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면 ‘기술’, 남이 하면 ‘꼼수’다. 여야는 각 지지층에 기대 기술과 꼼수 개발에만 힘쓴다. 협상의 부재는 정치권 특유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로 정당화된다. ‘타락한 진영의식’은 세력을 키운다.
제21대 총선을 한달 앞둔 3월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선거관리위원회 안내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지난해 국회의 ‘기술’은 이른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에서 시연됐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국회 곳곳에서 농성을 펼쳤다. 민주당 의원들의 법안 제출과 회의를 저지하는 것이 1차 목표였다.
법안이 팩스 등을 통해 전달되자 서류 일부를 집어들었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열릴 예정이었던 회의장은 점거·봉쇄됐다.
국회법 165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국회의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부근에서 폭력행위 등을 해선 안 된다. 같은법 166조에는 165조를 위반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부근에서 △폭행 △체포·감금 △협박 △주거침입·퇴거불응 △재물손괴의 폭력 행위를 하거나 △이같은 행위로 의원의 회의장 출입이나 공무 집행을 방해한 사람은 5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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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살라미 국회’로 필리버스터 무력화, 4년전에는… 더불어민주당은 ‘살리미 국회’라는 ‘신기술’을 선보였다. 소수파에 보장된 ‘필리버스터’(filibuster·무제한 토론)를 무력화하기 위해서다. 필리버스터는 국회법 106조의2에 따라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서명한 요구서가 의장에게 제출되면 발동된다.
우선 민주당은 ‘회기 쪼개기’에 나섰다. 헌법 47조에 따르면 임시회의 회기는 30일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을 뿐, 국회법 등에서도 최소일에 대한 규정은 없다.
임시회 일정을 최소한으로 잡고 폐회한 후 곧바로 임시회를 소집해 필리버스터 법안들을 즉각 표결 처리하는 전략이다. 국회법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다.
국회법 106조의2에 따르면 필리버스터 중에 해당 회기가 끝나는 경우 무제한 토론이 종결된 것으로 간주된다. 이 경우 해당 안건은 다음 회기에서 지체 없이 표결해야 한다.
야당 시절 필리버스터를 보장받았던 민주당이 집권 후 태도를 바꿨다는 비판을 받았다. 민주당은 2016년 2월 정의화 국회의장이 이른바 ‘테러방지법’을 직권 상정하자 52년만에 본회의 필리버스터를 가동했다. 약 9일간, 192시간여에 달하는 필리버스터를 통해 야당의 입장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데 힘썼다.
협상이 사라지면 ‘타락한 진영 의식’이 대신한다. 극단의 목소리가 당연시된다. 합리적 대화와 타협, 양보는 상대의 논리와 의견을 경청해야 가능하다. 지금 국회에선 협치와 타협이 가능한 정치가 불가능하다.
박진 국회 미래연구원장은 “‘바트나’(BATNA·협상 결렬 시 최고 대안)가 존재하지 않으면 굳이 타협할 필요가 없어진다”며 “협상을 깨는 것이 자기 진영의 지지자들의 호응을 받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협상을 깨면, 그 당사자가 불리해야 한다. 그래야 타협할 마음을 먹게 된다”면서 “무리한 주장을 해서 협상을 깨는 정당이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