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앞에선 '삿대질', 카메라 꺼지면 '형님·동생'

머니투데이 정진우 기자 2020.03.22 06:00
글자크기

[the300]['대한민국4.0'을 열자][2회-下] 자기진영만 바라보는 의원님들

편집자주 대한민국이 맹목과 궤변, 막말 등으로 가득한 '타락한 진영의식'에 갇혀있다. 타락한 진영은 시위와 농성, 폭력 등을 일으키며 생산적 정치를 가로막는다.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타락한 진영을 없애고 '건강한 진영의식'을 회복해 대화와 협상, 타협 등이 가능한 정치를 만들어야한다. 그래야 '대한민국4.0'을 시작할 수 있다.

카메라 앞에선 '삿대질', 카메라 꺼지면 '형님·동생'


타락한 진영싸움 기댄 '기생정치', 민생까지 갉아먹는다
#지난 1월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 김해영 민주당 의원(최고위원)의 발언은 모두의 귀를 의심케 했다.

김해영 의원은 “부모가 현재 국회의원으로 있는 지역에서 그 다음 임기에 바로 자녀가 같은 정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하는 건 국민 정서상 납득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희상 국회의장을 겨냥한 말이었다. 문 의장의 아들 문석균씨가 자신의 아버지 지역구인 의정부에서 출마 준비를 했는데 김 의원이 공개석상에서 이를 비판한 것이었다. 김 의원의 발언은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문석균씨는 결국 사흘뒤 사퇴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은 “왜 그런식으로 말을 하냐”며 김해영 의원을 비난했다. 김해영 의원은 같은 달 29일엔 민주당의 제2호 영입인재 원종건씨의 미투 문제를 비판하며 당 지도부를 향해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서울=뉴스1) 이종덕 기자 =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서울=뉴스1) 이종덕 기자 =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김해영 의원은 집권여당인 민주당에서 ‘타락한 진영의식’을 깨는 노력을 한 인물로 꼽힌다. 그는 “헌법을 보면 국회의원은 국민 전체의 대표자로 나온다”며 “우리 현실은 의원들이 진영으로 갈려 오히려 국민적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가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하는 역할을 해야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하지만 그는 국회가 오히려 진영을 오염시키고 타락한 진영을 구축한다고 지적한다.


김해영 의원은 “정치인들이 자극적 발언, 편가르는 발언으로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관철시키며 지지자들을 결속한다”며 “진보와 보수의 양 극단 특정 진영에 치우치기보다, 헌법 정신에 따라 국민 전체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1) 이종덕 기자 = 김세연 미래통합당 의원(서울=뉴스1) 이종덕 기자 = 김세연 미래통합당 의원
민주당에 김해영 의원이 있다면 미래통합당엔 김세연 의원이 있다. 3선의 김세연 의원은 지난해 11월 “한국당은 생명력을 잃은 좀비같다”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각 정당이 특정 진영에 휩쓸리는 등 ‘타락한 진영의식’에 사로잡힌 여의도 정치에 염증을 느꼈다고 한다. 김세연 의원은 “외교안보나 통일같이 국가의 운명이 달린 문제 앞에서도 우리 정치권은 양 극단으로 갈려 싸운다”며 “성숙한 국가 공동체적 가치가 아직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만성적인 나쁜 진영 간 대립 구도에 기생해온 기존 정치 세력들이 만들어 놓은 구도가 극복이 안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세연 의원은 “진영에 사로잡힌 정치 세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일부 지지층이 절대 다수 선량한 국민들을 볼모로 자신들의 권력 놀음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세연 의원은 ‘타락한 진영의식’을 깨기 위해선 분권형 대통령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급격한 변화보다 20~30년 정도의 시간을 갖고 내각제로 가기 위한 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해야한다”며 “점진적인 변화를 끊임없이 추진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독일은 거의 2년마다 한번씩 헌법개정이 이뤄지는데 우리도 헌법의 연성화가 필요하다”며 “1987년 이후 33년이 지나도록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게 문제”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스1) 이종덕 기자 = 김성식 무소속 의원(서울=뉴스1) 이종덕 기자 = 김성식 무소속 의원
야당 의원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장관직 제의를 받은 김성식 무소속 의원도 양 극단으로 치우친 나쁜 진영을 없애야한다고 주장한다.

김성식 의원은 “지금 의원들은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고, 문자폭탄 그룹을 두려워한다”며 “익명의 팬덤 혹은 열성 지지그룹만 바보는 정치를 하기 때문에 양 극단의 진영 갈등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권력 집중화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여야가 바뀌더라도 모든 여당은 대통령에 충성하고, 모든 야당은 무조건 반대만 하고 있다”며 “선출되지도 않고 청문회도 거치지 않은 청와대 참모 중심으로 국정이 운영되다보니 내각은 허수아비, 국회는 들러리만 서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청와대 중심의 권력 집중 문제를 개선해야 진영 정치가 극복될 것”이라며 “우리편이 이기는 게 민주주의가 아니라, 어느 편이 이기든 견제와 균형 원리가 돌아가고 분권과 책임정치 원리가 적용돼야 민주주의”라고 설명했다.

김성식 의원은 오는 4월 총선을 통해 구성될 21대 국회가 ‘타락한 진영의식’을 깨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법안을 만들지 말고, 구조개혁이나 규제개혁 등과 같이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에 꼭 필요한 법 몇 개만이라도 21대 국회 초반에 만들어야 한다”며 “대연정이나 협치, 정치연합 등을 통해 양 극단에 치우친 나쁜 진영을 없애자”고 강조했다.

카메라 앞에선 '삿대질', 카메라 꺼지면 '형님·동생'
국회는 오늘도…"아무말이나 일단 해, 우리편 생기는 거로"
#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사상 최악 20대 국회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며 4·15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국회가 정쟁에 매몰돼 민생을 외면하고 본분을 망각했다”고 토로했다.

‘타락한 진영의식’에 갇힌 우리 정치권을 향한 일갈이었다. 그는 한 방송에 나와 “많은 정치인이 국회에서 ‘거의 배우’가 된다”고 지적했다. 어떻게 신문·방송에 비칠지를 염두에 두고 발언한다는 것이다.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잘 되던 논의도 카메라 들어오는 순간 쇼가 된다. 정치인이 ‘쇼맨’이 된다는 얘기다. 표 의원은 여기에 질렸다고 했다.

정치인들은 누구에게 잘 보이려 저러는 걸까. 의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열혈 지지층, ‘강성’ 지지세력이다. 이들에게 밉보이면 수천개의 문자 폭탄으로 생고생한다. 잘 보이면 ‘사이다 발언’ 등 칭송이 쏟아진다. 이른바 ‘까방권(까임방지권)’도 얻는다.
카메라 앞에선 '삿대질', 카메라 꺼지면 '형님·동생'
보수와 진보 양 극단에 놓인 세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거다. ‘쇼맨’ 정치인은 진영의 입장을 대변하는 데 힘을 쏟는다. 공정과 정의의 관점이 아니라 당리 당략만 따르고 자기 진영에 치우진다. 합리 대신 맹목이 편하다. 진영 논리는 궤변이 되고 건강했던 진영의식은 오염된다.

지난해 국정감사는 역대 최악이란 20대 국회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줬다. '타락한 진영의식'이 이렇게 한국 정치, 한국 정치인을 지배한다.

건강한 경쟁이 아닌 적대적 공존을 부추긴다. 상대에 대한 악마화, 조롱 등만 난무한다. ‘쇼맨’이 된 정치인은 퇴보한다. 진영 논리로 포장된 궤변에 충실하면 되기에 국민 삶을 살피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극단의 지지를 토대로 배지를 달고 4년을 더 버틴다.

이제 유권자가 심판해야 한다. 정치와 정치인, 진영을 건강하게 회복시켜야 한다. ‘타락한 진영의식’에 빠져 특정 세력에만 충성하는 정치인이 사라질 때 비로소 건전한 정치가 살아난다.

이철희 민주당 의원은 “타락한 정치의 가장 큰 원인은 결국 정치인들이 유권자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나쁜 진영에 몰두하는 정치는 결국 내부 토론과 견제가 사라져 역사를 퇴보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