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수당을 전국민 일괄지급하는 게 좋은 이유

머니투데이 최성근 이코노미스트 2020.03.25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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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랜딩]지역상품권으로 지급하면 결국 피해계층인 소상공인·자영업자에 혜택 돌아가

편집자주 복잡한 경제 이슈에 대해 단순한 해법을 모색해 봅니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경제가 미증유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금융시장에선 마치 금융위기를 연상케 할 정도로 대폭락장이 연일 벌어지고 있고, 실제 각종 경제지표들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JP모건은 코로나19의 충격으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1.1%로 하향조정했고, 중국 성장률은 1.1%로, 한국 성장률도 0.8%로 각각 낮췄다. 유럽이나 미국도 상반기엔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더욱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것은 현재 시점에서 향후 경제를 전망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 경제에 얼마나 큰 충격을 가져올지 마치 안갯속을 걷는 것처럼 가늠하기조차 힘들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전례없는 경제 재난 상황에서 국내외 전문가들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위기에 긴급하게 대응하기 위해 조속히 재난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받고 있다.

이미 미국에선 금리를 0%대로 낮추고 양적완화에 회사채 매입까지 가능한 지원책을 총동원했지만 불안이 가라앉지 않자 1조 달러(약 1200조원) 수준의 경기부양책을 마련하고, 국민 1인당 현금 1000달러(약 120만원)를 지급하는 방안을 신속하게 추진 중에 있다.

이미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될 무렵 홍콩에서는 영주권자 700만명을 대상으로 1만 홍콩달러(약 155만원)의 재난수당을 지급했고, 싱가포르는 21세 이상 모든 시민권자에게 소득과 재산에 따라 최고 300 싱가포르 달러(약 26만원)의 현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국내에선 이미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발 빠르게 추진 중에 있다. 서울시와 전주시, 화성시, 그리고 강원도는 지자체 차원에서 재난수당 지급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는 중위소득 이하 가구에 30만~50만원씩을 지역상품권 또는 선불카드를 지급하며, 전주시는 중위소득 80%이하 가구에 52만7000원을, 경기도 화성시는 전년 대비 매출이 10% 감소한 소상공인에게 평균 200만원을, 강원도는 중위소득 이하 가구에 최대 50만원의 긴급생활비를 각각 지급할 예정이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현금을 직접 지급하는 게 위축된 경제를 부양시킬 수 있을지 아직 미지수고 정부 재정에 부담을 준다는 비판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와 청와대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국무회의에서 어려운 때일수록 더 힘든 취약계층, 일자리를 잃거나 생계가 힘든 분들에 대한 지원을 우선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는 만약 정부가 재난수당을 추진한다고 해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일괄 지급하는 방식보다는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선별적 지원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재난수당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선별 기준이다. 서울시나 다른 지자체의 경우 중위 소득을 기준으로 지급한다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나 정부가 추진할 경우 이러한 기준이 과연 공정한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민주당은 긴급재난 지원금을 가처분소득 하위 80%에게 일괄 지급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지만 지급 기준이 왜 80%여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다. 한편 미래통합당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1200만명 중 30%인 400만명에게 500만~1000만원의 긴급구호자금을 '코로나 채권'을 발행해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시간과 접근성의 문제도 제기된다. 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재난수당을 지급하는 이유는 여타 지원 정책보다 빠르고 신속하게 국민들의 소득을 늘려줌으로써 경기 불황을 막아보자는 데 있다. 그런데 지급 선별 기준을 확정하고 고시하고 홍보하는데 적지않는 시간이 소요되며 결과적으로 정책의 효용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게다가 정부 차원에서 전 가구나 전 국민의 소득을 모두 분류할 수 있는 통계 데이터가 부재한 상황이다. 따라서 재난소득을 지급받으려면 결국 가구주나 개인이 직접 소득 증빙 서류를 준비해 지자체나 공공기관에 온라인이나 혹은 직접 방문해 제출하고 신청을 해야 한다. 특히 근로소득자는 소득증빙이 상대적으로 간단하지만 자영업자나 개인사업자의 경우 해당 소득을 증빙하는 서류를 마련하는 과정 자체가 번거롭고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지난 아동수당 지급때와 같이 오히려 많은 행정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아동수당은 초기에 소득 하위 90%를 기준으로 선별해 지급하려다가 결국 선별과정의 행정비용이 더 커지는 부작용으로 결국 100% 지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미국에서도 재난소득의 지급 기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으며 아직 관련 법안이 국회 승인을 받지 못한 상황이다. 므누신 재무 장관은 "1년에 100만 달러를 버는 사람들에게 현금을 지급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공화당 의원들은 개인 7만5000달러, 부부 합산 15만 달러를 기준으로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무분별한 현금 살포라는 주장도 있지만 일시적인 지역상품권의 형태로 지급한다면 이는 지역 안에서의 일정 기간 내에 소비를 해야 하므로 결국 그 혜택은 불황으로 매출이 뚝 끊어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즉 전국민 대상으로 일괄 지급하는 재난수당은 결과적으로 코로나19 사태가 가장 피해를 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지원 대책이 될 수 있다.

특히 자녀를 키우는 가정의 경우 현재 코로나19 사태 이후 방학이 거의 한 달여 기간 연장되면서 식료품 비용을 포함한 각종 생활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계소득을 조금이나마 보전해주는 상품권을 지급하는 것은 가계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로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 대응에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 취약한 계층만을 지원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기준을 선정하고 선별해 일일이 신청을 받아 지급하는데 시간을 보낸다면 신속하게 현금을 지급한다는 정책의 장점을 잃어버린 채 침체된 경기를 살릴 타이밍도 놓쳐 버릴 수가 있다.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SNS를 통해 “이번 재난기본소득은 반드시 모든 국민에게 동일하게 지급해야 한다"며 국민 1인당 1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고소득자에게도 현금을 지원해야 하는가?'라는 논란에 대해 선택적 혜택이 조세와 정책 저항을 불러와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고소득자는 어차피 세금을 많이 낸 사람인데 공적 혜택을 박탈하는 것은 오히려 이중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경기도는 오는 4월부터 소득과 나이에 관계없이 전 도민에게 1인당 10만원씩(4인 가족의 경우 40만원)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이미 현 상황이 전례없는 위기이므로 전례없는 대책을 내놓을 것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정책 당국은 재난수당에 대해서 재정건전성이라는 전례만을 따지며 미온적인 입장을 고집하고 있으니 정말 경제를 살리려는 것인지 아니면 국가 경제가 죽기 직전까지 기다리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그런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커다란 산불이 번져 가는데 나중에 먹을 물이 부족할까 걱정하며 물을 쏟아붓지 않으면 자칫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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