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변·선동으로 병든 정치판, '선거'가 약이다

머니투데이 김예나 인턴, 정진우 기자, 강주헌 기자 2020.03.19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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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4.0' 열자][총론-下]

편집자주 대한민국이 맹목과 궤변, 막말 등으로 가득한 '타락한 진영의식'에 갇혀있다. 타락한 진영은 시위와 농성, 폭력 등을 일으키며 생산적 정치를 가로막는다.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타락한 진영을 없애고 '건강한 진영의식'을 회복해 대화와 협상, 타협 등이 가능한 정치를 만들어야한다. 그래야 '대한민국4.0'을 시작할 수 있다.

궤변·선동으로 병든 정치판, '선거'가 약이다


타락한 진영의식에 갇힌 '정치'…"투표로 출구 찾아줘야"
보수, 진보 등 진영은 가치를 토대로 논리를 갖춘다.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경쟁의 관계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파괴하려는 흐름이 생긴다. 타락한 진영 의식이다.

궤변, 막말 등으로 무조건적 믿음을 만들며 선전·선동한다. 대화를 거부한다. 타락한 진영 의식이, 오염된 진영 논리가 대한민국을 병들게 했다. 어느새 만성화되고 있다. 만병통치약은 없다. 행태, 제도, 의식 등 전반의 노력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정치인·시민사회·언론이 개혁에 뜻을 모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민주정치의 관건은 ‘설득’

민주주의는 다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렇다고 수적으로 많다는 게 옳고 그름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수는 언제나 변한다. 또 누구도 전능하지 않고, 무능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누군가 전능하다면 민주주의는 필요없다.



진영이 ‘경쟁’, ‘타협’ 등을 통해 대안을 찾는 것은 민주주의 대표적 모습이다. 반면 타락한 진영 의식은 항상 옳다고 주장한다. 옳다는 것을 외치려면 궤변, 선동이 필요하다. 보편적 상식에 어긋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타협을 꺼리는 것을 넘어 타협을 변절, 배신으로 간주한다. 다른 가치를 존중해야 타협이 가능한데 철저히 거부한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마크 릴라의 책 ‘더 나은 진보를 생각하라’를 인용하며 “지향하는 바를 드러낸 뒤 그것을 위반하면 나라 망할 듯 외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정치의 관건은 설득이지 자기표현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진영 논리가 오염되면 진영을 독점하게 돼 전문가가 배제된다”며 “전문가가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건강한 진영 의식을 자리잡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궤변·선동으로 병든 정치판, '선거'가 약이다
◇‘가짜뉴스’로 싸움 부추기는 미디어…언론개혁 필요

언론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결정치 구도에 둥지를 튼 언론이 싸움을 부추기는 듯한 보도를 쏟아내며 진영 의식의 타락에 일조했다는 진단에서다.

박창환 정치평론가는 “그간 언론은 시청률 높은 보도에 집중해 문제의 본질을 성찰하지 못했다”며 “좌우 진영논리를 벗어난 고민지점을 언론이 짚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유튜브 등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도 자극적인 보도 경쟁을 부추기는 계기로 꼽혔다.

‘클릭 수’를 올리기 위한 유튜브발 가짜뉴스,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매체간 속보 경쟁 등이 극단층의 싸움을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뉴미디어의 영향력이 확대되면 정치인들은 타협하고 싶어도 극단층의 포로가 된다”며 “소셜미디어상의 가짜뉴스 폐해를 줄이기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로섬 게임’ 부르는 정치권 ‘승자독식주의’…정당민주화·개헌으로 풀어야

제도적으로 우리 정치의 ‘승자독식주의’를 청산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막강한 권력이 쏠린 권력구조를 개선하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란 지적이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정권을 놓치면 죽는다’는 불안감을 낳았고, 불안해진 여야가 정치를 ‘전쟁’처럼 여기게 됐단 이유에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인사권과 예산권, 정책결정권 등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현재 대통령 중심체제가 진영 갈등 문제의 근원”이라며 “반복되는 정권 교체와 국회 교체에도 진영 대결이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상헌 정치평론가도 “현행 대통령제는 한 진영이 권력을 장악하는 제로섬 게임”이라며 ‘내각책임제’나 ‘대통령 4년 연임제’로의 개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막강한 권력을 국회와 나누거나, 연임을 노리는 대통령이 첫 임기를 긴장 속에서 살게 해야 견제와 균형이 이뤄진다는 뜻이다.

권력구조 개편은 필요하지만, 개헌엔 신중해야한다는 시각도 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리스크가 크고 자칫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개헌 대신 대통령의 인사권을 제한하는 방법이 어떨까 한다”며 “예를들어 2000개가 넘는 공공기관장 인사를 대통령이 아닌 다른 제도를 통해 권력 분산 효과를 내는 것이다.

‘코드 인사’, ‘물갈이 인사’ 논란이 사라지면 야당의 무조건 반대도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국회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소수 강경파가 각 정당의 리더가 되면서 당 내부의 여러 의견이 수용되지 않는 당론정치 문화가 생겼다”며 “당내 민주화로 온건파 의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다수 지지자들에게 귀 기울이는 리더십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제21대 총선을 한달 앞둔 3월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선거관리위원회 안내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제21대 총선을 한달 앞둔 3월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선거관리위원회 안내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타락한 진영의식’ 출구는 결국 선거…“극단층 목소리 눌러야”

타락한 진영 의식은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단 분석도 있다. 바로 ‘선거’다. 이원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투표율이 올라가면 정치인들을 긴장하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권자의 투표율이 높아지면 평소 ‘과격파’에 가려 보이지 않던 중도층의 영향력이 커진다.

숨죽여 온 온건파가 선거를 통해 진짜 민심을 가리키면, 진영 싸움에 여념 없던 정치인도 각성하게 된다. 사안에 따라 합리적으로 움직이는 전문가 그룹이 유권자와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양쪽 모두에게 신뢰 받는 정치 전문가가 생겨나야 선거를 앞둔 유권자가 ‘준거의 틀’을 마련할 수 있어서다.

박진 국회 미래연구원장은 “진보와 보수 양쪽 진영에 치우치지 않은 전문가 그룹이 필요하다”며 “시시비비를 가려줄 전문가 그룹이 생기면 ‘내 편만 옳다’는 유권자들의 태도도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진영 갈등의 주체와 책임이 어느 부분의 무엇이고, 또 누구인가를 먼저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분석해야 한다”며 “그 후 비로소 합리적 이성적 해법과 해답의 도출이 가능하다. 결코 감정적, 현상적, 즉흥적 물음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궤변·선동으로 병든 정치판, '선거'가 약이다
정치에도 "쇼미더머니"..20대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
지난해 서초동과 광화문엔 각기 다른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이 몰렸다. ‘타락한 진영 의식’이 만들어 낸 2개의 광장이다. 그런데 이 광장엔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1990년대생, 20대가 빠졌다. 20대는 건전하지 않은 진영에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보수와 진보의 특정 진영에 편중된 어느 한 쪽도 편들지 않는다.

한국갤럽이 지난 2월20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18~29세 가운데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층’은 47%에 달한다. 20대 청년 2명 중 1명은 국회 안 어느 편에도 공감하지 않는다.
◇정치에도 ‘Show me the money’…진영 대신 ‘실용성’ 따지는 20대
20대의 관심사는 ‘자신의 삶과 미래’다. 이들은 진영에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대체 어느 편이 이익을 가져다 주는지’를 묻는다. 학업·직업상 경쟁에서 게임의 룰을 지키는 ‘합리성’에 엄격한 것도 90년대생의 특성이다. 대내·외 경기 악화로 지속되는 고용 한파, 치열해진 입시·취업 경쟁 등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합리가 체질’인 20대에겐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하다. 정책 효과에 공감해도 다다르는 과정이 부당하면 반발한다. 지난해 7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조사에 따르면 검찰개혁에 찬성하는 20대는 71.5%로 전 연령대에서 제일 높았다.

반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비리 의혹이 일자 20대는 ‘공정성’에 어긋난다며 반발했다. ‘조국 사태’에 침묵하는 정의당에게도 등을 돌렸다.
궤변·선동으로 병든 정치판, '선거'가 약이다
◇‘패키지는 안 사요’…‘퉁’ 쳐서 지지하는 진영 vs 정치현안 ‘PICK’하는 20대

진영은 20대에게 실용성이 떨어지는 ‘패키지 상품’에 가깝다. 그들에게 ‘진보’는 탈원전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에 모두 찬성하고 ‘조국이 곧 검찰개혁’이라 입을 모으는 무리다. ‘보수’는 현 정부의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대응 정책을 한결같이 비판하고 미래한국당과 같은 꼼수 위성정당 창당에 박수를 보내는 세력이다.

어느 진영이든 여러 현안에 ‘묻지마식 지지’를 보내는 셈이다. 이런 ‘패키지식’ 진영 정치는 20대의 공감을 사기 어렵다. ‘내편의 승리’를 위해 결집시키려는 ‘타락한 진영 의식’은 ‘올드’하다. 막말·시위·농성 등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모든 이슈를 하나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궤변이 몸에 맞지 않는다. 20대는 ‘내 삶’과 먼 이슈까지 나서서 편들 필요가 없다고 본다. 주어진 여행 코스를 그대로 이동하는 ‘패키지 상품’을 외면하고 자유여행을 떠나는 청년이 많듯, 취업·결혼·환경·부동산 등 원하는 이슈만 골라 선별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면서도 젠더·환경·기후 등 이슈의 폭은 더 넓다.
◇“정치권, 삶에 맞닿은 정책을 고민해야”
최근 무당층을 공략한 의제정당 창당 ‘붐’도 20대의 이런 생각과 무관치 않다. 4.15 총선을 앞두고 최근 2달간 27개 ‘미니정당’이 쏟아졌다. 여성과 환경, 규제개혁 등 ‘원포인트’ 의제를 콕 집어 총력을 기울이는 정당이 상당수다. ‘같이오름’, ‘시대전환’ 등 청년이 청년 당사자의 정치를 위한 정당을 세우는 사례도 많아졌다.

국회가 정쟁에 매진하는 대신 결국 ‘삶’과 맞닿은 정책을 생산할 필요가 있다는 방증이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이 있는 20대가 기존 진영정치에서 희망을 찾지 못해 선택을 유보한 채 남아있는 것”이라며 “정당들은 퇴행적 막말 등을 혁신하고 20대에게 절박한 문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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