용은 담지 못했다.

양당제를 넘어 다당제 정착에 앞장서는 정당으로서 다른 당과 관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당을 국회라는 정치 공동체를 함께 운영하는 동료이자 경쟁자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적으로 규정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선거를 앞두고 최근 창당한 민생당도 다르지 않다. 민생당은 당헌·당규을 통해 ‘민주복지국가’, ‘서민’, ‘한반도 평화’, ‘국민통합’ 등 자기 세력이 추구하는 가치에만 집중하는 데 그쳤다는 평가다.

의원님들이 '당헌·당규'만 지켜도 '타락한 진영의식' 사라진다
통합당은 투쟁, 또 투쟁…당헌 첫머리엔 '헌법가치' 강조
‘보수를 대표하는 거대정당’

미래통합당을 수식하는 표현이다. 통합당은 보수진영에서 강조하는 ‘헌법 가치’를 당헌·당규의 첫머리에 넣었다.

당헌 제1장 2조에 “통합당은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역사적 성취를 이끌어온 헌법정신을 존중한다. 헌정질서의 중심인 자유, 민주, 공화, 공정의 가치를 올곧게 실현하고 확대하는 데 주력한다”고 썼다.

헌정질서의 가치를 지키는 ‘건강한 진영의식’은 다른 진영과 건전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헌법가치를 망각한 ‘타락한 진영의식’에서 당내 건전한 목소리는 사라진다. 자정작용이 사라진 진영에는 강성만 남는다.

당헌·당규는 당원이 따라야할 ‘헌법’이고 ‘법률’이다. 통합당은 당원의 권리와 의무를 밝힌 당헌 제6조에서 ‘당헌·당규를 지킬 의무’를 규정한다.

의원님들이 '당헌·당규'만 지켜도 '타락한 진영의식' 사라진다
◇점거, 농성, 물리력행사…당헌엔 '법치구현'

‘제1야당’. 현재 통합당을 수식하는 또 다른 표현이다. 제1야당의 역할 중 하나가 ‘행정부 견제’다. 또 대통령 선거과 국회의원 선거에선 집권세력을 상대로 ‘심판론’을 꺼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방식이다. 통합당을 보면 정부 견제의 방식으로 ‘투쟁’을 선택한다. 국회에 들어가 ‘논쟁’ ‘비판’하지 않는다. 쟁점 현안에 대한 건전한 토론,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등은 없다.

통합당의 당헌 제1장에 적힌 “법치를 구현하고 국민통합을 이루는 정치와 국정을 지향한다”는 구절은 그저 활자일 뿐이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 당시 한국당의 모습은 법치 구현과 거리가 멀었다. 대화 테이블에 형식적으로 앉았을 뿐 실제 대화에 나서지 않고 투쟁만 택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한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검경수사권 조정 등 검찰 관련 법안에 ‘절대 반대’만 외칠 뿐이었다. 한국당의 주장, 대안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지난해 4월 검찰 관련 법안이 패스트트랙에 오르는 걸 막기 위해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장을 막았다. 지난해 12월 선거법 표결 당시에도 의장석 주변을 점거했다. 패스트트랙 충돌에서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사보임 문제로 항의 방문하러 찾아 온 한국당 의원들에 의해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이 의원실에 감금되는 일이 발생했다. ‘국회선진화법 위반’으로 기소된 이들만 20명이 넘는다.

투쟁을 위한 투쟁만 되풀이됐다. 당 지도부는 패스트트랙 등 현안에서 지도부 책임론이 불거질 때마다 대여 투쟁을 강조하며 당내 지지 결집을 시도했다. 이때 ‘타락한 진영의식’이 작동했다. 당헌과 당규 어디를 봐도 “다른 진영과 피터지게 싸워라”는 얘긴 없다.

제21대 총선을 한달 앞둔 3월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선거관리위원회 안내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제21대 총선을 한달 앞둔 3월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선거관리위원회 안내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국민통합을 이루는 정치'…반대로 가는 '극우화'

통합당 당헌에 ‘국민통합을 이루는 정치를 지향한다’는 표현이 있다. 통합당의 비례대표용 자매정당인 미래한국당의 강령에는 “역사적 경험을 반성적으로 성찰하여 민주주의를 더욱 성숙시켜 나간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국민통합, 그리고 민주주의의 성숙과는 거리가 먼 목소리만 ‘득세’한다. 지난해 2월 한국당(현 통합당) 의원들의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에서는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이라는 발언이 국회의원 입에서 나왔다.

더 큰 문제는 당심(黨心)이 극우화됐다는 진단이다. 당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서 당대표를 맡은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이 유가족을 국회에서 만나 사과했지만 당내에서는 ‘막말’보다 ‘사과’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적잖게 나왔다.

건전한 목소리는 사라지고 당내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가 대두된 탓이다. 김 전 위원장은 공청회 직후 치러진 2·28 전당대회에서 당원들로부터 야유까지 받았다. 보수의 ‘타락한 진영의식’이 여실히 드러난 장면이다.

통합당은 당규 제7조 당원자격 심사에 △당의 이념과 정강·정책에 뜻을 같이 하는 자 △당과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자 △공사를 막론하고 품행이 깨끗한 자 △과거의 행적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지 아니하는 자 △개혁의지가 투철한 자 등을 규정한다.

정치권 안팎에선 “통합당 인사들은 ‘당의 이념과 뜻을 같이하고 품행이 깨끗한 자’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는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말과 행동이 다르기 땨문이다. 통합당 스스로 지키지 않는 ‘당헌·당규’는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다.

쪼개고 붙여 며칠만에 부실설계... '건강한 진영의식' 흔들린다
#지난 1월12일 민주평화당의 박지원 의원 등 비당권파 의원 9명이 탈당했다. 평화당을 박차고 나온 이들은 대안신당을 만들었다. 제3세력과 통합을 염두에 둔 작업이었다.

의석이 4석으로 줄어든 평화당은 소상공인 세력과 연합을 추진하는 등 ‘선 자강 후 통합’에 무게를 뒀다. 비슷한 시기 바른미래당도 계파 갈등 끝에 쪼개져 손학규 전 대표 등 일부만 남았다.

평화당과 대안신당, 바른미래당 등 3당은 2월11일 조건없이 통합하겠다고 선언했다. 서로 싫다고 헤어졌던 평화당과 대안신당은 한달 만에 다시 손을 잡았다. 2주 후 이들 정당은 민생당의 이름을 달고 새롭게 출발했다.

의원님들이 '당헌·당규'만 지켜도 '타락한 진영의식' 사라진다
◇며칠만에 뚝딱 당헌·당규 “어디서 봤더라?”

민생당 출범까지 걸린 시간은 한 달 반이다. 당의 이념과 가치 등이 담긴 당헌을 만드는 데는 10일도 필요하지 않았다. 민생당의 당헌은 총칙 등 총 15개 항목으로, 50여페이지에 3만5000자로 돼 있다.

당헌은 수만 혹은 수십만의 당원의 생각을 모아 그 당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당의 헌법’인데 단 며칠 만에 만들어질 수 있을까. 민생당 의원들 면면을 보면 답이 나온다. 민생당 의원 19명 모두 2016년 2월 안철수 현 국민의당 대표가 만든 옛 국민의당 출신이다.

국민의당이 쪼개져 민주통합당과 바른미래당으로 나눠졌다가 원상복귀된 셈이다. 그러다보니 4년전에 만든 옛 국민의당의 당헌과 당규, 강령 등을 ‘차용’했다. 실제 민생당 당헌·당규를 보면 당시 국민의당 내용과 유사하다. 사람이 바뀌지 않은 탓에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게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민생당 핵심 관계자는 “국민의당 시절 당헌·당규를 잘 만들어 놓았는데, 현재 적용해야할 새로운 내용들을 추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대정신과 가치, 미래 비전 등에 대한 고민이 없이 베낀 종이조각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현 국민의당 당헌·당규도 2016년 옛 국민의당 당헌·당규가 기본 틀이다. 지난 1월말 안 전 대표가 바른미래당을 탈당했을때부터 준비해서 한달후 국민의당 창당할 때 발표했다. 결국 민생당과 국민의당이 거의 비슷한 당헌·당규를 갖고 있는 셈이다.

의원님들이 '당헌·당규'만 지켜도 '타락한 진영의식' 사라진다
◇“자매정당 비례위성정당, 당헌·당규도 자매품”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전진당, 보수 시민사회단체 등이 합친 미래통합당도 마찬가지다. 보수 진영의 통합은 2017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새누리당이 분열한 지 3년 여 만이다.

통합당 당헌·당규의 내용은 모태인 자유한국당과 거의 비슷하다. 통합당 관계자는 “우리당 당헌·당규는 자유한국당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통합당의 비례대표용 자매정당인 미래한국당 당헌·당규는 통합당 내용을 축소한 형태다. 두 당의 당헌·당규 내용을 비교해보면 별 차이가 없다. 당원과 당기구 등 여러 항목에서 내용이 겹친다.

통합당이 각 항목에 대해 디테일한 설명을 덧붙인 것만 다르다. 두 당 모두 당헌·당규 작업에 그리 시간이 많이 소요되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의 당헌·당규를 요약한 여러 버전을 당의 핵심 가지이자 규범으로 내걸고 있는 셈이다.

범여권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도 급하게 창당하면서 초고속으로 당헌·당규를 만들었다. 이들 정당의 당헌·당규의 내용을 보면 각각 27페이지와 31페이지로 돼 있고 비슷한 내용이 많다. 다만 강령 등을 통해 각 당이 지향하는 바를 드러내는 등 차별화했다.

◇'당헌·당규'의 정치학

대한민국 정당은 선거를 앞두고 쪼개지거나 합쳐진다.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선거만 다가오면 생각을 달리한다. 함께 할 땐 하나의 당헌·당규를 만든다. 헤어지면 거기서 파생된 당헌·당규를 갖는다.

이러다보니 각 당엔 당헌·당규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선수’들이 있다. 4년마다 있는 총선때 여러 당들이 출현하고 이합집산하는데, 이때 이들이 실력을 발휘한다. 만들어지는 당의 성격에 따라 약간의 윤색과 각색만 이뤄질 뿐이다.

국회 관계자는 “각 당의 당헌과 당규를 자세히 살펴보면 겹치는 부문이 많은데, 이틀이면 만들 수 있다는 정치인도 있다”며 “추상적이면 긍정적 단어가 모두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각 당이 치열한 고민없이 ‘복붙’(복사해서 붙이는) 당헌·당규를 만든 탓에 정당의 가치와 품격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정당은 당헌·당규에 진영의 가치를 반영해야한다. 합리와 상식이 토대다.

건강한 ‘진영 논리’ ‘진영 의식’의 출발점이자 결과물이다. 하지만 충분한 숙의 과정이 없다 보니 당헌·당규는 정당, 당원과 괴리된다. 당헌·당규 준수보다 강성 목소리가 진영을 지배한다. 합리적 대화·논쟁이 축적되지 않고 일부의 의견이 정치적 목표를 위해 반영되며 당헌·당규를 왜곡시키기도 한다.

권칠승 민주당 의원은 “20년전 새천년민주당 시절 당헌·당규 개정 작업을 하면서 대선을 위한 국민참여경선 항목을 넣는 것 하나에 100일 연속 당무위원회를 열었다”며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일종의 합의서가 당헌·당규인데, 숙의와 축적의 시간을 통해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의원님들이 '당헌·당규'만 지켜도 '타락한 진영의식' 사라진다
민주화·안보·경제·협력...'시대정신'따라 지향점 변화
정당은 작은 ‘사회’이자 ‘결사체’다. 국가의 헌법, 사회의 규범보다 더 강한 장치를 갖고 있다. 정당이 ‘한몸’으로 움직이려면 따라야할 가치와 어떤 사안에 대해 판단하는 기준, 미래 비전에 대한 합의점 등이 필요하다.

당헌은 정당의 ‘헌법’이다. 당을 대표하는 가치와 이념을 넓게 제시한다. 뒤따라오는 당규는 ‘법률’에 해당한다. 당헌에 관한 구체적 세부 규정을 제시해 현실에 적용할 수 있게 한다.

법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위반한 이들에겐 당내 비판이나 징계가 따른다. 당원 입장에서 받는 페널티는 꽤 강하다.

당헌·당규는 우리나라 정당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제헌 이후 최초 집권여당인 자유당은 1949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내세운 ‘일민주의’를 당시 강령에 해당하는 ‘당시(黨是)’로 정했다.

일민주의는 ‘하나의 국민’으로 대동단결하자는 뜻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자유당은 일민주의를 정체성 삼아 북한을 인정하지 않는 동시에 국민을 통합하려 했다.

1962년 제3공화국 당시 최초로 정당법이 명문화되며 당헌·당규도 자리잡았다. 당헌 공개는 정당 설립의 필수 조건이 됐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정당법은 한 차례 옷을 갈아 입었다. 이후 구체적인 당의 운영 사항을 당헌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조항이 생겼다.

투명한 창당 과정을 보장하고 조직 운영을 건강하게 하기 위한 취지였다. 당원의 입당·제명 절차와 간부 선임, 재정 운용 등에 대한 내용이 필수 요소가 됐다.
의원님들이 '당헌·당규'만 지켜도 '타락한 진영의식' 사라진다
역대 정당들은 당헌·당규에 그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을 담았다. 1987년 정치권의 시대정신은 ‘민주화’였다.

당시 YS와 DJ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통일민주당은 강령에서 “일체의 독재를 단호히 거부하고 국민주권과 의회민주주의를 수호하며 평화적 정권교체를 실현한다”고 했다.

보수정당은 안보와 경제 성장의 메시지를 주로 담았다. 역대 ‘최장수’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은 강령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안보강국’ 등의 지향점을 강조했다.

2012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당을 꾸리며 대북정책 관련 일부 표현을 삭제하고 ‘경제 민주화’를 추가했다. 당시 강령의 변화는 대북정책에 유연하고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보수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20대 국회 주요 정당의 당헌·당규는 ‘협력’과 ‘통합’을 이루겠다는 다짐이 눈에 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의미가 없다고 본다. 여야 모두 협치와 통합의 노력 대신 진영 싸움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강윤 정치평론가는 “(당헌당규의 협력정치가 지켜지지 않는)그 부분이 정치개혁이 필요해지는 지점”이라며 “시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기대나 시민적 성숙도에 비해, 정치 현실이 아직 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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