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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없는 우향우"…김문수는 왜 '광기의 중심'에 섰나

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정회인 인턴기자 2020.03.24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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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전 경기지사/사진=뉴스1김문수 전 경기지사/사진=뉴스1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22일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연단에 섰다. '아스팔트 우파'를 이끄는 전광훈 목사의 본거지다. 김 전 지사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구속 중인 전 목사를 위해 "목사님이 석방되는 그 날까지 더 뜨겁게 기도하자"며 눈물을 흘렸다. 한 외신기자는 "완벽한 광기의 장면"이라 촌평했다.

노동운동가로 출발해 보수정당의 3선 국회의원, 재선 경기지사, 대권 잠룡, '태극기 부대' 핵심까지. 1980년대 이후 한국 정치사의 주요 장면마다 등장한 거물 정치인, 김 전 지사의 행보는 이른바 '전향(또는 변절)'과 '끊임없는 우향우'로 요약된다.

극좌부터 극우까지, 대한민국의 이념지도를 빠짐없이 훑은 그의 드라마틱한 변화. 그 이유는 무얼까.





'노동운동의 전설' 보수정당行…"사회주의 몰락, YS 개혁에서 가능성 찾아"


김 전 지사는 1980년대 노동운동에 발을 들였던 대학생들에게는 '전설'이었다. 1970년대 운동권에 투신해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을 지냈고, 1985년 서울노동운동연합 설립을 주도했다. 1986년 인천 5.3 민주화운동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의 전향은 1990년대 정치권으로 시선을 옮기며 출발했다. 이재오·이우재 등과 진보정당 민중당을 창당해 14대 총선(1992년)에 도전했지만 저조한 득표율로 낙선, 정당 해산의 쓴맛을 봤다. 1년간 택시기사로 일한 그는 1994년 김영삼 대통령 권유로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며, 이력 중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꾀했다.

2006년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 김문수./ 사진=머니투데이DB2006년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 김문수./ 사진=머니투데이DB
그의 전향은 독일의 통일, 소련의 해체, 냉전의 종결 등 역사적 변화와 현실정치의 한계 등이 원인이었다. 고(故) 노회찬 전 의원의 인터뷰에 따르면, 김 전 지사는 "너(노회찬)는 100을 하겠다고 하는데 나는 2~3개만 하겠다. 그 2~3개만 잘하면 살아있는 민중에게 도움되는 거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후 김 전 지사는 15·16·17대(부천시 소사구) 내리 3선의 국회의원, 32·33대 재선 경기지사로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박정희 정권의 민주공화당, 전두환 정권의 민주정의당' 계보를 잇는 민자당 입당은 변명하기 어려운 변절이었지만, 김 전 지사는 "민자당 입당을 후회한 적 없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경기지사 시절인 2007년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선 "급진적 민중주의자에서 자유민주주의자로 바뀌었다"며 "진보정당(민중당) 실패에 이어 당시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한 상황에서 우리는 YS(김영삼 대통령)의 개혁 드라이브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찾았다"고 고백했다.



박근혜와 경쟁하며 '잠룡' 됐지만…김부겸에 대구 내주며 '치명타'


경기지사였던 2012년 18대 대선 새누리당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후일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 후보의 '독주'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실제 '경선 룰' 논란으로 다른 '비박계' 후보가 중도 사퇴한 와중에도 2위로 경선을 마치며 '잠룡'으로 부상했다.

새누리당 김문수 대선 경선후보가 2012년 8월 1일 제주시 오라동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제주합동연설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사진=머니투데이DB새누리당 김문수 대선 경선후보가 2012년 8월 1일 제주시 오라동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제주합동연설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사진=머니투데이DB
정치적 시련은 2014년 경기지사 퇴임 후 본격화됐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결정적 실패를 경험했다. 대구 수성갑에서 김부겸 더민주 후보와 1대1 대결을 벌였는데 득표율 37.7% 대 62.3%, 무려 24.6%포인트(p) 차이로 낙선했다. 당의 '텃밭' 대구에서의 참패는 '정계은퇴'까지 거론될 정도의 충격이었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로 당시 야권의 당선이 확실시됐던 2017년 19대 대선에는 불출마했고, 또 한 번의 정치적 전향을 택했다. 탄핵반대 집회에 참석하고,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도 이른바 '태극기 부대' 집회를 주도하며 '아스팔트 우파'로 자리매김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과거 민자당 입당보다 더 놀라운 변화로 보기도 한다. 민자당 입당은 '반독재 민주화' 대부 중 한 사람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따른 데다 당시 진보진영 다수 인사와 함께였던 반면 '비박→친박' 변화는 그간 자신의 발언을 정면으로 뒤집은 데다 납득할 만한 명분을 찾기도 어려워서다.



'끝없는 우향우' 어디까지…재기 노렸지만, 자유공화당 '탈당'


지난 2월 26일 청와대 사랑채 인근에서 김문수 자유통일당 대표가 전광훈 목사 구속에 항의 집회를 열고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사진제공=뉴스1지난 2월 26일 청와대 사랑채 인근에서 김문수 자유통일당 대표가 전광훈 목사 구속에 항의 집회를 열고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사진제공=뉴스1
김 전 지사는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해 "독재자의 딸", "인기는 높지만, 실력은 알 수 없다"는 등 비판을 거듭했지만, 탄핵 후에는 "박 대통령은 억울하다"며 적극 변호에 나섰다. 또 문 대통령,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해선 공개석상에서 "완전히 빨갱이다"라는 폭언조차 망설이지 않는다.


옛 정치적 동료였던 전여옥 전 의원은 2017년 초 그와 함께 출연한 한 방송 프로그램 녹화에서 "민주투사에서 태극기 전사로 180도 태도를 바꿨다. 왜 그렇게 변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또 "대통령의 꿈이 좌절되고 힘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이라고도 비판했다.

그의 행보에 대해서는 "박 전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기반으로 정치적 재기를 꾀하려는 것"이란 평가가 많다. 전 목사와의 자유통일당 창당, 조원진 의원의 우리공화당과 합당(자유공화당)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21일 김 전 지사는 "노선 차이"를 이유로 탈당했다. 정치권에선 공천 갈등을 배경으로 본다. 또 한 번의 정계은퇴 위기, 김 전 지사의 오른쪽에는 더 이상의 자리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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