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식당', 곱창이 뭐길래?

이현주(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0.03.0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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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유행 음식 추적기

늘 보기만 해도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 같은 홍진영이 SBS 예능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곱창을 먹고 있다. 그 자리에 더없이 예쁜 정인선까지 합세해 곱창을 입에 넣는다. 둘 다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곱창 마니아란다. 역시, 미녀는 곱창이었던 것인가!



음식에도 유행이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음식에 나이도 있다는 사실을 요즘 실감한다. 물론 이는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며 음식에 대한 선호는 당연히 연령과 무관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미각만이라도 젊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한 중년 아줌마의 푸념이다.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음식 유행을 알려면 트렌드에 민감해야 하고, 그러려면 당연히 SNS에 능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내게 제일 낯선 인스타그램이 일상화돼 있어야 한다. 물론 중년의 벗인 TV가 있지만 이미 TV 프로그램에 나올 정도면 젊은 층에서는 이미 낡은 유행이기 십상이다. 결국 쉬운 길은 젊은 후배들에게 의지하는 것.



유행 음식에 대한 첫 시도는 흑당버블티였다. 벌써 두어 해 전. 돈이 있어도, 시간이 없으면 못 먹는다는(사실 유행 음식 대부분이 그렇다) 그 음료의 유혹적인 자태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짙은 검은색 액체에 연기처럼 아련히 퍼지며 갈색으로 물들어가는 흰 우유. 게다가 백설탕과는 다른 고상하고 품격이 느껴지는 ‘흑당’이란 단어는 또 얼마나 감미롭게 입에 착 감기는지. 대충은 짐작은 가지만 도무지 어떤 맛일지 먹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었다.

사진=방송캡처 사진=방송캡처


그런데 유행하는 음식들의 문제는 ‘아무데서나’ 먹으면 안 되고 꼭 ‘거기’서 먹어야 한다는 것. 행동반경이 나처럼 좁은 사람들은 매우 큰 각오와 열정이 있어야만 맛볼 수 있으니…. 결국 한참 지나고 나서, 그것도 결국 아무데서나 맛본 흑당버블티는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정적으로 나는 쓴맛 성애자다. 그런 내가 어찌 허황되게 달콤함을 탐했을까. 일 년에 단 것이 당기는 날이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니, 그날이 올 때 꼭 ‘거기’에서 먹어보리라 마음먹고 흑당버블티에 대한 미련과 도전은 잘 간직해 두기로 했다.

그 다음이 바로 ‘곱창’이었다. TV에서 화사의 곱창 먹방을 본 뒤, 알고 보니 요즘 젊은 여성들은 다 곱창 마니아였다. 젊고 예쁜 아가씨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곱창. 그런데 어쩌나, 나는 곱창을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다. 예전부터 있어왔던 음식인 곱창, 아저씨들의 술안주였던 곱창의 변신은 화려했다. 긴 머리를 한 손으로 잡고 부러질 것 같은 긴 손톱을 붙인 채 서투른 젓가락질로 화사가 곱창을 먹는 모습은, 대체 왜 그리 ‘알흠다운’ 것인가!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곱창에 집착했다. 호시탐탐 곱창 먹을 기회를 노렸다. 그런데 주변에 별로 호응해 주는 이가 없었다. 남편은 곱창을 즐겨먹지 않았고, 친구들도 딱히 선호하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곱창 ‘잘알못’이다. 소 곱창과 돼지 곱창을 잘 구별하지 못하고, 한 번 먹어본 곱창전골은 내 취향이 아닌 것으로 인정했다. 그 곱창전골집은 ‘아무데’가 아닌, 완전 유명한 곳이었음에도. 그럼에도 ‘곱창 구이는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어’라고 위안 삼으며 곱창 구이에 도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얼마 전, 곱창 구이와 조우했다. 스무살 큰 딸이 한참 전부터 곱창 노래를 불렀기에 선심 쓰듯 한번 시켜보라 하고 배달하시는 분의 도움을 받아 먹어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기대했던 곱창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기억해 보니 양, 대창을 한때 즐겨먹었고, 막창도 제법 즐길 줄 아는 나였다. 그러나 아직 돼지 곱창에는 도전해 보지 않았기에, 곱창에 대해 논하는 것은 미뤄두기로 했다.

곱창에 이어 나의 도전욕을 자극한 음식은 한창 대유행을 떨친 마라탕이었다. 향신료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채소와 고기를 취향껏 고를 수 있어 마라탕은 입에 잘 맞았다. 그리고 그 보다 더 좋은 것은 마라상궈. 혀가 아릿하고 이국적인 향 덕분에 주기적으로 먹고 싶어지는 음식 목록에 올랐다. 그리고 다행히 회사 근처에 유명한 맛집이 있어 언제든 먹을 수 있다. 아마 그 집이 아니었다면 내 성격에 일부러 열심히 찾아가 먹지는 않았을 듯싶다.

유행은 뭐고, 사람들은 왜 그리 유행을 좇을까. 다 떠나서 굳이 그걸 따라해보고 싶은 내 마음은 뭘까. 그건 스스로 꼰대가 아니고, 아직 감각이 녹슬지 않았음을 드러내고 싶은 것이리라. 사실 그것이 바로 꼰대라는 증거다. 유행으로부터 자유로이 나만의 길을 가지 못하고 자꾸 눈치를 보고 주변을 신경 쓰고 있으니….

곱창을 안 좋아한다고, 어린이 입맛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골목식당’ 김성주 아나운서의 모습은 얼마나 당당하던지. 이제 나도 그처럼 당당해지기로 마음먹어본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만 먹으며 살기에도 시간은 부족할 테니. 그나저나 요즘 같아선 먹으면 모든 바이러스가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그런 음식이 대유행했으면 좋겠다.

이현주(칼럼니스트, 플러스81스튜디오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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