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팬데믹 선언…코로나 감염자수 집계 포기할까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20.03.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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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영의 속풀이 과학-(2)]팬데믹의 정의와 역사

코로나 19 이미지/김현정 디자이너코로나 19 이미지/김현정 디자이너


“호적 나이는 몇 살인데 진짜로는…”

예전에 자녀를 호적에 늦게 올리는 풍습이 있었다. 해방 전 태어난 부모님 세대가 이랬다. “원래 태어난 날은 언제인데 늦게 신고를 해서 오늘이 호적상 생일”이라고 말하는 경우를 간혹 본다. 당시 각종 전염병 창궐로 신생아 사망률이 높았던 게 주된 이유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전염병은 ‘천연두’였다. 마한시대에 한반도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데 당시 치사율이 30%에 이르렀다. 우리 정부는 천연두 박멸 사업을 실시했고, 1960년에 들어 이 전염병은 국내에서 자취를 감췄다. WHO(세계보건기구)도 1980년 5월 초 “전 세계에서 천연두가 사라졌다”고 선언했다. 천연두의 공포로부터 해방된 우리는 하지만 21세기 들어 신종 바이러스의 위협을 8~10년 주기로 받으며 ‘천연두의 악몽’이 재현되려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9일(현지시간)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유새슬 기자9일(현지시간)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유새슬 기자


WHO가 선언한 ‘팬데믹’은 무엇
지난해 말 중국 우한시에서 처음 확인된 코로나 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는 약 두 달 만에 전 세계 6대륙으로 확산됐다.

확진 환자가 11만 명을 넘겼고 사망자는 4300명을 넘어섰다. 확진자가 발생한 국가는 최소 118개국이며, 중국·일본·한국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신규 감염자는 이제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다. 이쯤되자 WHO는 11일(현지시간) 코로나 19의 '팬데믹'(pandemic)을 선언했다. ‘팬데믹’이란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며 “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첫 번째 팬데믹”이라고 말했다.


팬데믹은 WHO의 전염병 경보단계 중 ‘최고 위험 등급’이다. 두 지역 이상에서 지역감염이 확인돼 국제적 공조가 필요한 질병을 의미한다. WHO는 전염병 위험도에 따라 전염병 경보단계를 1단계부터 6단계로 나누고 있는데 팬데믹은 6단계에 해당한다.

WHO는 2005년 5월 동물 유래 인플루엔자를 대상으로 전염병 경보 6단계를 규정해 관리했다. 우선 1단계는 동물에게만 바이러스 전염이 이뤄진 상태다. 2단계는 동물 간 전염을 넘어 소수의 사람에게도 감염이 가능해진 상태를 말하며 이때부터 팬데믹의 위험이 실질적으로 존재한다. 3단계는 사람들 사이에서 감염이 늘어나는 상태로, 사람들 간 밀접한 접촉이 있는 상황에서 간헐적 감염이 이뤄지지만 지역사회 유행은 일으키지 않는 상태를 일컫는다.

4단계는 사람들 간 전염이 확산 국면을 맞게 되면서 세계적 유행이 발생할 초기 단계를 이른다. 5단계는 감염병이 널리 퍼져 최소 2개국에서 병이 유행해 팬데믹에 임박한 상태를 뜻한다.

역사적으로 가장 악명이 높았던 팬데믹은 14세기 중세 유럽 인구 3분의 1의 생명을 앗아간 흑사병이다. 이어 ‘스페인 독감(1918년, 사망자 약 2,000~5,000만 명 추정)’, ‘홍콩 독감(1968년,사망자 약 80만 명 추정)’ 등이 있으며, WHO가 1948년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팬데믹을 선언한 경우는 이번 코로나 19와 홍콩 독감, 2009년 6월 신종플루로 불린 인플루엔자 A(H1N1)가 있다.

특히, 신종플루의 경우 2009년 6월 팬데믹을 선언한 직후 보란 듯이 지역사회 유행이 폭발적으로 이뤄졌다. WHO가 전 세계 신종플루 감염자수 집계를 무의미하다며 포기할 정도였다.

세계 각국은 신종플루에 대응하기 위해 감염자를 격리하고 효과적 백신 개발에 집중 투자했다. 그렇게 백신 개발을 시작한 4개월째 접어든 10월 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신종플루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현재 신종플루는 상재하는 전염병 즉 엔데믹(endemic)으로 간주, 일반독감으로 분류해 매년 동절기 직전 접종하는 계절 독감 백신에 포함돼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자료사진에볼라 바이러스/자료사진
"에볼라·사스·메르스발(發) 팬데믹 위협 여전히 있다"
지난 2014년, 서아프리카 기니에서 발생한 에볼라는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등 인근 국가로 퍼져 나갔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50%에 달했다. 팬데믹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지만 에볼라는 비행기 운행 중단 등의 조치를 신속히 실시한 덕에 서아프리카 지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감염자의 신체에서 흘러나온 체액에 접촉하지 않는 한 전염 위험성이 낮기 때문에 이 바이러스는 환자 통제와 국경 검역만으로 완벽한 통제가 이뤄졌다.

2002년 중국 광둥성에 출현한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는 다음 해 홍콩발 비행기를 타고 순식간에 38개국으로 퍼져나갔다. 지역사회 유행으로 확산됐지만 WHO는 끝까지 팬데믹을 선언하지 않았다.

2012년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는 중동지역에서 처음 출연했다. 다행히 중동 이외 지역으로의 대확산은 일어나지 않았다. 중동 외 지역에서의 대규모의 메르스 유행은 2015년 한국이 유일했다. 하지만 국내 유입된 메르스는 두 달이 지나지 않아 통제됐다. 사람 간 전염력이 사스보다 약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중동지역에선 지금도 메르스가 유행하고 있다.

에볼라, 사스, 메르스 모두 언제든 돌연변이를 일으킬지 모르는 RNA(리보핵산) 바이러스다. 전문가들은 “에볼라·사스·메르스 바이러스가 치명성을 낮추고 전염성은 높이는 방향으로 변이를 일으키면 팬데믹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경고한다. 신·변종 바이러스가 팬데믹을 일으키기 위해선 강한 전염력을 갖춰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숙주 치사율을 낮춰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 코로나19가 이 조건을 만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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