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 디자인기자
Q) 제 나이 올해로 63세인데, 이 나이에 사기결혼을 당해서 상담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네요. 1년 전 재혼을 했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이혼을 안 한 상태인데다 의처증까지 있네요.
제 나이 마흔 여섯 되던 해에 전 남편과 이혼을 하고 그 후부터는 식당일, 파출부, 청소일을 하면서 혼자서 살았습니다. 전 남편은 결혼 초부터 술만 마시면 돌변해서 욕하고 때리고 살림을 때려부쉈거든요. 걸핏하면 일 그만두고 생활비도 별로 안 줬고요. 아이가 다 크면 이혼한다고 마음에 새기고 살았지요. 아들이 커서 군대를 갈 무렵 그만큼 키웠으면 내 할 도리는 한 것 같아서 미련 없이 집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10개월이 지나도 혼인신고를 안 해주고 자꾸 미뤄서 캐고 물어봤더니 그제서야 아이들 엄마와 서류정리가 안 되어있다고 실토를 했습니다. 10여년 전에 집 나와서 따로 살고 있는 건 맞지만 이혼은 아직 안 했다는 거예요. 저를 감쪽같이 속인 거였어요. 저는 남자가 혼인신고를 해준다고 했기 때문에 같이 살기 시작한 거지, 만약 이혼 안했다는 걸 알았으면 절대 같이 살지 않았을 거예요.
그게 다가 아니에요. 같이 살아보니 이 남자가 의처증이 있는데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요. 제가 혼자 밖에 나갔다 오면 누굴 만나고 왔냐고 의심하면서 전화를 수십 통씩 해대고 갖은 욕을 퍼부어요. 얼마 전부터는 현관문에 자물통을 달아서 채우고 그 열쇠를 자기가 보관하고 있어서 이 남자가 열어주지 않으면 저는 밖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제가 아래층 사람이랑 바람을 피우면서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고 헛소리까지 합니다. 처음에는 어쩌다 한 마디씩 해서 그냥 넘겼는데 갈수록 헛소리하는 횟수가 많아지네요. 동네 사람들한테 들어보니 몇 년 전에도 다른 여자랑 살았는데 그 여자한테도 그래서 그 여자가 얼마 못 버티고 집을 나갔다네요.
이 남자랑 같이 살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서 무서운데, 돈이 없어서 집을 못 나가고 있어요. 알아보니 사실혼 관계라고 하더라도 헤어지게 되면 위자료와 재산분할청구가 된다고 하던데, 어떻게 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 남자한테 속아서 농락당한 게 너무 분하고 억울합니다. 형사처벌을 받게 하고 저를 속인 데 대한 보상을 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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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혼이더라도 법률혼과 똑같이 사실혼 관계가 끝날 경우에는 위자료와 재산분할청구가 인정되는 게 원칙이예요. 하지만, 선생님 경우와 같이 사실혼 당사자 중 한 명이 법률상의 배우자가 있는 경우에는 ‘중혼(重婚)적 사실혼’이라고 해서 일반적인 사실혼과는 다르게 취급받게 됩니다. 지금까지 나온 판결들을 살펴보면 중혼적 사실혼에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실혼 관계 해소에 따른 위자료와 재산분할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합니다. 선생님 경우처럼 사실혼 당사자의 별거기간이 긴 경우에도 역시 위자료와 재산분할청구가 인정이 안되고요. 이혼남이라는 남자의 거짓말에 속아서 중혼적 사실혼이 되어버린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많이 억울한 얘기지요.
그렇다고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고 유부남이 이혼했다고 속이고 동거를 하자고 한 점에 대한 증거를 확보해서 민사상 위자료 청구소송을 할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위자료 청구소송을 한다고 해도 위자료 액수가 많지 않을 거라는 거예요. 이혼사건의 경우 20년 정도 살아도 위자료 3000만원 넘기기가 어려우니까 선생님이 받을 수 있는 위자료는 그보다 훨씬 적을 걸로 짐작됩니다. 선생님이 속아서 동거하게 된 보상으로는 충분치 않을 거예요.
돈이 안되면 형사처벌이라도 받게 할 수 있을까요? 아쉽게도 이혼남이라고 속이면서 결혼하자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이 안됩니다. 예전에는 이런 경우 ‘혼인빙자간음죄’로 처벌이 됐는데 이 죄는 오래 전에 폐지됐거든요.
하지만, 현관문에 자물통을 채워서 선생님이 밖에 못 나가게 한 부분은 형사상 감금죄에 해당한 중대한 범죄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증거(현관문에 자물통을 채운 사진과 이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의 녹취 등)를 확보해서 사실혼 남편을 감금혐의로 형사고소할 수는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감금혐의로 형사고소하는 것이 남편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제재이고, 그 형사사건에서 합의금을 받는 방법이 가장 나아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선생님 남편의 상태가 상당히 심각해보인다는 거예요. 의처증 뿐 아니라 망상장애 증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혼사건을 하다보면 배우자가 제3자와 짜고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는 망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선생님 남편도 그런 증세를 보이는 것 같네요. 그럴 경우에는 배우자가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설득하고 변명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어요. 병 때문에 그런 거니까요. 정신과에 가서 치료받고 약을 복용하면 어느 정도 진정되긴 하는데, 자기는 정상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에 절대 병원에 안 갈 거예요. 이런 상태의 남편과 같은 집에 계속 사는 건 너무 위험하니 하루빨리 집을 나오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형사고소와 위자료 청구는 집을 나온 후에 진행해도 되니까요. 피해보상도 중요하지만 목숨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조혜정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