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회사채 직매입" 요구에 우회로 뚫은 한은

머니투데이 한고은 기자 2020.03.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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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법상, 국고채 등 손실위험 없는 채권만 매입 가능…여권 "법테두리서 방법 찾을 상황 아냐"

한국은행 본관. /사진=한국은행한국은행 본관. /사진=한국은행


한국은행이 기업어음(CP) 등 단기자금시장에 유동성 공급을 확대한다.

한은은 24일부터 한국증권금융, 삼성증권, 미래에셋, NH투자증권, 신영증권 등 5개 비은행기관을 대상으로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시작한다고 23일 밝혔다. 한은은 우선 14일물, 28일물 RP 매입을 실시하는데, 자금수요가 몰리는 분기말에 맞춰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RP 대상 비은행기관도 현재 5곳에서 통안증권 대상 증권사 7곳과 국고채전문딜러(PD)로 선정된 증권사 4곳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매입 대상 증권도 일부 공기업 특수채까지 확대하고, 대출담보증권도 더 늘릴 계획이다. 거래기관 수요에 최대한 맞춘다는 취지다.



이는 최근 국내외 증시가 폭락하면서 국내 증권사들이 주가연계증권(ELS) 마진콜(증거급 납부 요청)에 직면하면서, 보유하고 있던 자산을 팔기 시작했고 CP 등 단기채권 가격이 급락하는 등 시장 불안이 확산됐다.

증권사들을 RP 매입대상 기관에 포함시켜 이들의 숨통을 틔워주면, CP 시장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효과가 있다.



한은은 대신 여권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 CP, 회사채 직접 매입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는 현재 미국 연방준비제도에서도 논의되는 내용이다.

벤 버냉키,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공동 기고문을 내고 연준에 장기 회사채 매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연준법 개정 사항으로 중앙은행의 매입대상 채권 범위를 넓히는 이른바 '질적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여권을 중심으로 한은이 CP, 회사채 등을 매입해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을 직접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금통위원 출신인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3일 전화통화에서 "지금은 주식시장, 외환시장에서 충격이 나타나고 있지만 앞으로 자금시장에서 CP나 회사채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사례가 나오는 경우 위기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되고, 기업 부도로 이어질 것"이라며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은 현재 한국은행법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한은법 68조와 79조를 보면 손실위험이 있는 채권을 매입하지 못하게 돼있다"고 말했다.

최운열 의원은 "법상 불가능한 게 맞지만 현재의 위기 극복은 전통적 방법으로 안되는 상황"이라며 "비상한 상황에서는 비상한 수법을 써야 하고, 향후 필요하면 21대 국회에서 법적으로 뒷받침하면 되고 지금은 법 테두리 안에서만 방법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에서도 계속 요구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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