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부터 재택근무 사무실이 된 내 책상. 고작 두 뼘 거리에 침대가 있지만 유혹을 물리치고 사무용 의자에 잘 앉아 있어야 한다./사진=구단비 인턴기자
갑작스러운 재택근무는 어머니의 해고 걱정으로 출발했다. 근무 8개월 차,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내게 재택근무는 어색하게 다가왔다.
근무 시간이 아닌 여유 시간에 가족과 함께 퍼즐 맞추기와 루미큐브 게임을 했다./사진=구단비 인턴기자
집에 있는데…"집에 가고 싶다"
왼쪽은 사진 촬영을 위해 차려먹은 점심. 평소엔 오른쪽처럼 냉동식품을 대충 데워서 먹는다. 해시브라운 위에 웃는 모습을 그려보려 했으나 실패했다./사진=구단비 인턴기자
가족과 함께 생활한 덕택에 밥과 밑반찬은 늘 준비돼 있었다. 그러나 점심시간엔 알아서 끼니를 챙경야 했다. 다 큰 어른이 '밥 차려달라'고 떼쓰는 건 너무 한심하니까. 주어진 한 시간 내 점심을 차리고, 먹고, 설거지까지 끝내기는 빠듯했다. 출근을 했다면, 밥을 먹고 커피까지 여유롭게 마실 수 있었을 터. 볕 좋은 날, 회사 근처 청계천에서 가벼운 산책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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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문제는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다'는 것이다. 퇴근한 기분이 전혀 나질 않았다.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한 뒤 바깥 일은 현관 밖에 두고 들어왔던 개운함이 사라졌다. 같은 처지의 재택근무 중인 선배들도 "집에 있는데 집에 가고 싶다"는 말에 공감했다.
퇴근 후 청소기를 돌려줘야 집주인에게 사랑을 받으며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 가끔 화장실 청소는 덤이다. 양심고백을 하자면 깨끗해 보이려고 밝기를 조금 올렸다./사진=구단비 인턴기자
퇴근 후엔 열심히 청소기를 돌리고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고, 돌아올 집주인을 기다렸다. 영락없는 '도비(영화 해리포터 속 나오는 집 노예)'였다.
퇴근 기분 내는 '3가지 방법' 공유합니다
문 앞에 붙여둔 근무시간 안내표. 출퇴근 시간이 남들보다 조금 이른 편이다./사진=구단비 인턴기자
1) 업무용 복장 갈아입기
먼저 업무용 복장을 따로 준비한다. 잠옷에서 업무용 복장으로 갈아입고, 업무가 끝나면 다시 잠옷으로 갈아입으면서 퇴근 후 슬랙스를 벗어 던지던 쾌감을 떠올린다. 이러나저러나 같은 '홈웨어 to 홈웨어'지만, 왠지 느낌이 다르다.
2) 방문 앞 근무시간 붙여두기
가족들이 근무시간에 "10시에 마스크 선착순 판매라는데 좀 사다줘" "지금 나가는데 설거지 좀 해 놔" 등의 부탁을 하거나, 잡담을 시도하면 난감하다. 그래서 문 앞에 근무시간과 '조용히 해달라'는 부탁을 적어뒀다. 사실 이건 '이 시간 동안은 일에만 집중한다'는 내 다짐이기도 하다. '침대가 폭신해 보인다' '보일러를 세게 틀고 따뜻한 방바닥에 눕고 싶다'는 욕망은 이겨내야 한다.
3) 집중 안 될 땐 뉴에이지 듣기
'사회적 거리 두기' 중인 윗집 아이들의 층간소음, 밥먹고 TV보는 가족의 생활소음이 참기 힘들 때면 음악이 필요하다. 가사가 있는 음악은 안 된다. 클래식이나 뉴에이지가 좋다. 가사없는 MR을 틀었다간 코인노래방을 내 방으로 소환한다. 절대 경험담은 아니다.
코로나19가 없는 일상으로의 복귀를 기원하며…
답답해서 나선 산책. 인적 드문 길을 마스크 끼고 걸었다. 지나가는 개에게 인사했지만 무시당했다./사진=구단비 인턴기자
직장인의 로망인 '재택근무'는 장점도 많지만, 일과 일상이 분리되지 않는 괴로움과 메신저로 모든 업무를 해결할 수 없다는 불편함 등은 큰 단점이다. 기사가 잘 안 풀릴 땐 선배에게 "도와주세요"라고 말로 건네던 시절이 그립다. 지난주 단 하루 출근해 선배들을 만났을 때 왜 이리 반갑던지.
모두에게 코로나19 없는 평범한 일상이 필요할 때다. 확진·사망 등의 안타까운 소식보단 완쾌·퇴원·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 등의 반가운 기사를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