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절박함이 만든 명작…꺼지던 엔진이 뛴다

머니투데이 이건희 기자, 유영호 기자, 우경희 기자, 최석환 기자 2020.03.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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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삼성 다시 달린다(종합)

"불안함이 탄생시킨 명작"…일하고 싶다는 르노삼성
[MT리포트]절박함이 만든 명작…꺼지던 엔진이 뛴다


절차탁마(切磋琢磨). 르노삼성자동차가 지난 9일 출시한 세단형 SUV(다목적스포츠차량) 'XM3'가 최근 소비자들로부터 받는 평가를 보면 떠오르는 단어다. 르노삼성이 4년 동안 다듬고 개발한 신차 XM3에 소비자들은 '가성비 최고'라는 수식어를 안겼다.

지난해 차량 판매와 노사관계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르노삼성이다. 그러나 XM3 출시를 기점으로 달라졌다. 지난달 20일 사전계약을 시작한 뒤 3주 만에 1만1000대 계약을 돌파했다. 2000년 르노삼성으로 국내에서 첫 영업을 시작한 이래 최대 성과다. 특히 한국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의 물량공세를 뚫고 이뤄낸 결과에 르노삼성 임직원이 모두 흥분하고 있다.



르노삼성은 올해 4만대 수준으로 예상했던 XM3 판매량 확대가 확실시 되면서 당초 잡았던 내수 판매 목표(10만대)도 수정할 계획이다.

르노삼성자동차가 28일 오전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19서울모터쇼 미디어공개행사에서 'XM3 인스파이어 쇼카'를 공개하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르노삼성자동차가 28일 오전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19서울모터쇼 미디어공개행사에서 'XM3 인스파이어 쇼카'를 공개하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이같은 XM3 초반 흥행에도 불구하고 르노삼성의 상황은 최악이다. 업황 부진에 노사 갈등까지 겹쳐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2017년 연간 27만6808대(내수 10만537대+수출 17만6271대)로 국내 완성차 5개사 중 유일하게 성장하며 최전성기를 구가했지만 2018년 22만7577대(내수 9만369대+수출 13만7208대), 지난해 17만7450대(내수 8만6859대+수출 9만591대)로 매년 판매량이 급감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온 나라의 소비 심리가 꺾였고 현대·기아차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대응할 힘도 달리는 게 현실이다.


XM3에 거는 르노삼성의 기대가 더 절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가성비 최고 XM3가 르노삼성의 성공 신화를 만들어준 효자 모델 중형 SUV '로그'를 이어 국내·외에서 대박을 낼 수 있거둘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르노삼성의 정상화엔 큰 걸림돌이 있다. 현 집행부 노조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수년째 임금협상을 벼랑 끝까지 몰고가더니 이제는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하겠다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노조는 대규모 파업으로 부산공장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면서 르노 본사의 로그 위탁 수출물량 생산이 계속 줄어들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최근 부산공장을 찾은 호세 비센트 드 로스 모조스 르노그룹 부회장도 XM3 유럽 수출 생산물량 배정과 관련해 “노사가 임단협 협상을 빨리 끝내야 한다”고 사실상 최후통첩을 했지만 마찬가지다.

이런 노조를 지켜보는 임직원들의 마음은 타들어간다. 한 조합원은 "투쟁에도 시기가 있다"며 "XM3라는 명작을 만들어 수출물량을 확보할 기회를 맞았는데 노조가 대안 없이 강성투쟁만 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자동차업계가 초유의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회사 내부의 결속"이라며 "하물며 노노갈등까지 발생한다면 가뜩이나 실적이 반토막 난 르노삼성 입장에선 감당하기 어려운 악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강서구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 내에서 근로자들이 작업 하는 모습./사진제공=뉴스1부산 강서구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 내에서 근로자들이 작업 하는 모습./사진제공=뉴스1
이건희·유영호·우경희·최석환 기자

4년 매달린 역작 'XM3'..개발자가 꼽은 흥행비결 3가지는
[MT리포트]절박함이 만든 명작…꺼지던 엔진이 뛴다
꼬박 4년이 걸렸다. 르노삼성자동차가 'XM3'를 세상에 내놓기까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2016년 프로젝트를 시작한 뒤 공식 출시일인 지난 9일까지 XM3 개발진은 한시도 긴장을 풀지 못했다. 회사를 살릴 역작을 만드느냐, 아니면 개발진만 애착을 갖는 평범한 차를 만드느냐.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차량 개발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개발진이 걱정했던 소비자의 마음이 끝내 움직였다. 지난달 20일부터 XM3 사전 계약을 실시한 이래 단 3주 만에 계약 대수 1만1000대를 돌파했다. 이런 계약 속도는 르노삼성이 출범한 2000년 이래 가장 빠른 수치다.

더욱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온 나라의 소비 심리가 꺾인 상황에서 XM3 판매량은 개발진 자신들도 놀랄 만한 성과였다. "제품만 잘 만들면 어떤 상황이라도 수요는 있다"는 이 불변의 법칙이 코로나 창궐 상황마저 뚫었다.

그렇다면 XM3는 과연 어떤 이유로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판매량이 고공행진 한 것일까.

특히 차를 가장 잘 안다는 XM3 개발진의 인기 비결을 듣기 위해 지난 13일 이들을 만났다. XM3의 내장·외장·색상 디자인을 직접 개발한 유병준·오충선·하태훈·김민영 수석디자이너 4인방과 최상규 XM3 개발 총괄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만나자마자 XM3의 인기 이유를 단 3가지로 정리했다.

◆ 1.국산차 브랜드에 없는 '디자인'

'XM3' 개발에 참여한 실무진 모습. 왼쪽부터 최상규 XM3 차량 개발 총괄, 유병준·김민영·오충선·하태훈 르노디자인센터서울 수석디자이너 모습. 차량은 지난해 서울모터쇼에서 소개된 'XM3 인스파이어' 쇼카. /사진제공=르노삼성자동차'XM3' 개발에 참여한 실무진 모습. 왼쪽부터 최상규 XM3 차량 개발 총괄, 유병준·김민영·오충선·하태훈 르노디자인센터서울 수석디자이너 모습. 차량은 지난해 서울모터쇼에서 소개된 'XM3 인스파이어' 쇼카. /사진제공=르노삼성자동차
첫째, XM3는 세단과 SUV(다목적스포츠차량)의 특성을 모두 갖춘 희귀한 차량이다. 쿠페형이라고 표현하지만 세단형 SUV에 더 가깝다. 쿠페는 2도어가 많지만 XM3는 세단처럼 4도어를 채택했다.

또 SM6와 QM6 등 기존의 차량이 가진 '패밀리룩'을 지키면서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을 구현했다. 국산차 사이에서 독보적인 디자인을 갖추면서 해외에서 봐도 부족하지 않은 모습을 만들어냈다.

르노그룹의 디자인을 총괄하는 로렌스 반 덴 애커 부회장도 XM3를 두고 '아주 매력적인 차'(Very attractive car)라는 평가를 내렸다는 게 실무진의 이야기다.

◆ 2.까다로운 한국 소비자에 '실용성' 맞췄다

XM3 외관 모습. /사진제공=르노삼성XM3 외관 모습. /사진제공=르노삼성
XM3는 한국 시장을 겨냥해 만들어진 국산차다. 앞서 러시아 시장에 출시된 차량 '아르카나'가 참고 대상이지만 개발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차를 만들었다. 개발 키워드가 '진화'가 아닌 '혁신'이 된 셈이다.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의 취향을 겨냥해 개발하며 집중한 건 '실용성'이다. 일례로 2단 구조의 트렁크로 동급 최대인 513리터를 확보하기 위해 개발진이 직접 종이박스를 잘라 구조를 직접 확인하기까지 했다.

단순히 그림을 그려 시제품 업체에 맡길 일도 직접 하며 소비자 입장을 고려한 시도였다. 모바일 형식에 맞춘 세로형 디스플레이, 대형 컵홀더와 뒷좌석에 키 180㎝의 사람이 앉아도 무난한 높이와 너비도 한국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시도였다.

◆ 3.세대를 가리지 않고 접근 가능한 '가격'

XM3 내부. /사진제공=르노삼성XM3 내부. /사진제공=르노삼성
XM3는 30대와 40대를 겨냥해 초기 타깃으로 만들어졌다. 이 연령대는 가격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풀옵션을 해도 3000만원 미만으로 책정했다.

합리적인 가성비 덕분인지 최근 XM3는 사회초년생과 60대 이상 액티브 시니어들도 관심을 보이는 차량이 됐다.

여기에 르노와 다임러가 협업해 탑재한 가솔린 엔진을 바탕으로 XM3는 13km/l(리터) 수준을 뛰어넘는 연비와 동력 성능도 갖췄다.

이렇게 만들고 보니 생애 첫 차부터 두 번째 차량까지로 고객의 선택지가 넓어졌다. 지금 같은 시장 반응이라면 올해 내수 목표인 연 4만대 판매 달성은 물론 그 이상도 기대된다는 게 개발진의 기대다.

◆ "XM3, 해외 어디 내놔도 부족하지 않다"

XM3 디자이너들이 공개한 XM3 스케치. /사진제공=르노삼성XM3 디자이너들이 공개한 XM3 스케치. /사진제공=르노삼성
XM3를 탄생시킨 이들의 다음 목표는 어디일까. 당연히 전 세계로 시장을 넓히는 것이다. 개발진은 부산공장에서 생산되는 XM3는 해외에 수출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부산공장의 경쟁력과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소인 르노테크놀로지코리아(RTK)의 실력이 합쳐져 만든 한국적인 모델. 이 정도라면 세계 어디를 가도 팔릴 수 있다는 게 르노삼성의 자신감이다. 현재 르노삼성은 글로벌 본사의 XM3 수출 물량 배정을 잔뜩 기대하고 있다.

개발진은 RTK가 르노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실력도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최 총괄은 "XM3 때문만이 아니고 원래부터 RTK의 그룹 내 위상이 높아 핵심 센터와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유 수석디자이너도 "RTK 내 디자인센터는 디자인부터 양산 모델까지 독립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곳"이라며 "구성원들도 해외 등 다방면의 경험을 갖췄고, 디자인도 그룹 전체에서 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좋은 차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유럽 1위 전기차에 풀체인지 기대작…역대급 신차로 흥행 잇는다

[MT리포트]절박함이 만든 명작…꺼지던 엔진이 뛴다
르노삼성은 XM3 흥행몰이를 이어받을 역대급 신차 5종도 줄줄이 내놓는다. 올 상반기 중 순수 전기차 '조에(ZOE)'와 유럽에서 '캡처'라는 브랜드로 팔리는 QM3 풀체인지(완전변경) 모델을 선보인다. 특히 3세대 진화를 마친 '조에'는 누적 판매대수가 20만대를 돌파한 유럽 판매 1위 전기차다. 한 번 충전으로 395㎞를 달릴 수 있어 국내에서도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 소형 SUV의 붐을 불러온 QM3는 르노그룹의 '퓨처 투 드라이브'(2017~2022년) 전략의 핵심 모델 중 하나다. 르노의 최신 디자인과 함께 자율주행과 관련한 다양한 최신 기술이 대거 적용되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 파워트레인이 추가될 전망이다.

르노삼성은 하반기에도 상품성이 개선된 'QM6'와 'SM6', 마스터(밴·버스) 신모델 등을 출시할 예정이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차별화된 서비스와 신차의 상품성이 더해진다면 XM3과 같은 예상을 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이런 분위기라면 내수 판매 10만대 돌파 목표도 상향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용인(경기)=이건희 기자, 최석환 기자

"민주노총 전환 큰 관심없어, 일하고 싶을 뿐"
2019년 2월 파업 당시 르노삼성 부산공장./사진=김남이 기자2019년 2월 파업 당시 르노삼성 부산공장./사진=김남이 기자
"말하긴 조심스럽지만, 현재로선 조합원들이 민노총 전환에 관심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전면파업 때도 스스로 정상 출근한 조합원들의 뜻을 읽어야 한다."(한 르노삼성 노동조합 조합원)

"임금협상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기에 집행부는 왜 혼란과 분열을 조장하는 (민주노총으로 전환 추진) 성명서를 냈는지 모르겠다."(노조 대의원 9인 공동성명)

르노삼성 노조가 갈라진다. 창사 이래 최단기간 1만대 판매를 돌파한 XM3의 인기몰이에도 조합원 간 갈등 속에 자축의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르노삼성 노조 집행부는 지난 9일 "코로나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XM3의 성공적인 출시를 위해 당분간 단체활동을 자제하고 교섭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 집행부가 이와 별개로 민노총 금속노조로 변경하기 위한 조합원 총회 일자를 공지한다는 방침을 고수, 갈등이 확산될 조짐을 보였다.

그러자 노조 대의원 9인은 성명서를 내고 "금속노조 가입은 임금협상과 관계가 없다"고 공개 반발했다. 이후 대의원 3인이 추가로 반대 목소리를 내자 박종규 노조 위원장은 성명서를 통해 "임금협상에 집중하겠다"며 민주노총 가입을 유보했다.

조합원들은 대부분 노조 상황에 대해 분개하면서도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그러면서도 한 노조원은 "대의원들이 집행부를 저렇게 공격하는 모습이 정상적이냐"며 "투쟁을 계속했으면 나아지는 게 있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보람이 없는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조합원들의 우려는 보다 근본적인 부분에 맞닿아있다. 투쟁에도 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집행부의 금속노조 가입 강행 움직임에 이례적으로 노조 대의원들이 반기를 들고 나선 것 역시 이런 절박감이 반영된 움직임일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일할 때라는 것이다.

또 다른 조합원은 "'무조건 노조가 문제'라는 식으로 몰고 가서는 안된다"고 하면서도 "스페인에 있는 르노 공장이 부산에서 만드는 물량을 가져가려 하는데,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을 먼저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경희 기자

끝모를 경쟁력 추락..르노삼성 부산공장 무슨일이?
[MT리포트]절박함이 만든 명작…꺼지던 엔진이 뛴다
글로벌 자동차기업인 르노그룹에게 한국의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은 ‘아픈 손가락’이다. 그룹 소속 생산공장 46곳 중 한때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생산성이 노사 갈등으로 수년만에 급락했기 때문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생산성 혁신 없인 공장 존폐를 가늠하기 힘든 수준까지 밀렸다. 끊이지 않는 르노그룹의 한국 철수론도 그 시작점은 여기에 있다.

뼈 깎는 구조조정으로 일군 수익성…노사갈등에 급감

르노그룹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리바이벌 플랜(회생 계획)’에 따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때 글로벌 공장들의 생산물량도 철저한 경쟁력 평가를 거쳐 다시 배정했다. 경쟁력 평가는 △품질(Q) △생산비용(C) △납기(T) △생산성(P) 같은 정량적 지표들을 중심으로 했다.

적자에 허덕이던 르노삼성은 이렇게 3년간 노사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치며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부산공장 생산성은 30% 이상 급증하며 수출용 닛산 로그의 위탁 생산물량을 배정받는 등 수익성 개선이 이뤄졌다.

르노삼성은 그 결과 2014년 16만 9854대 수준이던 부산공장 연간 생산량을 2017년 27만 6808대까지 끌어올렸다. 이 기간에 닛산 로그 생산량도 2만 6468만대에서 12만 3202대로 증가했다. 부산공장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하자 르노삼성은 2017년 4016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하지만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2018년 노사간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을 둘러싼 갈등이 깊어지며 급기야 노조 파업과 사측의 직장 폐쇄가 잇따랐다. 르노삼성은 또다시 끝을 모른 채 추락하기 시작했다.

품질 1위 지켰지만…생산비용 글로벌 꼴찌로 추락

그래도 한번 다져진 부산공장은 저력이 있었다. 평가 지표 중 품질 평가는 여전히 1위였다. 2014년부터 글로벌 생산공장 46개 중 부산공장이 품질 평가 1위를 놓친 적은 한 번도 없다.

문제는 생산비용과 납기, 생산성 같은 지표다. 부산공장 생산비용은 고임금 구조 탓에 46개 생산공장 중 꼴찌다. 부산공장과 경쟁력 다툼을 벌이는 스페인 공장은 시간당 인건비가 부산공장의 60% 정도로 낮고, 터키공장은 아예 30%에 그친다.

부산공장은 2018년과 2019년 대규모 파업으로 납기 평가도 큰 폭 하락했다. 이렇다보니 생산성 평가도 좋을 리 없다. 이 때문에 2015년 4위까지 올랐던 부산공장의 생산 경쟁력은 지난해에는 중하위권으로 추락했다.

생산 경쟁력이 떨어지는 공장으로 찍히자 르노그룹 본사가 배정하는 위탁 생산물량도 갈수록 줄었다. 부산공장의 닛산 로그 생산량은 지난해 6만9880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성기 생산량의 57% 수준이다. 그마저도 이달말로 위탁 생산 계약이 끝난다. 올해 닛산 로그 생산량은 1~3월 누적 기준 단 4000여대에 그친다.

13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광장에서 열린 '르노삼성자동차 노조 임금 협상 쟁취 결의 집회'에서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13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광장에서 열린 '르노삼성자동차 노조 임금 협상 쟁취 결의 집회'에서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 가동률 30%대…'생존' 위한 경쟁력 회복 시급

만약 글로벌 본사의 추가 생산물량 배정이 없다면 부산공장 올해 생산량은 연 10만대를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잔업과 특근을 고려한 부산공장 생산능력이 2교대를 가정할 때 26만대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현재 가동률은 38.5%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차 생산공장 손익분기점을 '가동률 70%'로 볼 때 현 상황이 지속되면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르노그룹이 한국시장에서 최초 출시한 XM3 같은 신차의 수출용 생산물량을 부산공장이 제대로 배정받지 못하면 공장 생존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현재 르노그룹은 XM3 유럽 수출 생산물량을 글로벌 공장 중에서 어디에 배정하느냐를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

부산공장이 유력한 후보지만 최근 노사 갈등으로 물량 배정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 르노그룹 메시지는 단호하다. 지난 1월 부산공장을 찾은 호세 비센트 드 로스 모조스 르노그룹 부회장은 “부산공장은 르노그룹 중에서도 생산성이 아주 좋았다”며 “지금 상황을 잘 넘겨 다시 그룹내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XM3 유럽 수출 생산물량 배정과 관련해 “노사가 임단협 협상을 빨리 끝내야 한다”고 밝혔다. 모조스 부회장이 르노그룹의 공장별 생산차량 배정을 총 지휘하는 그룹 2인자인 점을 감안할 때 사실상 최후통첩인 셈이다.

자동차 업계는 르노삼성 부산공장이 생산 경쟁력 향상을 위해 그룹 내 위상부터 정상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업계 관계자는 “르노그룹이 르노삼성차 노사 갈등으로 XM3 수출 물량 배정을 1년 넘게 미루면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닛산 로그 수출 생산물량을 배정받지 못하면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노조가 이런 상황을 지나치게 느긋하게 본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업계 관계자는 “르노그룹 입장에서 품질이나 신차 테스트베드로서 한국시장 중요성을 고려할 때 부산공장을 쉽게 포기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노조의 입장인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이미 성장세가 멈췄고 불확실성도 커지는 상황이어서 안이한 자세는 절대 금물이라는 지적이다.

유영호 기자

"디테일 파고든 XM3, 질리지 않고 오래갈 車“

개발자 5인 인터뷰

르노삼성자동차가 4년만에 내놓은 신작인 세단형 SUV(다목적스포츠차량) 'XM3'가 역대급 판매기록을 세우며 초반 흥행몰이 중이다.

성공 배경엔 뛰어난 상품을 내놓은 차량 개발진이 있다. 이들은 XM3의 성공을 확신했을까. 맡은 분야만큼은 자신 있었지만 소비자의 평가 앞에선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지난 13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르노테크놀로지코리아에서 XM3 출시 후 한숨을 돌린 개발진의 속내를 들어봤다. XM3의 내장·외장·색상·트림 등을 직접 디자인한 유병준·오충선·하태훈·김민영 수석디자이너 4인방과 최상규 XM3 개발 총괄이 그 주인공이다.

디자인·실용성·가격…XM3의 인기 비결

지난 13일 경기도 용인 르노테크놀로지코리아에서 진행된 XM3 개발진 인터뷰. 사진 오른쪽부터 유병준·오충선·하태훈·김민영 르노디자인센터 수석디자이너. 코로나19 여파로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인터뷰가 진행됐다. /사진제공=르노삼성지난 13일 경기도 용인 르노테크놀로지코리아에서 진행된 XM3 개발진 인터뷰. 사진 오른쪽부터 유병준·오충선·하태훈·김민영 르노디자인센터 수석디자이너. 코로나19 여파로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인터뷰가 진행됐다. /사진제공=르노삼성
-지금의 XM3 시장 반응을 예상했나.

▶오충선(내장 총괄)=맡은 디자인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최종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몰랐다. 그래서 다른 부서에 XM3 첫인상이 어떻냐고 많이 물어봤다.
▶김민영(색상&트림 디자인 담당)=차량을 오래 개발하다 보니 오히려 출시 때는 자신이 없기도 했다. 너무 오래 본 탓이었다.
▶최상규=상품성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까다로운 한국 시장이 새로운 차량 형태(세단형 SUV)를 받아들일지는 걱정이 됐다. 그러나 기우였다는 게 확인됐다. 소비자 중심으로 차를 만든 것이 좋은 반응으로 이어진 듯하다. 출시 후 미처 예상 못 한 이슈가 발생해도 빨리 대응할 수 있도록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XM3의 인기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유병준(외장 총괄)=외장 부분은 전체적인 질과 디테일을 고급화하려 애썼다. 쿠페형이 아닌 국산차 첫 세단형 SUV라는 차별점도 매력 요소다. 르노그룹은 디자인 핵심을 추출하는 능력이 강점이다. 그런 강점을 살려 질리지 않는 차를 만들었다.
▶오충선=기존 차량 진화가 아닌 혁신에 방점을 둔 것이 주효했다. 또 국내 소비자를 집중 겨냥해 차량을 새롭게 개발한 점도 중요했다.
▶김민영='잘 될 수 있을까' 했던 불안감이 인기의 비결인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형태를 소비자들이 받아들일까 고민하며 품질을 다듬은 과정이 많았다.
▶하태훈(내장 디자인 담당)=그렇게 곳곳의 디테일을 고쳤다. 넓어진 컵홀더 크기, 공간을 확대한 2단 트렁크, 뒷좌석 앉는 사람을 고려한 설계 등이 그렇다. 요악하면 세련된 디자인, 한국 소비자에 맞춘 실용성, 경쟁력 있는 가격까지가 인기 비결이다.

"'차박'도 가능한 XM3, 소비자들한테 배운다"

지난 13일 경기도 용인 르노테크놀로지코리아에서 진행된 최상규 XM3 차량 개발 총괄 인터뷰. 코로나19 여파로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인터뷰가 진행됐다. /사진제공=르노삼성지난 13일 경기도 용인 르노테크놀로지코리아에서 진행된 최상규 XM3 차량 개발 총괄 인터뷰. 코로나19 여파로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인터뷰가 진행됐다. /사진제공=르노삼성
-소비자 반응 중에 흥미로운 것이 있었나.

▶하태훈=뒷좌석 공간을 직접 확인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180㎝ 키를 가진 분이 넉넉히 앉는 모습이 이상적이었다. 쿠페형 모습을 갖춘 일부 차량의 경우 뒷좌석에 앉으면 고개를 꺾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XM3는 그렇지 않다.
▶최상규='차박'(자동차+숙박 : 차에서 하는 캠핑)을 아시나. 저는 XM3 소비자 반응을 보다 차박 개념을 배웠다. 뒷좌석을 최대로 눕혀서 차박이 가능하다는 리뷰를 보면서다. 사실 차박까지 고려하지 못하고 트렁크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넣은 기능인데, 덕분에 XM3의 새로운 효용을 배웠다.

-4년의 개발 기간, 부담도 크고 쉽지 않았을 텐데.

▶최상규=부담보다 책임감이 컸다. 그래서 질적으로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사실 일하다 보면 디자이너팀과 엔지니어팀이 서로의 요구를 두고 부딪치기 마련인데, 이번엔 의기투합을 잘했다. 자기 분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차 전체를 보고 협업을 많이 했다.
▶오충선=개발된 XM3를 보고 로렌스 반 덴 애커 르노그룹 디자인 총괄 부회장이 '아주 매력적인 차'(Very attractive car)라고까지 평가했다. 그래도 출시 후 평가는 소비자의 몫이라 초조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태훈=디자이너 입장이 아닌 소비자 입장에서 차를 계속 봤다. 어쩌면 불행 중 다행으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공유차보다 개인차 소유 욕구를 늘려 XM3 판매에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우리니까 할 수 있다…세계 협업도 가능"

XM3 주행 모습. /사진제공=르노삼성XM3 주행 모습. /사진제공=르노삼성
-XM3의 해외 수출 가능성 등이 있다고 보나.

▶최상규=충분히 성공 가능하다. 유사한 외형인 르노 '아르카나'가 러시아에 출시됐을 때도 유럽 다른 나라들의 반응은 '왜 이 차가 (우리나라엔)출시되지 않느냐'였다. XM3가 유럽에 나가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고, 바람을 더하면 다른 수출 시장에서도 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충선=국내에서도 기존 타깃인 30대와 40대를 넘어 사회초년생, 60대 이상 액티브 시니어까지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면 확장 가능성이 있다.

-XM3를 계기로 르노삼성 차량 개발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더해졌나.

▶유병준=이미 지난해 XM3 쇼카를 서울모터쇼에서 공개했을 때 한국에서 성공하면 전 세계에서 다 성공할 수 있다는 평가를 들었다. 또 디자인 측면에서 르노그룹은 높은 수준을 갖춘 회사다. 그룹 세계 각 센터 간 디자인 경쟁도 강하게 이뤄진다. 거기서 국내 센터는 상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 XM3도 기존 국산차에는 없는 새로운 디자인을 갖추지 않았나.
▶하태훈=함께 일하는 디자이너들 구성도 글로벌하다. 한국 분이지만 해외 경력을 갖추신 이들도 많다. 뛰어난 인력이 있어 좋은 차가 나올 수밖에 없다.
▶김민영=부산공장의 경쟁력도 중요했다. 부산이니까 이 품질을 생산할 수 있다는 평가도 들었다.
▶최상규=연구소인 르노테크놀로지코리아의 그룹 내 위상도 상당하다. XM3 이전부터 인정을 받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나아가 르노-닛산-미쯔비시 동맹체가 시너지를 내는데 우리도 참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용인(경기)=이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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